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12.02 18:23최종 업데이트 21.12.0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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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신부 이태석' 48년의 삶의 기록과 사랑, 나눔, 행복에 관한 이야기

이충렬 저, 수단어린이장학회와 함께 발간하는 선종 10주기 기념도서

"사랑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숨 막히는 불안과 팽배한 갈등, 만연한 질병, 물질과 권력에 중독된 사람들, 이렇게 어두운 시기일수록 희망과 나눔의 의미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누기에 가진 것이 너무 적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하찮은 1%가 누군가에게는 100%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감동시킨 이태석 신부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이유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아픈 이와 청소년을 끝없이 사랑한 사제였고, 수도자였으며, 선교사였다.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을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실천하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기에 그의 숭고한 사랑과 헌신 앞에 고개를 숙인다. 

그동안 이태석 신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도서와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됐다. 그리고 마침내 이태석 신부 48년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신부 이태석'이 김영사에서 이충렬 저자에 의해 출간됐다. 이 책은 수단어린이장학회와 더불어 발간하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기념도서다. 이태석 신부가 생전에 함께했던 수단어린이장학회는 그의 뜻을 기려 아프리카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가 몸 담았던 한국 살레시오회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완성된 이 책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출판 인가를 받은 ‘공식 정본 전기’다.

저자 이충렬 작가는 한국 전기문학의 새 지평을 열며, '간송 전형필' '아, 김수환 추기경' 등 한국 문화·사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알리는 데 전념해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인 삶과 영성을 충실히 복원했다. 이를 위해 먼저 편지와 이메일, 메모, 축일 카드 등 각종 문서를 비롯해 사진과 영상까지 이태석 신부가 직접 남긴 모든 기록을 섭렵했다. 서적과 논문, 일간지, 천주교 회보 등 이태석 신부와 관련된 자료 또한 전부 꼼꼼히 검증했다. 또한 어린 시절 친구들, 의대 동창과 살레시오회 동료 신부들, 톤즈에서 함께 지낸 봉사자까지 직접 취재해 육성을 담았으며, 지금까지 잘못 알려졌던 사실을 바로잡고 공개되지 않았던 일화를 조명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해 아프리카의 눈물을 닦아준 사람,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의 영원한 친구 이태석 신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그를 톤즈로 이끈 운명 같은 만남, 치열했던 내면의 갈등과 짧지만 아름다웠던 이별까지 책 속에 담았다. 그리운 사람, 이태석의 삶 사랑 나눔을 온전히 되살려내고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의 영원한 친구 이태석 신부의 48년 삶의 기록과 사랑, 나눔,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그려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 불리는 남수단 톤즈는 오랜 내전으로 주민들이 떠나고 황폐화된 절망의 땅이 었다. 이태석 신부는 그곳에서 맨손으로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희망을 일구었다. 그가 ‘쫄리 신부님’, ‘수단 의 슈바이처’라 불리며 수많은 생명을 구한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이태석 신부는 오전마다 200~30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학교에서는 수학을 가르쳤고, 오후엔 오라토리오 활동을 하면서 밴드부 아이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연습시켰다. 저녁에는 학생들 자습을 도와줬는데, 응급 환자가 심심치 않게 찾아오곤 해 보통 자정쯤 잠자리에 들곤 했다. 가끔은 심한 말라리아로 병원 문을 두드리는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그도 인간이기에 짜증 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가진 것 하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예수님을 맞이하듯 기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치료했다.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서 퇴원하는 환자들을 보면 큰 보람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이태석 신부가 왜 하필 아프리카 중에서도 남수단 톤즈로 선교를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의대에 진학했던 그가 어떻게 자신의 성소를 받아들여 사제가 됐는지, 여러 수도회 가운데 왜 살레시오회에 입회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열악한 아프리카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있는 선교사가 됐는지 등 이태석 신부를 톤즈로 이끈 운명에 주목했다. 특히 이태석 신부가 톤즈로 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제임스 신부를 국내 최초로 인터뷰했다.

자신감에 찬 그는 제임스 신부를 따라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된 마을을 방문했다. 그러나 자동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악취를 참지 못하고 빈 들판을 향해 달음질쳤다. 그리고 톤즈의 너른 벌판에서 의술만 믿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사와 선교 사제가 되겠다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먼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우러나왔다. ‘인간 이태석’이 무너지고 ‘사랑의 선교 사제’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태석 신부가 가르쳤던 톤즈의 학생 가운데서는 수녀 한 명과 살레시오 수사 두 명이 탄생했다. 그와 가깝게 지냈던 신학생은 이제 신부가 되어 남수단에서 사목 활동을 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의 봉사와 선행을 따라 의사, 약사, 의대생이 된 제자들도 많다. 이태석 신부의 생애는 길지 않았다. 그가 톤즈에서 활동한 기간도 채 10년이 넘지 않는다. 그러나 이태 석 신부의 짧은 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참된 성공과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이태석 신부가 실천한 희생과 헌신은 인간으로서 진정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왜 의사를 그만두고 신부님이 되려고 하세요?” 이태석은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머뭇거렸다. 그러다 문득 돌과 다이아몬드 비유를 떠올렸다. “너는 길에 돌멩이와 다이아몬드가 있으면 뭘 줍겠니? 나에게 의사는 돌멩이고 하느님과 너희들은 다이아몬드야.” 이태석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저자는 이 책의 인세 전액을 수단어린이장학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태석 신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이제 그가 전한 나눔의 메시지에 우리가 답할 차례다. 이 책과 함께 이태석 신부가 미처 다 펼치지 못한 ‘사랑 나누기’를 완성할 수 있다.

임솔 기자 (sim@medigatenews.com)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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