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내부갈등 부추기는 복지부
PCI 영역 확대하자 흉부외과 브레이크
의료계 내부에서 풀 '의학적 문제'
가슴 부위의 답답함이나 통증을 주로 호소하는 관상동맥질환은 심장을 먹여 살리는 관상동맥이라는 혈관이 막혀서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할 때 생긴다.
막힌 혈관은 풍선으로 일시적으로 넓히고 스텐트라는 철망으로 고정하든지(순환기 내과의 PCI, 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 막힌 혈관을 우회하는 새로운 통로를 만드는 흉부외과적 수술(CABG, Coronary Artery Bypass Surgery)로 치료한다.
잘 나가는 PCI
PCI는 CABG보다 늦게 개발되었지만 빠른 속도로 CABG의 영역을 대체해 나갔다.
수영장이나 대중탕을 갈 때마다 시선을 끌 만한 가슴의 큰 흉터 걱정도 없고, 마취할 필요도 없이 오른쪽 사타구니에 구멍 하나 뚫어 치료하게 되었으니 많은 환자가 선호할 수밖에 없다.
관상동맥질환 진단까지 모두 마치면 위험성 있는 약물(혈전 용해제)을 쓰거나 흉부외과로 전과를 시켜야 했던 내과 입장에서는 PCI를 시작한 후부터 치료까지 책임지고 퇴원시키니 병원에서 존재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PCI과정 <출처 : umeacare.vll.se>
돈 많이 드는 심장 수술을 받거나 그냥 죽는다고 생각했던 심근경색 치료의 패러다임은 PCI를 통해 바뀌었고, PCI를 진행하는 혈관촬영실 하나만 차려주면 순환기내과(심장내과) 의사들은 병원에 많은 경제적 수입을 가져다줬다.
스텐트를 판매하던 외국계 회사들은 '물'을 만났고, 시술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시술날에 온종일 혈관 촬영실에 직원을 상주시켜 시술자의 비위를 맞추거나, 의료인에게 '소고기 회식'을 시켜주던 때도 있었다.
순환기내과 의사들은 PCI의 적응증을 적극적으로 넓히기 시작했고, 일부는 가이드 와이어와 풍선, 스텐트만 있으면 못 뚫을 혈관이 없는 것처럼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 결과 우리나라 PCI : CABG 비율은 23:1 이라는 압도적 수치를 자랑하게 된다. (이것은 급여만 산정한 것으로, 비급여 스텐트 시술을 감안하면 30:1 으로 추정, OECD 국가 대부분은 4:1 이하)
PCI를 시행하는 혈관촬영실의 모습 <출처 : 연세의료원>
'PCI 중독'에 빠져있던 순환기내과 과장 밑에서 수련을 받았다는 한 내과 전문의의 말을 들어보자.
"일부 순환기 전문의들은 과하게 경쟁적으로 시술하는 것 같다. 특히 심근 경색의 PCI 케이스를 웹사이트에 등록하는 재미에 들린 과장이 있었는데, 마치 서로 랭킹 경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소회를 이어 나갔다.
"대형병원이 아닌 경우 PCI가 가져다주는 수입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이쪽에 인적 소스를 많이 몰빵해도 병원에서 묵인해줬다. 혈관 촬영이 있는 날이면 시술을 마친 환자 사타구니를 지혈시키기 위해 인턴이 하루 종일 혈관촬영실에 상주하고 있고, 응급실에서 (관상동맥 질환이 의심되는) 가슴통증 환자라도 오면 그 환자 한 명에 집중하느라 순간적으로 응급실 업무가 마비된다."
흉부외과의 브레이크
관상동맥 적응증을 야금야금 확대하며 거침없던 PCI…
그 앞에 악조건에서 고군분투하며 통합심장진료를 주장하는 흉부외과가 이번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CABG수술 과정
표면적으로는 갈등이 없었던 치료 선택(PCI VS CABG) 문제는 지난해 정부가 스텐트의 '보험급여 3개 제한'을 해제하면서 불거졌다.
내과에서 시행하던 스텐트 시술의 보험 급여 확대에 보건복지부가 흉부외과 협진이라는 조건을 달면서 양쪽 학회가 그 협진의 필요성에 대해 엇갈리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순환기내과 관련 학회의 심한 반발에 보건복지부는 작년 11월부터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두었고, 유예기간의 만료를 앞둔 시점에 흉부외과학회는 29일 ‘관상동맥 질환의 치료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서 흉부외과 교수들은 CABG에 대한 의학적 당위성을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김기봉 교수는 SYNTAX trial(좌주혈관(Left Vein)과 삼혈관 질환(3-Vessels)에서 PCI와 CABG의 치료 효과를 비교한 논문)을 소개했다.
그는 "심혈관 관계 합병증, 사망률, 심근경색 확률, 재발률에서 수술(CABG)이 PCI보다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면서 "특히 당뇨가 있거나 혈관이 많은 경우처럼 질환이 복잡할수록 수술의 우월성이 현저하게 관찰되었다"고 강조했다.
29일 대한흉부학회 주최로 열린 관상동맥 치료에 관한 공청회
이 같은 결과는 사실 처음은 아닌데, 국내 PCI 최고 권위자인 서울아산병원 박승정 교수조차 “삼혈관(3-Vessels) 질환에서는 PCI가 수술보다 재시술률이나 심근경색 가능성이 높아 무분별한 시술보다는 상태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공청회 내내 흉부학회는 단순한 혈관질환이나 응급환자에 대해 PCI의 편의성과 유효성을 인정한다고 밝혔고, 단지 학회가 주장하는 것은 일부 복잡한 혈관질환에 한정한 협진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깔아놓은 판, 두 학회가 싸울 문제인가?
의학적으로 더 좋은 치료를 선택하는 '의사의 본능'을 상기하면 사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풀 수도 있었다.
의학에서는 학문 결과를 근거로 더 우수한 치료가 선택되고, 증거가 부족한 것은 결국 퇴출된다. 카바 수술의 유효성을 주장한 건국대병원 송명근 교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라.
물론 일부 관상동맥 질환은 치료에 대한 논문 결과가 엇갈리는데 그런 한정된 경우 역시 의료계 내부에서 의료인끼리 '학문적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스텐트 급여 확대'와 '관상동맥 질환의 치료'는 각각 급여 필요성과 학문적 선택이라는 성격으로 분리해 논의해야 할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두 주제를 엮어서 미묘하게 얽혀 있는 학회들을 자극, 모처럼의 급여 확대 문제를 학회 간 갈등으로 만들어버렸다.
학문적 선택이 필요한 부분을 '협진'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급여 기준과 연결시켜 위기에 처한 특정 과를 자극하고 의료계 내부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정부에서 할 일인가?
협진이라는 것이 과연 급여의 의무 조건으로 내세울 만한 성질의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급여의 과한 증가를 막고 싶었다면 치료의 적합성에 대한 의료계의 의견이나 의학적인 연구 결과를 해석해 급여 기준을 명확하게 하면 된다.
이번 공청회의 핵심적인 논의였던 학술적인 쟁점(어떤 치료가 좋은 것이지)에는 관여하지 않고 두 단체의 역학관계를 이용해 알아서 합의하라고 떠넘기고, 그 합의를 급여 조건으로 걸어놓는 것은 직무유기다.
급여가 가능한지 아닌지, 아니라면 어떤 의학적 이유로 안되는 것인지.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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