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내 손에 살아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나의 꿈을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낭만을 잃었습니다." 의과대학 학생과 전공의 등이 끝을 알 수 없는 의대증원 문제에 이같은 입장을 전했다.
연세의대 교수평의회와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공동 개최한 '2024년 의정갈등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에 의과대학 학생, 사직 전공의, 교수, 변호사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의대증원 추진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의대생 "1년 공백 두렵지만, 현 정책을 막지 못한 의료의 미래가 더 두렵다"
연세의대 김민성 학생회장은 이날 휴학으로 인해 발생한 1년의 학업 공백이 두렵지만 정책을 막지 못했을 때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가 더 두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은 "의과대 학생은 미래 의료인으로서 지금의 불합리함을 바꾸고 본인의 미래와 의료 시스템의 미래를 걱정하고 개척해 나갈 책임과 의지가 있다. 우리 미래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학샹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행하고 있다"며 "의과대 학생은 본인의 주체적 의지로 1년간의 휴학에 결의하고 행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1년 동안 발생한 학업의 공백이 두렵지만 정책을 막지 못했을 때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가 더 두렵다"라며 "후회 없는 결단이 있을 경우에만 원상 복귀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정부의 과학적·논리적 근거 없는 주장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김 회장은 "주장과 설득에 있어 핵심가치로 배우는 건 과학과 논리다. 의대생들은 질병의 올바른 진단과 치료, 처방을 위해 반드시 적절한 근거가 수반돼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의료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는 과학과 근거 없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합리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못하다"라며 "정부가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해 큰 그림을 그렸다고 믿고싶지만 회의록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적 추계를 모르겠고 일단 올해는 (증원된 정원의) 50%만 뽑는 것도 허용하겠다며 시장에서 물건 가격 흥정하듯이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정하고 있다"며 "교과서와 수업에서 배운 근거 기반 의료를 완벽히 부정하는 정부 행태를 보고 학생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었겠느냐"라고 비판했다.
전문가·피교육자·노동자인 전공의가 바라본 정부 정책은? "잘못된 필수·지역의료 붕괴 원인 분석"
세전협 김은식 대표(사직 전공의)는 전문가와 피교육자, 노동자로서의 전공의 총 3가지 관점에서 의료정책이 어떤 문제를 가지는지 짚었다.
김 대표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은 의사 부족으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며,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응급실 뺑뺑이의 가장 큰 원인은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과밀화와 의료 전달체계의 붕괴다. 소아과 오픈런 역시 의사 부족이 원인이 아니다. 10년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는 30% 가까이 증가했다"며 "아픈 자녀를 둔 부모가 출근 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발생하는 진료비 통계를 보면 소아과는 다른 과에 비해 증가의 폭이 좁다. 특히 인당 진료비는 과거에 비해 줄었다"며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다른 분야로 업을 변경한 소아과 의사들이 많아졌고, 설상가상으로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으로 의료진이 대거 구속되면서 민형사상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소아 환자 진료를 접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김 대표는 네덜란드의 의-정 간 활발한 소통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네덜란드는 보건의료 서비스 연구소(NIVEL)를 통해 의사와 수련기관, 보험자가 참여하는 의료인력 거버넌스를 운영하고,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있다"며 "거버넌스를 통해 의료 인력 정책을 논의하고 정책 권고안을 도출하면 정부는 실제 정책을 수립한다. 정부는 의료 인력 계획에 관여하고 규제와 감독을 담당하지만 보건의료 인력 소득과 조정 자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국과 해외 전공의 수련 지원 제도를 비교하며 "정부는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 전공의 수련환경 내실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편은 어떻게 할지, 이에 대한 비용은 누가 부담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전공의 인력 확충과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미사여구만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대 교수 "전공의 보호와 의사 '정체성' 위협에 맞서기 위해 나섰다"
연세의대 이일학 교수는 '2024 의정사태-교수의 이상과 현실'을 발제하며 정부의 정책 추진은 의사의 정체성을 위협시킨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교수는 단순히 기술자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로서 자신을 끊임없이 스스로 채워나가는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다"라며 "교수들은 전공의를 보호하기 위한 의지가 있어 모였다. 또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독립·자율적인 전문가의 정체성에 위협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닌 시스템의 결과로 치부되고 있다. 정부는 우리의 의견 제시를 형별과 규제로 누르려고 한다"며 "대화의 상대가 아닌 명령을 들어야 하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전문직의 특성 중 하나는 자율성인데 그것을 행사하지 못할 때 전문직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부 행정명령, 유효하지 않다" 법조계도 의대증원 등 정책 추진 우려
대한의사협회 이재희 법제이사는 "잘 만들어진 의료체계를 갑자기 검사 출신의 누군가가 나서 부끄럽게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이사는 "행정명령은 상위의 헌법과 법률을 위반할 수 없다. 전공의 특별법은 수련계약 체결 시 전공의의 자유의사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며 "하지만 정부는 아직 계약서도 안 쓴 인턴, 레지던트 0년 차를 강제로 (병원에) 집어넣으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정부의 행정명령은) 당연히 유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공의 사직의 물결이 일어날 것을 감지한 정부는 사직 전공의에게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할 수 없으니 사직서 수리를 일괄적으로 금지시켰다"며 "예외적 사유의 검토 없는 일괄적 금지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판단된 예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행정처분의 세부기준을 정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별표 상에 업무개시명령 위반의 행정처분 기준은 정해진 게 없다. 가장 유사한 기준인 '진료를 거부한 의료인'이 1개월 면허정지를 당한다"며 "수련병원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되려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집단성, 전격성(예측불가성), 손해 막대성 등이 전재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