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치권이 전문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불합리한 판결, 의료전달체계 붕괴, 만성적 저수가 등 문제 해결해야
[칼럼] 박명하 서울특별시의사회장
[메디게이트뉴스] 푸른 용의 해인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용을 비와 물을 다스리고 나라를 보호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왔습니다. 새해 모든 회원들의 가정과 직장에 승천하는 용의 기운과 함께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2023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중 간호법 저지는 모든 회원이 일치단결해 이룬 성과였습니다. 당시 저는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투쟁의 선봉에 섰습니다. 그때 이루지 못했던 면허취소법 개선에 대해 ‘서울시의사회 면허취소법TF’ 를 구성해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의 대표발의로 면허취소법 개정안이 지난 11월 발의됐습니다. 현재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국회의원을 방문해 면허취소법 개정안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본회의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사회복지법인 부설 의원의 불법적인 진료에 대한 고발, 카드단말기 업체의 횡포에 맞서 도움을 제공하는 등 회원 여러분들께 안전한 진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하반기부터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비롯해 의사들과 의료계를 옥죄는 각종 불합리한 정책들로 인해 회원들이 치료를 위해 환자를 돌보기보다는 투쟁을 위해 진료실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논란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의료인들로 하여금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완벽함을 요구하며 무리한 배상 및 의사들에게 불리한 형사 판결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각종 선거 국면을 맞이하여 포퓰리즘에 휩싸여 전세계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의료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설익은 정책과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는 형국입니다.
2024년 한 해도 회원들과 대한민국 의료계를 위협하는 각종 악법과 억압으로부터 국민건강과 회원들의 안녕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째, 회원들과 의료계를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각종 불합리한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자문과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의사를 핍박하면 할수록 방어진료가 발생하고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두들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의료계의 숙원인 가칭 ‘의료사고 특례법’ 의 제정을 앞당겨 회원들이 안심하고 진료현장에서 환자들을 돌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의사의 법적 책임을 감면하고, 사망·상해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의사 등 종사자에 대한 공소권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등의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둘째, 제도와 정책에 있어서 정부와 정치권의 의협 패싱을 막고, 존중받는 의협이 돼야 합니다. 무분별한 의대정원 확대, 위헌성과 공정성 시비로 얼룩진 공공의대 및 지역의사제 등,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수많은 근시안적인 정책과 맞서 싸우겠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의료계와 했던 약속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지난 코로나19 판데믹 사태에서도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국민을 위해 맨주먹으로 신종 감염병과 맞서 싸웠습니다. 이제는 포퓰리즘이라는 무서운 감염병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우리 의사들을 아무리 옥죄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 합니다.
셋째, 제대로 된 의료환경과 양심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 의료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수준 높은 진료와 편리한 접근성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동네 의료기관을 예약 없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3차 진료기관인 대학병원도 개원가와 제한 없이 경쟁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실제 우리나라 환자 대기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낮은 진료비 정책은 결국 값싼 의료 쇼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원칙 없는 비대면 진료 허용까지 합쳐져 의료전달체계는 더욱 더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갈수록 파괴되어가는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넷째, 대한민국 의료계의 근본문제인 만성적인 저수가를 개선하고 제대로 된 수가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국민 건강보험이라는 단일 공보험 체제는 전세계에 자랑할만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대한민국 평균수명과 영아사망률 등 각종 건강지표는 OECD 최상권이며, 건강수명을 위해 들이는 비용 또한 OECD 평균 이하로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의 한국의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저수가와 강제지정제로 신음하는 의료계의 희생이 있었음을 외면해선 안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현장에서 그야말로 자신의 몸을 갈아 넣는 수고로 환자 진료에 임하는 회원들의 사명감 하나로 대한민국 의료계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인 저출산-저성장-초고령화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소멸을 막기 위해 대변혁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 의료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저수가라는 고질적인 병폐와 과감히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보건의료정책은 전문가 의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환자 진료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면서 평생 단 한 명의 환자도 진료 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2024년 청룡의 해에 대한민국이 다시금 승천의 기회를 맞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반드시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한다는 상식이 통용돼야 합니다. 오직 회원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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