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07.04 06:40최종 업데이트 17.09.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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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을 위한 암 모델 개발"

잭슨랩 유전체연구소장 찰스 리 교수

연구자들의 국제 네트워크 형성 주도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얼마 전 열렸던 국제암유전체컨소시엄(ICGC) 워크숍, 그리고 국립암센터 정밀의료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고 발표하는 모습으로 인상에 남는 이가 있었다.
 
동물모델을 이용한 항암 반응 예측 플랫폼과 면역치료법에 대한 강연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인간 유전체 분야에서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잭슨랩(The Jackson Laboratory) 유전체의학연구소장 찰스 리(Charles Lee, Ph.D., FACMG) 교수였다.
 
그는 인간유전체가 0.1%만 다르고 모두 동일할 거라고 가정하던 2004년에 인간유전체는 '단위반복변이(CNV: Copy Number Variation)'로 인해 4~5%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밝힌 장본인이다.
 
그는 올해 3월부터는 인간유전체 분야의 유엔(UN)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인간유전체기구(HUGO: Human Genome Organization)' 의장을 맡아 사무국을 이화여자대학교로 이전해왔고, 이화여대 석좌초빙교수이며, 이대목동병원 정밀의료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하다.
 
그는 아시아인들을 위한 암 모델 개발을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연구자들과도 협력을 도모하며, 일년에 여섯 차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국 연구자들을 국제적인 네트워크에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도 하고 있다.
 
동물모델(PDX model)을 이용한 암의 화학요법 및 면역치료 반응 예측 플랫폼
 
잭슨랩 유전체의학연구소(The Jackson Laboratory for Genomic Medicine)는 환자의 종양(암)을 이식한 쥐, 일명 '아바타 쥐'라고 불리는 '환자 유래 종양모델(PDX model: patient-derived tumor xenografts model)'을 이용한 항암 및 면역 반응 예측을 비롯해 마이크로바이옴, 인간유전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찰스리 교수는 잭슨랩에 대해 "이쪽 관계자라면 모두가 알 정도로 마우스 유전체(mouse genetics)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소개했다.  
 
캐나다와 맞닿은 미국 북동쪽 메인(Maine)주 바 하버(Bar Harbor)에 가면 잭슨랩은 그 지역 인구보다 많은 수의 의료용 쥐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잭슨랩은 이러한 풍부한 마우스 자원을 활용해 인간 유전체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보스턴과 뉴욕 중간에 위치한 코네티컷에 지난 2014년 유전체의학연구소를 설립했고, 찰스 리 교수가 이곳 소장을 맡게 됐다.
 
리 교수는 "취임 후 수개월 간 고민한 끝에 향후 10년간 유전체 분야에서 가장 유망할 것으로 생각되는 네 가지 분야에 연구를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 네 가지는 바로 암(cancer), 면역학(immunology),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그리고 인간 유전학(human genetics)이다.
 
그는 미국에서 연구하면서 유전체 샘플의 대부분이 백인 유전체라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아시아인의 유전체 샘플 구축을 조금이라도 더 앞당기기 위해 당시 서울대 교수를 겸임하며 한국인의 350개 이상의 암 샘플을 모아 바이오뱅크(일명 Korean Human PDX)를 만들었다.
 
종양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향후 유사한 환자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을 빠르게 확인해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제약회사가 개발한 신약에 대한 테스트 의뢰가 들어오면 유전체 샘플을 모아둔 바이오 뱅크를 통해 시험한다. 
  
현재 잭슨랩에서는 인체 내 미생물 유전체를 분석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도 진행하고 있는데, 아기들의 기저귀에서 채취한 대변 시료의 박테리아 프로파일을 분석하고 이를 이용해 질병 발생 여부를 예측하고 있다. 
 
"최신 기술 도입과 전문 인력 채용에 투자해야"
 
찰스 리 교수는 한국 병원과 연구소들이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유전체 분석 및 진단 분야에서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분석장비를 도입하는 게 1순위, 그 기술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2순위"라고 밝혔다.
 
