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환자단체 대표로서 오늘은 비급여 문제를 의료공급자나 보험자의 관점이 아니라 병원에서 치료받는 국민과 환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급여를 관리하고 불필요한 의료비를 줄이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건강보험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그 책임과 부담을 환자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급여, 선별급여, 관리급여와 같은 제도의 이름이 아니다. 아플 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치료비를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 치료비 때문에 생계까지 위협받지는 않는지가 중요하다.
정부는 그동안 비급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정책의 성과는 제도의 종류나 공개한 항목의 수가 아니라 국민의 실제 의료비 부담이 얼마나 줄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첫째, 비급여 문제는 건강보험의 구조적 한계와 함께 해결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보장성의 한계와 일부 의료행위의 낮은 수가, 행위별 수가제의 문제도 안고 있다.
특히 수술과 응급의료, 중증환자 진료처럼 많은 인력과 시간, 높은 위험 부담이 필요한 분야에서 적정한 보상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 영역과 의료기관이 가격을 정하는 비급여가 맞물리면, 의료기관이 비급여 수입으로 부족한 수익을 보완하거나 수익성이 높은 비급여 진료를 확대할 유인이 생길 수 있다.
물론 불필요한 진료와 과잉의료는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보상체계와 지불제도는 그대로 둔 채 비급여만 통제해서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있는가.
기존 비급여를 제한하더라도 다른 항목으로 수요와 비용이 이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급여 문제는 비급여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와 수가, 의료기관의 보상구조를 함께 개혁해야 한다.
둘째, 비급여 가격 공개만으로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늘 심평원 발제자료에 따르면 2026년 공개 대상 비급여는 753개 항목이다. 2025년과 비교할 수 있는 593개 항목 가운데 물가 반영 전 평균가격이 상승한 항목은 436개(73.5%), 의료기관 간 가격 편차가 확대된 항목은 337개(56.8%)다.
이 수치가 전체 비급여 의료비의 동일한 비율 상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격 공개만으로 가격이 안정되거나 의료기관 간 격차가 해소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가격만이 아니다. 왜 이 치료가 필요한지, 치료 효과와 위험은 무엇인지, 건강보험은 왜 적용되지 않는지, 대체 치료는 있는지, 최종적으로 환자가 부담할 비용은 얼마인지 알아야 한다.
의료는 일반 상품처럼 가격만 비교해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특히 중증질환자는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없고 의료진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가격을 공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치료의 필요성과 효과, 건강보험 적용 여부, 환자의 최종 부담액까지 충분히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가격정보가 실질적인 환자 선택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비급여 관리가 실손보험사의 부담만 줄이고 환자 부담을 늘려서는 안 된다.
국민은 건강보험의 부족한 보장을 보완하기 위해 별도의 실손보험료까지 부담해 왔다. 그런데 비급여 관리와 실손보험 개편 과정에서 보험사의 손해율과 보험금 지출 감소가 강조되는 반면, 환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비용은 충분히 검증되고 있는가.
일부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불필요한 보험금 청구는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필요한 치료를 받는 다수 가입자의 보장까지 축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부담이 줄어드는 것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보험금 지급이 제한되면 그 비용은 환자의 몫이 될 수 있다.
특히 암환자는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재활과 합병증 관리까지 장기간 치료비를 부담한다. 여기에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반복적인 서류 요구와 심사 지연, 부지급 문제까지 겪는다면 경제적·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손해율뿐 아니라 가입자의 계약상 권리, 정당한 보험금 지급 여부, 보험료 인하 효과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공적 건강보험의 비급여 관리가 민간보험사의 지출을 줄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보험사의 부담이 줄었다면 그 효과가 국민의 보험료와 실제 의료비 부담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투명하게 검증해야 한다.
넷째, 모든 비급여를 과잉의료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환자에게 비급여는 단순히 선택해서 받는 서비스가 아닐 수 있다. 특히 암환자와 희귀질환자에게는 치료 기회와 직결되는 문제다.
표준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재발한 환자에게 새로운 항암치료나 정밀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재활과 통증 관리, 합병증 치료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의료서비스가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비급여 치료가 효과적이거나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과잉진료와 의학적으로 필요한 치료를 단지 비급여라는 이유로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불필요한 비급여를 줄이는 동시에 의학적 필요성과 효과가 확인된 치료는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해 환자가 경제적 이유로 치료 기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에 요구한다. 비급여 관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비급여 항목을 줄이는 것인가. 실손보험사의 손해율을 개선하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이 질병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비급여 관리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과잉진료를 줄이고 불필요한 의료비를 관리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환자의 부담을 줄이지 못하는 관리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에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비급여 통제에 앞서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와 적정 수가, 지불제도를 함께 개혁해야 한다.
둘째, 비급여 가격뿐 아니라 치료의 필요성·효과·위험,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환자의 최종 부담액을 알기 쉽게 공개하고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실손보험 개편으로 보험사의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국민의 보험료와 실제 의료비 부담도 줄어드는지 검증하고, 정당한 보험금 지급과 가입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넷째, 불필요한 과잉진료는 엄격히 관리하되 의학적으로 필요한 중증질환 치료는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
다섯째, 비급여 관리정책을 평가할 때 공개 항목 수나 보험사의 손해율이 아니라 환자의 본인 부담 감소, 필요한 치료의 적기 이용, 치료 포기 감소 여부를 핵심 성과지표로 삼아야 한다.
국민은 건강보험료를 내고 부족한 보장을 보완하기 위해 실손보험료까지 부담해 왔다. 그런데 막상 아프면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항목이 있고 실손보험에서도 보장이 제한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고 두 가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가.
정부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비급여 관리의 성패는 제도를 얼마나 많이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실제로 줄이고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게 했느냐에 달려 있다. 환자는 비급여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이다.
정부가 비급여 관리의 책임을 환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건강보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부터 출발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