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가 내년 3월 9일로 다가왔습니다. 각 후보캠프들이 여러 단체들로부터 정책 제안을 받아 대선 공약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대통령 후보라면 반드시 짚어야 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agenda)를 사전에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의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의료계가 각종 악법에 대한 방어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꼭 필요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의료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메디게이트뉴스] 대선의 계절이다. 정치적이거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캠프에 참여하거나 정책 설계를 돕기 위한 활동을 공개적으로 시작했다. 보건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각 직능단체의 전, 현직 임원, 정책전문가인 대학교수, 그리고 차제에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볼 욕심을 가진 사람들 모두 목소리를 높여 발언권을 키워 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먼저 짚고 그 다음 단계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건의료 발전방향에 대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리는 정권의 창출이 곧 본인이 추구하는 정책의 실현기회가 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철저히 준비된 정책설계안을 갖고 출발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관련돼 있는 보건의료정책을 정부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이익을 위해 개편해서 혼란을 부추길 일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진보 혹은 보수, 여당 혹은 야당 중에 어느 쪽이 주도하는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결국은 대한민국 정부다. 그 중 보건복지를 관장하는 관료, 기획재정을 담당하는 부처의 관료는 늘 그 자리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 내일을 위한 점진적 변화는 가능해도 천지개벽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큰 그림을 그리고 하나씩 실현가능한 제안부터 풀어나가는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할 사안임을 참여하는 관련자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보건의료정책은 입안자 혹은 학자들의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현장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오래된 소신이다. 현장전문가의 중요성이 가장 부각되는 분야가 의료 부문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항상 정책결정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인 관계로 배제되고 소외됐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전문성을 가진 직역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직업적 자율성을 훼손하는 관치와 법치에 스스로 목매고 더 많은 제약을 감수하면서까지 직능 이기주의를 지켜나갈 궁리만 하는 집단으로 오해받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이번 기회에 이런 환경적 풍토는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의 전문성이 존중받고 정당한 요구가 수용되는 의사결정 구조를 찾아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다운 정치 참여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의료계의 희생을 담보로 안착된 전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여전히 미완성이고 앞으로도 진화해 가야 하는 필수적인 건강복지 체계다. 적용 우선순위의 논란은 있을 수 있겠으나, 보장성 강화의 방향성 자체를 거슬러 갈 수 없을 것이고 이에 대한 재정부담, 보건의료 인력자원 문제, 그리고 합리적 이용 및 사후관리 문제가 향후 수년 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과거 정권에 따라 공보험체계와 사보험체계의 기능적 혼용이 초래했던 비효율을 또다시 반복해선 안 될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아무리 보건의료의 당면과제를 두고 여러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현재 가장 중요한 사안은 대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보건의료위기 의식과 대처, 적절한 대응 그리고 향후 대책이다. 아직 진행상황 중임에도 여러 이론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다. 현장의 불만과 탈진은 극에 달한 상황임에도 해결할 묘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메르스 때는 컨트롤타워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삼았는데, 이번에는 장기화에 수반된 피로와 상실, 변종에 따른 혼란과 좌절, 그리고 현장과 지휘체계 간의 괴리를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가 너무 많다. 그런데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는 보이지 않는다. 얼마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상을 밝힌 기자회견도 그런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대안이 될 수 있는 개선 요구안을 제시해야 할 보건의료계는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현장에서 문제점을 수렴하고 대안을 도출해 정책공약화해야 하는 제 1번이 바로 이 지점이라 생각한다.
대국민 접점의 보건의료 부문은 바로 일차의료 체계다. 이는 당연히 정책 공약이 나와야 하는 가장 보편적인 영역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누구를 중심으로 무엇을 목적으로 왜 해야 하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의료공급체계 개편으로 아니면, 해묵은 주치의제 이야기로 현재 개원의들의 동의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선 공약은 당연히 국민 중심으로 설계돼야 하지만, 공급자인 개원의도 국민의 한 축으로 그 의지를 존중받아야 한다. 정부는 과거 환자등록제라는 오해를 풀고 만성질환자 관리를 단골의원 중심으로 설계하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도록 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시작이 나쁘면 불필요한 소모적 갈등만 유발하고 모두가 필요로 하는 당연한 결과마저 그 시기를 놓치게 된다. 모든 의,정 갈등과 충돌은 성급한 시도, 의도적 오해, 그리고 정치적 오도에서 비롯됐다는 과거 사실을 되새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일차의료 만큼은 제도 개편 시 반드시 현업 종사자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서 문제를 발굴하고 상호 유익한 개편안을 함께 만들어 가야 정책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적정 직역의 참여를 보장한 정책개발 협의체 구성을 공약화해서 점진적 변화를 약속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지역적 보건의료자원의 편중, 보편적 진료 보장의 문제, 지자체와의 협업과 돌봄 서비스 설계, 복지전달체계와의 관계설정 문제, 그리고 신산업 측면의 원격의료 활용문제에 이르기까지 관련 현안이 매우 중요하다. 그만큼 합당한 논의의 장이 열려야 정책제안의 통로가 되는 대선마당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선 이후 보건의료계의 발전적 변화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드린다.
첫 번째는 보건의료 정책을 본인이 속한 직능의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큰 시각을 갖고 큰 그림을 그려 나가자는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많은 고통과 투자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준비하고 나아가야 한다. 끊임없는 소통과 설득이 관건이다.
두 번째는 전문가적 자긍심을 지키려면 보다 독립적이고 자기개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자율징계권 확보가 시작이다.
세 번째는 위정자들에게 현장의 참여를 보장받고 정당한 의지가 관철되는 통로를 확보하는 투지를 길러내야 한다. 정치적 역량 강화를 위한 직능단체의 인력양성 코스 신설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이다.
네 번째는 직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보건의료인이 역량을 합치고 함께 가는 공동의 선에 주목해야 한다. 공공이냐 민간이냐는 구시대적 싸움은 뒤로 하고 공적 목표를 위한 보건의료인의 숭고한 사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함께 구축해 나아가는 것이 급선무라 말씀드리고 싶다.
다섯 번째는 적어도 같은 목표를 갖고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정치적 성향의 다름을 이유로 서로 공격하고 비난하지는 말자는 주장이다. 대선을 기점으로 갈라진 내부를 추스르고 합심해서 국민을 위한 보건의료 최일선으로 함께 가야 할 동지들이다.
여섯 번째는 대한민국 보건의료 정책의 해답을 쥔 현장전문가들인 만큼, 이벤트성 대선정책 제안에만 편승하지 말고 항상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반대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적 역량을 키워 가는데 함께 노력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공격만 가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국 국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크게 도움이 되는 중요한 정책과제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모든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건의료전문인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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