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8.10 07:09최종 업데이트 23.08.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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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흉기난동' 정신질환자 가족에 화살?…"국민안심치료제도로 국가가 책임져야"

[인터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사회특별위원장 "치료 중단이 범죄로 연결, 사회 변화 속 가족에 책임 묻기 어려워…코로나19로 현대사회 정신건강 문제 폭발, 정신건강에 투자할 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사회특별위원장.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반복되는 묻지마 칼부림과 살인 예고로 전 국민의 공포감이 커지는 가운데 잇따른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피의자 가족에게 그 책임을 묻는 사회 분위기가 넓혀지고 있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2018년 故임세원 교수 사망사건, 2019년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사건 등에 이어 최근 고교 교사 피습사건과 분당 서현역 사건까지 공통점은 그 피의자들이 중증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모두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치료를 중단해 정신질환이 자‧타해 위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증정신질환자들은 자신의 병식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가족 혹은 주변인들이 진단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가족들이 이들의 치료를 방치했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대중들은 그 가족들이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방치했다며 이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사회특별위원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 제도 자체가 정신질환자들이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가족에게 정신질환자 진단 및 치료 책임 떠넘기고, 입원 요건 강화로 치료시기 놓쳐

2016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비자의 입원, 즉 환자의 자의에 반하는 강제입원을 하려면 치료 필요성과 함께 자타해 위험성을 필수요건으로 하고 있다. 특히 보호의무자제도를 통해 가족 등 환자의 '보호의무자'에 의해 입원하도록 하면서 핵가족, 1인가구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부담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법에서는 가족이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도 규정에 있는 '자타해 위험'을 증명하지 못하면 병원 이송조차 되지 않는다. 또 가족들이 가까이 있지 않거나 여력이 안 되는 경우 환자는 치료 받지 못한 채로 그대로 방치되게 된다.

백종우 위원장은 "국가가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영역이 두 개가 있다. 그 하나가 바로 감염병이다. 코로나19 3년 동안 우리 국민들은 국가에서 정한 검사를 받고, 격리를 강제당했다. 이를 어기면 처벌도 받았으며 대신 그에 대한 치료를 지원받았다. 그 이유는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까지 위험하기 때문이었다"며 "중증정신질환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고 가족들이 설득해서 입원한다. 하지만 일부 자타해 위험이 강한 중증정신질환자들은 치료 자체를 거부한다. 우리나라는 중증정신질환자 치료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족에게 줬다. 과거 대가족 시대에는 그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산업화되면서 핵가족화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가족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9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 가족 단체 및 학회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 주장이 나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화영 법제이사는 "정신질환은 제대로 치료하면 범죄율, 공격성이 일반인보다 훨씬 낮게 떨어지고 적절한 치료 받았을 때 회복까지 가능한 질환"이라며 "여러 나라들이 정신질환을 어떻게 적절히 치료할까 고민했고, 미국은 사법입원, 영국과 호주는 심판입원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제이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보호의무자에 의한 비자의입원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호의무자에 입원을 도입한 일본의 제도를 참고했는데, 정작 일본은 2013년에 해당 제도를 폐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법제이사는 "현재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유지되는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정부가 먼저 나서서 '사법입원'과 '심판입원'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데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국가가 환자 진단과 치료 책임지도록 '국민안심치료제도' 도입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그 필요성을 요청했음에도 사법입원 제도가 도입되기 어려웠던 걸림돌인 환자의 인권 보호 문제와 의료계‧법조계의 전문성 있는 인력과 시스템 부재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에 백 위원장은 "다른 것보다 환자가 진단을 받을 수는 있어야 한다"며 "해외 국가들은 먼저 진단을 강제해 진단 결과에 따라 중증질환이면 외래치료 혹은 입원을 통해 환자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라고 그 필요성을 설명했다.

다만 '사법입원'이라는 제도가 그 심판 대상을 범죄 피의자라고 규정하는 듯한 인식을 주고, 마치 심판 대상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을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대해 오해가 있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백 위원장은 "이 제도의 핵심은 인권보호다. 중증정신질환자들은 자신의 치료 필요성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판을 통해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 청문제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청문제도가 없어 더 인권침해적이다"라며 "일부 국가는 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국선변호사를 붙여구지고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렇게 사법입원을 통해 외래 및 입원치료가 결정되면 사회관리팀이 매주 대기해 환자 치료가 잘 진행되는지 파악하고 지역사회와도 연결해 재활을 도와야 한다. 

백 위원장은 "이 제도의 진짜 단점은 사회적 비용이다. 사법입원은 판사가 필요하고, 심판제도도 위원이 3명이 있어야 한다. 변호사, 전문의 등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며 "이에 일본도 아직 사법입원을 도입하지는 않았다. 대신 일본은 지자체가 자타해 위험이 있는 환자에 대해 진찰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공무원 권한을 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야 올바른 제도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텃다고 생각한다. 학회는 한국 실정에 맞는 비자의 입원 도입을 위해 그 제도를 '국민안심치료제도'로 바꿔 국민들이 오해하지 않고 제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며 "과거와 달리 정부가 편견없이 앞장서서 제도에 대해 논의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라고 전했다.

현대사회 정신건강 문제, 코로나19로 폭발…"국가가 국민 정신건강에 투자할 때"

특히 백 위원장은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코로나19의 후유증일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첫 번째 웨이브는 코로나 그 자체로 인한 사망이고, 두 번째는 의료 시스템 과부하로 인한 사망이었다. 세 번째는 만성질환 관리 부재로 인한 사망이며 그 네 번째 웨이브가 코로나19가 끝난 이후 오는 정신질환이다. 코로나19로 발생한 절망, 분노, 우울, 외로움 등이 폭발하는 시기가 올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그 부작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백 위원장은 "해외는 이미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포괄적 대책을 강구하고자 국가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은 자살예방 부장관을 세웠고, 일본도 총리실 산하에 고립사 대책실을 설치 운영했다. 현대사회의 병폐를 코로나19가 폭발시키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는 정부가 국민의 정신건강에 투자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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