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전 세계적으로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은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에 대한 '대동맥판막삽입술(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 TAVI)'이 국내에서는 비현실적 기준과 수가로 인해 꼭 필요한 환자에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최소 6인의 전문의로 구성된 '심장통합진료팀'이 TAVI 시술이 필요한 환자인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조건을 내걸어 환자와 주치의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고, TAVI 시술에 대한 비현실적 수가 책정으로 시술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신라호텔에서 개최하고 있는 제19회 동계국제학술대회(KSIC 2023)를 기념해 14일 학회의 현안을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같은 현실을 알렸다.
TAVI 시술, 대동맥판막협착증 개흉 방식의 '판막수술'과 동등한 치료법으로 '인정'
이날 학회가 화두로 삼은 TAVI 시술은 '판막수술'과 함께 '대동맥판막협착증'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 대동맥판막협착증은 대동맥의 혈액이 좌심실로 역류하는 것을 막아주는 '대동맥판막'이 어떤 이유로 좁아지게 돼 심장에서 온몸으로 혈액이 이동하는 과정에 장애가 생기게 되는 질환을 의미한다.
대동맥판막협착증이 진행되면 심장은 이를 보상하기 위해 더욱 더 강하게 수축하게 돼 시간이 흐를수록 심장 근육이 비후되고, 이로 인해 심장 기능에 이상이 와 호흡 곤란, 흉통 및 실신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 대동맥판막협착증은 증상이 발생할 경우 기대여명이 3년 미만에 불과하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1년 생존률이 50%에 불과한 매우 위험한 질환이다.
전통적인 치료법인 판막수술은 전신마취 후 가슴을 열고 체외 순환기를 삽입해 심장을 멈추고 잠시 멈춘 심장을 열어 협착된 대동맥판막을 제거해 인조판막을 삽입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가 70대 이상의 고령에 다중 위험질환을 동반한 경우가 많아 수술의 위험이 크고, 개흉술에 대한 거부감이 커 수술을 받지 못하고 약물치료를 하다가 사망하는 환자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판막수술을 대체할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TAVI'다. TAVI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미국의 국가등록사업을 살펴보면 2015년 10월 1일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총 27만9066명의 중증의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 중 14만2953명이 TAVI를 시행했다.
특히 TAVI에 대한 선호도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2015~2016년에 수술대비 44.9%였던 TAVI시술이 2021년도에는 88%로 증가 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학회는 "여러 연구들을 통해 저위험도(수술사망 예측률 4%미만) 환자군에서조차 TAVI시술이 고식적인 개흉술을 통한 대동맥판막치환술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임상결과를 보여주어, 개흉술을 못하는 환자에게만 실시하는 차선책이 아닌 수술과 동등한 치료법으로 이미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6인 다학제 '심장통합진료팀'이 TAVI시술 가능여부만 결정…"환자 치료선택권 뺏어"
우리나라도 2011년부터 TAVI가 도입됐지만,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엄격한 규제 아래에 놓여 다른 나라에 비해 TAVI 시술 시행 건수가 저조한 수준이다.
아래는 학회가 공개한 우리나라 TAVI 시술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례이다.
#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으로 TAVI를 받지 못하고 급사한 78세 여성 A씨
A씨는 고혈압, 당뇨,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 등 과거력이 있으나 활동에 심한 제한은 없었다. 사망 10개월 전 A씨는 호흡곤란으로 심장내과에 와서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과 관련된 심부전 진단을 받았다. 환자는 개흉수술에 대한 부담으로 TAVI시술을 원했으나, TAVI 급여 확대 이전이라 비용 문제로 약물치료를 하며 관찰하기로 했다. 사망 1개월 전 다시 호흡곤란과 폐부종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TAVI 보험급여 직후였기 때문에 TAVI를 위한 심장통합진료를 시행했다. 그러나, 심장통합진료에서 흉부외과 전문의 한 명이 나이도 80세 이전이고 간경화임에도 수술 고위험군 아니라며 TAVI 승인을 거부했다. 보호자와 환자는 주치의와 상의해 TAVI 시술을 위해 다른 병원 전원을 결정했는데, 전원 하루 전날 심장마비가 발생해 사망했다.
학회는 2015년 보건복지부 고시를 통해 TAVI 시술이 선별급여가 된 이후 임상데이터 축적과 연구를 통해 표준치료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했고, 2021년 한해 1084건의 TAVI 시술을 시행하는 등 결실을 맺었다.
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보건복지부는 2022년 5월부터 조건부 선별급여 항목인 TAVI의 급여기준을 세분화해 급여화했다. 해당 기준에 따라 TAVI 시술을 보험급여로 실시하려면 다학제로 구성된 심장통합진료를 시행해 TAVI 치료 필요성을 판별해야 한다.
이에 따라 80세 이상과 수술 고위험군(수술에 의한 사망이 8% 이상으로 예상되는)은 본인 부담 5%의 완전 급여, 수술 연관 사망 예측률 4~8%의 중간 위험도 군은 본인 부담 50%의 선별급여, 그리고 수술 사망 예측률 4% 미만인 저위험도 군은 본인 부담 80%의 선별급여를 적용받는다.
