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세종=권해영 기자] 코로나19 수습과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확대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국가채무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 중 한 곳이 됐다. 급격한 나랏빚 급증은 국가 신용도 하락, 외화 유출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시한폭탄이다.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면 결국 증세는 피할 수 없는 방향이다.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가 'Y노믹스'의 핵심 과제로 증세 논의에 착수, 임기 내 반드시 증세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이유다. 새 정부 경제사령탑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취임사를 통해 국가채무를 우리가 마주한 난제로 거론하며 진솔한 사회적 담론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13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22 조세수첩'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소득자 중 납부할 세금이 없는 근로소득 면세자 비율은 2020년 기준 37.2%다. 1년 전(36.8%) 대비 0.4%포인트 늘었다.
이는 다른 국가들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소득세 면세자 비중은 2014년 기준 35%, 영국은 3.2%, 호주는 24.7%, 캐나다는 33.1%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 면세자 비중은 40%를 훌쩍 넘어섰다.
법인세 면세 비중도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49.9%로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법인세는 순이익에 적용돼 사업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 기업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업 규모, 실적에 따라 세 부담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0년 상위 10% 근로자가 근로소득세의 73.1%, 상위 10% 기업이 법인세의 97%를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원은 넓게, 세율은 낮게'라는 조세 원칙에 위배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 개세주의'에도 반한다.
결국 조세 체계를 정상화하고, 재정 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선 '모든 국민은 적은 금액이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법인세, 상속세와 관련해선 세율을 낮추는 감세 정책으로 민간 활력을 높이는 동시에 아무리 소득이 낮더라도 모든 근로자에겐 적게나마 세금을 걷는 증세를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소득세 면세자 비중이 높을수록 소득세 세입확보와 재분배 기능을 수행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정책 결정의 왜곡을 유발할 수 있다"며 면세자 비중 축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저소득자 세율을 높이는 건 조세당국도 부담이 커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면세 범위를 줄여나감으로써 증세 효과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로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으로 촉발된 물가 급등세가 진정된 이후에는 간접세인 부가가치세 인상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 후 세율을 10%로 유지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부가가치세율은 19.3%로 우리나라의 두 배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가가치세 비중은 2019년 기준 4.6%로 OECD 평균(7%)보다 낮다.
아울러 국회의원들의 책임입법 강화를 위해 정부 의무지출이 수반되는 법안을 발의할 경우 재원확보 방안도 동시에 마련토록 하는 '페이고' 방식 도입 필요성도 크다. 예컨대 정부 예산 1000억원이 소요되는 입법안을 제출할 때 1000억원 규모의 정부 지출 감축안도 함께 마련하는 방식이다. 복지 지출이 늘고, 선심성 입법 또한 쏟아지는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 악화를 막을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세종=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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