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2.28 05:13최종 업데이트 19.02.28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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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진찰료와 저수가 정책, 국가 주도의 '도덕적 해이'

의협의 진찰료 30% 인상 요구, 바람직한 의료로 도약하는 기회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40대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의 주장인 진찰료 30% 인상의 당위성에 대해 2조원이 넘는 예산 부담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의료계의 절규 서린 의견이었지만, 정부가 고민 없이 책상머리에 앉아 가볍게 묵살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일선 진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은 무거운 실망감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의협 역시 강한 반발과 함께 벼랑 끝에 몰린 위기의식 속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의협이 진찰료 30% 인상을 요구한 것은 얼핏 물가 인상률이나 일반적인 경제지표를 논할 때 사용하는 지표와는 달라 보인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진찰료에 대한 토론회 등을 통해 진찰료 30% 인상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해왔다.

일부 보건학자들은 진찰료의 대폭 인상은 불가능하고 보건의료 전체의 틀을 감안해 인상률을 결정해야 한다며 그럴듯하고 정당한 것처럼 보이는 이전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반응은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오늘날 우리나라 의료현실이 진정 어떤 모습인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저수가 정책에 대한 비판은 건강보험 제도 도입 이래 수십 년동안 너무나 흔한 일상이 됐기에 이제 그 이유를 열거할 의미도 퇴색됐다. 현 정부도 최근 연달아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과 사고 속에서 아직도 의사집단을 고소득자인 미운 적폐대상만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강한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현재의 저수가 진찰료는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싸고 편리하다. 이렇게 싼 진찰료 덕분에 우리나라 외래 이용률은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가 됐고, 의료접근성도 세계 최고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저수가 정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고 가장 무서운 함정이 될 수 있는 위험 요소는 간단한 자본주의 원리이다. 싼 가격의 상품은 소비를 유도한다는 매우 간단한 진리인데, 보건경제학자들은 의료에서 ‘도덕적 해이’로 정의하고 있다. 정부권력의 선심성 또는 시혜적 성격이 아주 짙은 값싼 진찰료는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일종의 미끼 상품처럼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시혜가 의료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보장성 강화와 저수가 유지 정책이 도덕적 해이와 맞물려 예기치 못한 물리·화학적 결합을 통해 폭발적 해악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해봐야 할 사안이다. 이미 저수가 건강보험이 도덕적 해이와 의료소비를 증가시킨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는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일부 학자의 수사학적 반론도 점차 연구가 정교화되고 제시되는 증거의 학문적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설 자리도 잃어가고 있다(Einav et Finkelstein 2018). 

의료는 상품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상품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품과 다른 점이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의 검증되지 않은 선심성 저수가 정책과 보장성 강화는 결정적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의료소비를 선진국 수준으로 증가시키는 것 이외는 별 대안이 없어 보인다.

이런 점을 막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1차 외래 진료는 보험혜택을 주지 않고 입원부터 보험혜택을 지급한다. 결과적으로 GDP 대비 의료비지출이 6%를 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와 같은 무리한 저수가와 보장성 강화의 암울한 면은 정부가 사회나 의료소비자인 국민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고, 도덕적 해이의 여파는 공적투자로 이어지는 다른 분야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로마도 스스로 멸망했듯이 도덕적 해이를 만드는 사회 역시 이것으로 멸망할 수 있다. 과거 정부는 현 정부의 우월한 역량과 경쟁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닌 자신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스스로 몰락한 것이다. 국민에게는 저수가 의료가 편하고 고마워 보일 수 있다. 그 덕에 이미 의료가 효도 상품이 됐고 응급실이 1차 의료기관이나 노인복지 시설로 변질되고 있다. 진찰료 인상에 대한 요구는 얼핏 편리해 보이는 저수가 정책이 사용자인 국민이나 의료제공자에게 맞춤형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의 인간적 봉사와 진정한 의료 노동의 가치보다는 마치 공산품 제조 원리처럼 의료기계와 검사 도구를 이용해야 의료경제가 작동한다. 이런 현상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의료기술이 의료소비자인 환자에게 여전히 비인간적 의료경험을 강제하고 있다. 더구나 노령화에 따른 정부의 진료비 지출 억제 정책도 현재의 수가체제와는 정책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의협의 진찰료 30% 인상의 요구는 이런 비인간적인 의료와 장기적 안목에서 보다 바람직한 의료로 도약하기 위한 매듭을 풀어볼 기회를 줄 수 있다. 서민층을 위한다고 베네수엘라 정부가 채택한 석유보조금이 야기한 경제 붕괴가 반드시 남의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집권을 위한 인위적인 경제적 조작이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지, 아울러 국민 기본권으로 채택된 의료정책이 상식의 범위를 넘어선 압박정책으로 인해 어떤 국가적 폐해를 가져올지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미래 의료가 무척 걱정스럽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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