배장환 보험이사는 "해외 선진국들은 대부분 최소 75세 이상이 되면 TAVI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80세 이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80세가 되지 못하면 환자가 원해도 TAVI시술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또 3000만원에 가까운 TAVI 시술도구에 대한 비용의 80%를 본인 부담으로 시행해야 하는 환자들은 본인이 원해도 경제적 이유로 인해 수술의 위험도가 높은 판막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내몰리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학회는 TAVI 치료를 결정하기 위한 '심장통합진료팀'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복지부가 제시한 심장통합진료팀의 구성은 심장내과 2인, 흉부외과 2인, 마취통증의학과 1인, 영상의학과 1인 이상의 전문의로, 최소 6인이 대면으로 모여 환자의 TAVI 시술의 가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언뜻 보기에 이상적인 다학제 진료처럼 보이나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배장환 보험이사는 "심장통합진료는 원칙적으로 환자가 참석하지 않는 구조로 돼 있다"며 "여기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환자나 보호가 치료 방침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배 보험이사는 "판막수술과 TAVI 시술이 동등한 치료법이라면 환자가 양측의 설명을 듣고 최종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현실은 환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최근 의료계에서는 공동의사결정(Shared decision-making)이라고 해서 연구근거와 임상 전문지식, 환자의 관심을 결합해 최고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현재의 방식이 환자와 보호자가 TAVI 시술 여부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공유받고 스스로 치료방침을 결정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문제 삼았다.
또 배 보험이사는 "6인으로 구성된 심장통합진료팀 전원이 일치하는 판정을 내려야만 TAVI 시술이 가능하다. TAVI는 고도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시술이고, 판막수술과 TAVI 시술이 최소한 중위험도까지는 동등하다고 인정돼 있는데 지금도 분위기는 수술이 먼저고 TAVI가 차후 수단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흉부외과에서 수술을 우선해서 반대하게 되면TAVI 시술을 할 수 없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환자의 상태가 매우 중하고, 전문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완전합의체의 결정을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인 경우가 많은데도, 한 명의 반대만 있어도 TAVI를 실시할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납득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복지부가 강제하고 있는 심장통합진료는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의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TAVI시술의 가능여부만 결정하고 있어 사실상 TAVI 시술의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반대로 흉부외과에 입원하는 중증 대동맥판막협착 환자는 심장통합진료팀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TAVI 시술에 대한 설명도 없이 개흉수술을 하고 있었다.
학회는 "이는 환자가 가져야 할 적절한 치료법을 가질 권리를 제한하는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TAVI 뿐만 아니라, 수술적 치료를 고려하고 있는 모든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에 대해 심장통합진료가 제공되도록 해야하며, 모든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들이 TAVI라는 치료방법이 있음을 공지 받고 순환기내과, 흉부외과 등의 의사들의 협의를 거쳐 최선의 치료방침을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자를 중심으로 두고 전문가답게 합의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근거 없는 TAVI 시술 저수가, 보조 시술 수가 불인정…"시술하면 할수록 손해"
TAVI 시술을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바로 비현실적인 수가다.
학회에 따르면 TAVI 시술 급여는 모두 재료대에 대한 보상이며 시술 행위에 대해서는 48만원으로 근거 없는 저수가를 고수하고 있다. 심평원에서도 수술적 접근방법과 비교해 시술 시간은 72%, 업무량은 97%에 해당됨을 확인했으나, 유사행위인 경피적 폐동맥판막삽입술 행위수가의 1/3도 안되는 수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배 보험이사는 "대동맥판막협착증이 굉장히 심해 TAVI 기구가 판막을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아진 분들이 약 30% 정도 되는데 이런 환자는 시술 전에 사전 풍선확장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풍선 확장술의 행위수가가 TAVI 행위수가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 심평원은 TAVI 시술의 보조 시술에 대한 수가를 따로따로 산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판막과 관련된 다른 시술은 지난 5년 동안 정부의 중증의료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모두 수가가 올랐는데, TAVI 시술은 당시 선별급여 단계라 수가 인상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배 이사는 TAVI 자체의 저수가 문제 외에도 전문의가 6명 이상이 모이는 심장통합진료는 물론 TAVI 시술 동안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수술장을 비우고 강제 대기해야 하는 흉부외과 전문의에 대한 보상은 아예 책정이 안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TAVI 시술을 실시하는 의료기관은 시술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인데,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년 배출되는 내과 전문의 550명 중에 심혈관중재시술을 전공하는 심장내과 전임의 수는 꾸준히 감소해 2022년 기준 49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학회는 "정부는 중증, 응급 수술 등 필수의료 분야를 강화하겠다고 발표를 지속하고 있으나, 의료진의 헌신에 가까운 현실이 계속 반복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환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심장내과 의사의 권리 또한 비현실적인 형식과 수가에 의해 빼앗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학회는 환자들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TAVI 시술을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비현실적인 형식과 수가 개선을 촉구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