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1.10 07:55최종 업데이트 23.11.1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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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조종사와 필수 의료 의사

[칼럼] 조성윤 미래의료포럼 상임위원·신경외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조규홍 장관이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묶여있는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강력하게 추진해 2025학년도 입시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이후, 10월 19일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하며 의대 입학 정원 확대를 재차 거론했다.

이 자리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의료 의사 수를 늘리는 데 낙수효과가 없다는 건 1970년대 이론"이라며 "의료계 협의를 거쳐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반드시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낙수효과(落水效果)는 대기업, 재벌, 고소득층 등 선도 부문의 성과가 늘어나면, 연관 산업을 이용해 후발·낙후 부문에 유입되는 효과를 의미한다. 컵을 피라미드같이 층층이 쌓아 놓고 맨 꼭대기의 컵에 물을 부으면, 제일 위의 컵부터 흘러들어간 물이 다 찬 뒤에야 넘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간다는 이론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우리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매년 약 100명 안팎으로 공군을 떠나 민간항공사로 이직해 전투기가 아닌 여객기를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차관의 논리를 인용하면 전투기 조종사들이 부족하니 공군 조종사들을 더 많이 선발해서 낙수효과를 노려야 한다. 전투기 조종사를 배로 늘리고 넘쳐서 위의 컵(민간항공사 여객기)이 다 차서 할 수 없이 아래(공군 전투기)로 내려간 물(낙수 조종사)을 확보해야 한다. 민간항공사 자리가 다 차서 할 수 없이 공군에 남아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조종사가 자랑스러운 우리 공군의 전투기를 조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행히 보건복지부와 달리 국방부는 낙수효과를 기대하지 않고, 먼저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민간 항공사로 이탈하는 이유를 분석해서 그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내놨다. 그 이유는 보수, 워라밸, 진급 경쟁에서 찾았다.

전투기 조종사의 각종 수당을 인상하는 등 복지 및 처우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시대 변화를 고려해 MZ 조종사들의 워라밸 향상을 위한 의견도 수렴하고 있다. 대령 보직을 늘려 진급 경쟁을 완화하려 추진 중이다. 전역 시기를 늦추기 위해서 민항사에 취업할 수 있는 채용 제한 연령도 폐지했다. 이런 방안들이 전투기 조종사 이탈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이지만, 적어도 낙수효과나 주장하는 보건복지부와는 다르게 그 방향만큼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박민수 차관의 발언 이후 소위 필수 의료과 전문의들은 스스로를 '낙수과 전문의'라며 자조하고 있다. 사람을 살린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오던 수만 명의 필수과 의사들을 하루아침에 경쟁에서 도태된 '낙수 의사'로 만들어 모멸감을 안긴 것이다.

필수의료라 불리는 소멸 위기과를 되살리려면 보건복지부의 대책이 아니라 국방부의 대책을 잘 살펴봐야 한다. MZ 세대에서는 조종사든 의사든 같은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 MZ 전투기 조종사들의 이탈 이유가 보수, 워라밸, 진급이라면 MZ 의사들에게는 '보수, 워라밸, 법적 책임'의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선의에 의한 진료가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 경우 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고, 힘들게 일한 만큼 적절하게 보상하며, 의학적 판단이 심평원의 기준보다 우선되는 진료가 가능한 제도를 만들어 MZ 의사들을 소멸 위기에 처한 필수 의료로 유입시키자.

정부는 원인에 맞는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의료계와 함께 이 나라의 의료를 되살려야 할 시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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