그는 "암 수술을 받아야 할 때 최신 장비 갖춘 병원, 수술을 잘하는 병원을 찾듯이 정밀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로 최신 장비와 기술을 갖춘 병원을 찾게 될 것"이라며 "기술이 연구의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전체 분석을 퍼즐 맞추는 것에 비유해 "퍼즐은 조각이 클수록 맞추기가 쉽고, 잘못 맞춘 부분을 발견하기 쉽다. 최신 기술은 DNA 분석을 위한 퍼즐을 크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사진: HUGO 사무실이 위치한 이화여대 교정에서 이대목동병원 정밀의료연구소 나득채 박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찰스 리(Charles Lee)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가 선정한 탑 8 논문 중 하나를 쓴 저자
 
학창시절 암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더 소질을 보였던 찰스 리 교수는 캐나다 앨버타대에서 유전학(genetics)을 전공하며 경험한 연구 프로젝트 덕분에 '새로운 발견'에 매력을 느껴 이학박사(Ph.D)를 취득하고,영국 캠브리지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거친 후 미국 하버드의대에서 의학유전학(medical genetics) 연수를 받고 FACMG(Fellow of the American College of Medical Genetics)를 취득했다. 
 
인간 유전체학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2003년 미국인간유전체학회에서 해당 분야의 저명한 교수가 발표하는 강의를 듣던 중 전유전체(whole genome)에서 DNA의 일부 데이터에 노이즈(noise)가 있는 걸 보고 용기 내어 질문했지만 분명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 이후 그는 연구실 동료(Dr. Lafrate)와 함께 이를 밝히기 위한 연구에 몰두했다.
 
일반인들의 유전체를 하나씩 비교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50명 이상을 비교하면서 그 노이즈(noise)가 위아래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이 바로 'CNV(단위반복변이, copy number variation)'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는 이 연구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학술지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에 제출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저명한 학자들조차 발견하지 못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9개월 간 표류하던 이 논문은 결국 승인됐고, 일주일 뒤 같은 기술로 동일한 결과를 도출한 논문이 또 다른 저명 학술지에 발표됐다.
 
어렵사리 세상에 나온 그 논문은 네이처 제네틱스 25주년 기념 때 최고의 논문 8개 중 하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 인간유전체는 0.1%만 다를 거라 여기던 생각이 그가 발견한 CNV 발표 이후 4~6% 정도 다르다는 인식이 공유됐다.

리 교수는 "사람마다 유전체 변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누구는 질병에 쉽게 걸리기도 하고 누구는 약물에 대한 반응이 더 잘 나타나기도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논문을 발표하고 1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 많다"면서 "정밀의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인간유전체(human genome)에 대해 오타(spelling mistake)로 비유될 수 있는 단일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문장 소실(sentence missing)이나 문단 소실(paragraph missing)로 비유될 수 있는 유전자 구조 변화(Structural variation) 등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인간유전체기구(HUGO) 한국으로 이전해와
 
찰스 리 교수는 인간유전체 분야의 유엔(UN)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인간유전체기구(HUGO) 의장에 취임하며 아시아 지역의 유전체의학 분야도 국제 네트워크로 이끌어내고자 사무국을 한국으로 이전해왔다. 지금 이화여대 캠퍼스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HUGO는 1988년 조직된 국제기구로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이한다. 
 
이대목동병원 정밀의료연구소에서 그와 함께 연구를 하고 있는 나득채 박사는 이러한 그에 대해 "찰스 리 교수는 HUGO 사무국을 한국으로 이전해 온 것 외에도 한국 연구자들을 국제 네트워크에 연결시키는 등 한국 유전체의학에 기여할 부분이 크다"고 평가했다.
 
HUGO 역시 국제암유전체컨소시엄(ICGC)과 마찬가지로 연구 차원으로 진행해오던 인간유전체 분야를 임상에 활용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유전자 교정 연구와 더불어 인간 유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에 대해 아시아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생명윤리의 국제적인 가이드라인 마련도 계획하고 있다.
 
리 교수는 "한국을 리드하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한국에 HUGO 사무국을 옮겨오는 게 매우 중요했다"고 밝혔다.
 
현재 HUGO 사무국에서 전략개발 디렉터를 맡고 있는 윤서연 박사(이대 생물정보학 전공)는 "HUGO 사무실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그 의미가 크다"라며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 모두 회원으로 가입된 HUGO를 통해 국제적으로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생명유전체의 부상과 함께 한국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찰스 리 교수는 HUGO에서의 임기 중 목표에 대해 "인간 유전체 분야는 소수의 연구자가개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더 많은 의사와 연구자들이 모여서 지금 가장 최선의 연구가 무엇인지 공유하고 국제적으로 협력하도록 이끌겠다"고 밝혔다.
 
사진: (왼쪽부터) HUGO 전략개발 이사 윤서연 박사, HUGO 의장 찰스 리(Charles Lee) 교수, HUGO 사무국 이지현 담당자 ©메디게이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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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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