[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올해 2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권고문은 무산됐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은 의료기관 구분을 기존 종별에서 기능별로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권고문은 외과계의사회에 전문의원으로 분류하고 이차의료기관으로 상향할 것을 권고했지만, 외과계 의사회는 일차의료기관에 '단기입원(입원실) 허용'을 원했다. 병협은 끝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병협과 보건복지부는 권고문 합의가 깨진 것에 대해 아쉽다고 했다. 다만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개선방법을 논의하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복지부는 올해 연말까지 의료기관 종별 구분을 위한 정책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의료기관 종별 구분과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중요한 것은 속도와 재정 투입"
대한병원협회 서진수 보험부회장은 13일 병협 주최 코리아헬스케어콩그레스(Korea Healthcare Congress 2018) '의료기관 종별 구분' 관련 토론회에서 “왜 지금 이시점에서 의료전달체계가 논의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점 분석과 해결방안이 필요하다”라며 “지난 15년간 외래 진료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입원은 요양병원을 포함한 병원급으로 시프트(이동)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행위별 수가제에서 상급종합병원이 높은 수익을 올리려면 환자 1인당 진료비를 증가시키거나 환자의 수를 늘리고 있다”라며 “대형병원이 과거부터 매머드급으로 규모를 키워오던 것이 2000년 초반에 적정병상수를 초과하면서 외래 진료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원급의 진료량이 줄어드는 것이 일차의료기관 의료인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요인이었다”라며 “선택진료비 폐지를 포함한 진료기능 강화가 종별 기능을 무너뜨리는 위험이 됐다. 문재인 케어로 대표되는 비급여의 급여화도 이런 점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의료공급자의 80%는 전문의이고 주로 단독 개원의들”이라며 “이런 배경으로 인해 1차와 2차의 기능이 분화돼 있지 않다. 요양병원과 전문병원이 등장하고 병원들이 섞이면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기 쉽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서 부회장은 “의료법적인 용어인 병원, 종합병원의 개념이 현재의 틀로서 적당한가에 대한 문제점이 있다”라고 했다. 이어 “의원이라고 하는 것은 일차진료와 만성환자에 대한 관리를 외래 위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차의료기관은 입원 및 처치, 시술, 약간 전문화된 의료와 공급 기능을 한다. 삼차의료기관은 전문화된 진료, 교육과 연구로 쉽게 정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부회장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에 대해 2년간 복지부, 병협 등 모두 열띤 토론을 해서 최종 합의에 직전에 이르렀다가 무산됐다”라며 “외과계 의원이 7만병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당장 입원실을 포기하지 못해서다”라고 밝혔다.
서 부회장은 “여러가지 배경으로 인해 의료전달체계 재평가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권고안이 권고안 정도로 합의가 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며 “빠른 시일내에 다시 추진하기는 어렵지만 가능한 부분부터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속도조절이 정책의 성패를 가늠한다. 우선적으로 3차의료기관을 분류하고 1,2차의료기관을 분류해낼 수 있도록 전문의 시스템 변화나 국민의 인식이 함께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서 부회장은 “당사자인 의료기관 개설자 입장에서는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생계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이 많다. 재정 투입이 되지 않고 속전속결로 이뤄진다면 변화로 의료기관이 망할 수도 있는 입장에선 극렬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일정부분 재정 투입이 이뤄지면서 가야 한다. 선택진료비 폐지에 따른 의료질평가 지원금이라는 것이 향후에는 의료전달체계에 매칭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대안암병원 박종훈 원장은 “학문적으로 의료기관 종별 분류체계를 구분하는 것은 목적이 있어야 하고, 목적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종별 구분을 처음에 만들 때는 의료전달체계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지만,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버렸다. 동시에 종별 구분의 목적이 애매해졌다”고 했다.
박 원장은 “현재 의료기관 종별 구분이 수가 산정의 용도로밖에 쓰이고 있지 않다. 원래 목적은 실종되고 의료전달체계가 맞지 않고 있다”라며 “그러다 보니 역기능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의료계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수가 정책이 우리나라 의료계의 모든 문제라고 표현한다”라며 “저수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먼저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한 다음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의료전달체계를 확고하게 한 다음 종별 구분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은 중증도나 의료기관의 여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라며 "2차에서 3차 의료기관이 되는 순간 3년동안 수십억에서 수백억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 상급종합병원 지정은 정말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별 분류체계를 바꾼다면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나 일차의료 활성화가 되지 않는 의료전달체계의 부작용을 해결해야 한다”라며 “중증 질환이나 교육수련 여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복지부, 다음달까지 의료기관 종별 연구용역…의료전달체계 개편
복지부 정은영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전달체계 협의체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1년 반의 협의에도 불구하고 무산됐다“라며 ”그래도 이번 협의를 통해 의료전달체계에 문제가 있고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정부도 현재처럼 시설, 인력 기준만으로 의료기관 종별을 구분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다”라며 “현재 진행 중인 연구용역을 통해 종별 구분을 나눠보고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의료전달체계를 재정립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정 과장은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진료가 늘어나고 왜곡된 부분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많이 수정해야 한다. 중증도에 따른 입원기준을 나눠야 한다"라며 "연구용역을 해서 연말에 다시 지정기준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 과장은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전략을 가져가고 어떻게 종별 구분을 하고 가동하게 하는 것이 문제"라며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검토해 반영하겠다"고 했다.
복지부의 의료기관 종별 구분 정책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태현 부교수 등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2016년 전국 8339개 의료기관에 대한 입원자료를 분석하고, 전체 병·의원을 크게 6개로 나누는 '기능적 병의원 유형 분류안'을 발표했다.
이전의 시설, 인력, 장비 등의 기준과 함께 DRG(포괄수가제) 질병군 구성, 재원일수, 수술 비율 등에 따라 나눴다. 군병원, 경찰병원, 근로복지공단 병원이나 2016년 중간에 개폐업한 병원들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기능적 병의원 유형 분류안은 권역거점병원, 지역거점병원, 지역병의원, 단과의료기관, 아급성의료기관, 요양 의료기관 등으로 나눴다.
김 교수는 “의료법상 종별 기준은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등만 있다. 의료기관수는 많이 증가하고 의료환경도 급변하고 있다”라며 “의료기관 종별 구분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기능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의료기관 종별 구분을 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종별 구분은 기능적인 측면과 중증도 측면, 서비스 측면 등을 고려해야 한다”라며 "다음달까지 연구용역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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