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의료계가 강력하게 반대해왔던 두 법안이 3월 말 본회의에서 통과될 위기에 처하면서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 등 집행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여론이 커지며 집행부 총사퇴요구 등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는 것이다.
10일 경기도의사회, 대한병원의사협의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등 다수의 의료단체들이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 등이 본회의에 직회부된 사태의 책임이 대한의사협회에 있다며 집행부의 사퇴를 요구했다.
일찍이 의료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측이 간호법 제정안을 신속처리안건 법안으로 지정해 일명 '패스트트랙'을 통해 본회의에 직회부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간 더불어민주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협상'과 '소통'을 강조해왔던 의협 집행부가 9일 야당의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를 막지 못하면서 의협 회원들은 그 책임을 이필수 회장에게 묻는 모습이다.
먼저 경기도의사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작금의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오늘 국회에서 벌어진 민주당의 국민생명까지 볼모로 한 일방적인 입법 독재 행위일 뿐 아니라 지난 2년 간 이필수 의협 집행부의 투쟁은 없다는 나약하고 잘못된 회무와 이를 수수방관한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로 인하여 초래된 것이라는 점에서 참담함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필수 집행부는 지난 2년 간 수술장 CCTV 의무화 법안, 비급여 보고를 포함한 각종 악제도들이 통과되는 상황에서도 어차피 막을 수 없다는 패배주의적인 회무로 일관하면서도 헌법 소원, 시행령 협상 등으로 회원들을 기만하면서 시간만 끌어온 결과 지금 회원들은 올 하반기 수술장 CCTV 강행으로 절망과 수술포기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의사회는 "그뿐만 아니라 간호법이나 의사면허박탈법에 대해서도 관련 법안이 보건복지위를 통과해 법사위로 상정된 이후에도 겉으로는 수차례 궐기대회를 하며 회원들에게 동참을 호소해왔다"라며 "뒤에서는 이율배반적으로 이 정도면 껍데기만 남겨 두었으니 받아들일 만하다는 식의 메시지를 대내외적으로 반복하면서 정치권에 법안을 통과시켜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준 결과 오늘 악법이 결국 본회의로까지 상정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경기도의사회는 또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책임 있는 인사들이 지금도 회원들 의견수렴도 없이 의정협상에 단장, 위원으로 참여하며 지금도 잘못된 필수의료대책과 비대면 진료에 동의하며 회원들의 권익을 팔고 있다 그간 의료계가 파업까지 하면서 저지해 온 의대정원 등까지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배신회무를 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이에 경기도의사회는 "의협 대의원회는 현 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신속히 임시 대의원 총회를 열어 무기한 전면 파업을 불사한 악법 저지 투쟁에 나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이필수 회장과 집행부에 대해서는 현 사태의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역시 "의협은 지금까지 국회와의 대화와 협상을 중시해왔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 내기는커녕 회원들의 마음속에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 강화법의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 강화법 제정을 막지 못한다면 의협은 더 이상 회원들의 신임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의협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 강화법 본회의 통과 시 집행부 총사퇴를 결의하는 배수진을 치고, 남은 30일 동안 강경 투쟁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41대 의협 선거에서 이필수 회장과 결선투표에서 맞붙었던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아예 개인 페이스북에 직접적으로 "이필수 회장께 드리는 고언"이라는 제목으로 이필수 회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
임현택 회장은 "이 나라의 의료를 무너뜨리고 14만 회원의 생존을 위협할 초유의 악법들이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게 됐다. 이필수 회장께서 내세웠던 협상과 소통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사라졌다. 품위 있고 당당한 모습을 자신하셨던 대한의사협회는 뭇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됐다"고 발언했다.
임 회장은 "회장님, 이제 정말 내려오십시오"라며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회원들의 단합과 투쟁을 호소하며 물러나 주십시오. 그것이 회장으로서 하실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업적이 될 것"이라며 "부디 결단해 주십시오"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이번 의협 집행부에 대한 맹비난과 이필수 회장에 대한 사퇴 주장은 앞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비급여 보고 의무제도,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허용 판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의 추진 및 최근 실효성 없는 필수의료 지원대책 등을 거치며 의료계 내부에 쌓여있던 불만이 폭발하며 가시화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협상'을 강조하며 그간 민주당과 관계를 우호적으로 다져왔던 의협이 이번 의사면허취소법과 간호법의 본회의 직회부를 통해 뒷통수를 맞으면서 이필수 집행부가 강조해 온 대국회 업무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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