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3.12 13:38최종 업데이트 22.03.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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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대 사태는 제2의 조국 사태

[칼럼] 양은건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 홍보이사

공의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메디게이트뉴스] 3월 2일, 2030 의사와 의대생들이 모여 구성된 단체인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이 헝가리 4개 의대를 대상으로 한 보건복지부의 인정은 무효라며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대학들을 인정하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의 인정과정이 부적절했다는 판단에서다.

해외의대 졸업생이 국내의사가 되기 위한 의사고시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졸업한 의과대학이 보건복지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2014~2018년 헝가리 4개 의대 인정 당시 존재하던 인정기준에는 19가지 심사항목이 있었는데 헝가리의대는 이 중 다수의 항목을 위반했다. 유학생 특별반 운영, 입학시 현지언어능력 검정 시스템의 부재, 제한없는 입학정원 등이 그것이다.

인정기준의 19가지 심사항목은 하나도 빠짐없이 저마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해당 의과대학의 교육 수준, 합법적인 입학과정, 상호주의의 위배 여부 등을 가려낸다. 위반된 항목들의 경우는 해당 의대가 학위장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지를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비의료인들은 헝가리의대의 수업이 영어로 이뤄지는 것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규교육을 받아본 의사들은 안다. 현지 언어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의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환자와의 소통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학교육을 위한 진료현장 자체가 '환자, 학습자, 임상의사가 함께 있는 공간'(Dornan et al, 2007)으로 정의되며 환자 진료를 통해 배우는 것이 효과적(Slotnick et al, 1999)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지언어 시험도 보지 않은 채 외국인 유학생만 모아서 영어로 수업하는게 문제인 이유다.

하지만 헝가리 의대들은 입학시 헝가리어 시험을 보지 않으며, 재학 중에도 헝가리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이는 헝가리의대 한국인유학생들의 유튜브나 블로그 뿐만 아니라 영미권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의 유럽출신 의대생들도 지적한 사항이다.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헝가리의대의 한국인 유학생이 약식으로 헝가리 의사면허를 받기 위해 헝가리에서 의료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다는 사실이다. 의사를 하면 안 되는 의사를 배출하는 의과대학이 말이 되는가. 공의모는 이 각서를 쓴 졸업생 명단을 확보했는데, 실명까지 확인된 사람만 50명에 달한다. (헝가리는 공공의료를 시행하는 국가로 모든 의료인의 명단을 누구나 온라인에서 검색할 수 있다)
 
여기까지 알게 되면 이런 의과대학이 어떻게 보건복지부의 인정을 받았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인정심사를 국시원에 위탁하는데, 국시원에서 각종 서류의 준비 및 검증을 진행하며 인정심사는 의과대학교수 5인으로 구성된 '외국학교 인정심사위원회'(위원회)가 담당한다. 사실상 기성 세대 의사들이 해외의대의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위원회와 학부모와의 연관 가능성이다. 헝가리의대는 현재 한국학생들만 매년 200명 가까이 진학하고 있다. 이 중 학부모가 의사인 사람은 유학원 자료로만 50% 이상이다. 2019년 MBC PD수첩 방송에 의하면 헝가리 데브레첸의대의 경우 학부모의 95%가 의사였다. 헝가리의대가 인정된 2014년도 헝가리의대 졸업생들의 부모도 의사였다.

의심스러운 것은 이 뿐만 아니다. 인정심사는 서류만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2014년에 국시원 직원들이 이례적으로 헝가리에 방문해 헝가리의대 현지심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해 헝가리 2개 의과대학이 인정됐다. 현지심사를 해서 더 면밀히 심사한게 아니라 오히려 심사를 느슨하게 한 것이 아닐까 추정되는 대목이다. 참고로 마지막으로 인정받은 헝가리 세게드의대가 인정받은 게 2018년인데, 헝가리에서 의사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기 시작한건 2017년부터다. 심사가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헝가리의대는 다수의 인정기준을 위반한 정황이 있는데도 인정심사를 통과해 심사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여러가지 의심을 낳는다. 심사는 적절했나? 인정을 통한 별개의 이익이 존재한 것은 아닌가? 기성세대의 학맥·인맥이 심사 과정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가? 결국 헝가리의대 졸속 인정은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본다. 헝가리의대 사태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공정성을 위배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세가지 정의의 원칙을 제시했다. '최대한의 자유 평등 원칙', '차등의 원칙', 그리고 '기회균등의 원칙'이 그것이다.

헝가리의대 사태는 이 중 두가지 원칙을 위반했다. 둘째와 셋째 '차등의 원칙'과 '기회균등의 원칙'이다.

우선 '차등의 원칙'은 기본적 권리와 기회가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돼야 하지만 사회의 열악한 위치에 있는 '최소 수혜자들'에게 '최대 이익'을 보장하려는 목적을 위해 불평등하게 배분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헝가리의대 사태는 '차등의 원칙'을 위반했다. 헝가리의대 옹호자들은 '의사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며 마치 '최소 수혜자들'이 권리와 기회를 배분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사가 될 기회를 얻은 유학생들 대부분은 의사 등 기득권층의 자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부모의 병원을 물려받을 사람들이기까지 하다. 불평등한 이익을 받아야하는 '최소 수혜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양보를 해야할 사람들이 되려 특권을 챙겼다.

'기회균등의 원칙'은 모든 사람에게 직책 및 직위에 대한 공정한 기회균등이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헝가리의대 사태는 '기회균등의 원칙'도 위반했다. 얼핏 보면 기회균등의 원칙은 위반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헝가리의대 졸속 인정은 제도적으로 모든 한국인에게 의사가 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회균등은 지켜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헝가리의대의 경우 6년간 학비가 최소 2억5000만원 이상 소모되며, 여기에 예비시험 응시기간까지 필요한 7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과 시간은 현실적으로 '누구나 진학'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렇기에 소위 '기득권층' 이상의 자녀만 진학할 기회를 얻는 셈이다. 헝가리의대 한국인 유학생 부모의 절반 이상이 의사인 것이 그 증거다.

이는 위의 두 개 원칙을 위반한 조국 사태나 인국공 사태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조국 사태는 기득권인 조국 본인이 '최소 수혜자'가 아님에도 특권을 챙겼으며, 권력과 인맥으로 '균등하지 않은 기회'를 얻어냈다. '차등의 원칙'과 '기회균등의 원칙'을 어겼기에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고 공정을 원하는 2030이 등을 돌린 것이다.

지난 보궐선거와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 중 하나가 공정성이다. 양 당이 공정성에 대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집권당 후보인 이재명 후보가 조국 사태에 대해 세 차례 사과하기까지 했다. 결국 공정은 여야를 막론하고 2022년 대한민국의 시대적 화두인 것이다.

헝가리의대 사태는 결국 공정성 면에서 제2의 조국사태라고 볼 수 있다. 공정을 원하는 2030 의사와 의대생들이 모여 결성한 공의모가 끝내 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부디 법원의 올바른 판결을 기대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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