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KAIST와 포스텍에 의대 신설을 추진하는 가운데, 기존에 앞장서서 의사 과학자를 양성해 온 서울의대가 우리나라 의사과학자 배출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의대가 없어서'가 아닌 '의사과학자 진로에 대한 불안과 안정적인 연구 환경의 미흡함'을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의대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의대부터 임상수련, 대학원까지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출구전략이 미흡해 의사과학자를 결심했던 학생들도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별도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의대를 신설하더라도 결국 의사과학자의 연구를 뒷받침해 줄 국가 사회적 지원이 없이는 우리 사회에 기여할 의사과학자를 배출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서울의대는 10일 서울의대 행정관 3층 대강당에서 의사과학자 양성프로그램 15주년 및 의사과학자양성사업단 1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국내 의사과학자 육성 방향과 전략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서울의대 의사과학자양성프로그램에도…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중도 포기'
이날 서울의대 의사과학자양성사업단 김종일 단장은 서울의대가 2008년부터 시작한 의사과학자 양성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의사과학자양성사업단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소개했다.
서울의대는 의과대학 학부에서 수련 과정에 걸쳐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교육하고, 의과학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융합형 의사과학자와 기초의학 연구에 몰두하는 의사과학자 등 투 트랙으로 나눠 의사과학자 양성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공의 연구지원 사업, 전일제 박사학위과정 지원사업(전문연구요연 병행 가능) 등과 더불어 학‧석사 연계제도, 전공의 연구지원사업, 기초연구연수의 지원사업 등 전주기적 의사과학자 지원제도 등으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있다.
김 단장은 "서울의대는 2016년부터 연구 중심의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책과제를 수행했다. 당시 연구 중심의대가 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의사과학자 양성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됐다"며 "정부도 해당 정책과제를 참조해 융합형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의대는 복지부의 융합형 의사과학자 프로그램과 별개로 2020년에 학석사연계과정을 만들었고, 2022년 1기 5명이 8월에 졸업한 후 9월부터 석사 연구를 하고 있다. 2023년에도 5명이 지원했다. 이때 서울의대 의사과학자양성운영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SPST(SNU-SNUH Physician Scientist Training)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원했는데, 이후 좀 더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지난해 위원회를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단으로 변경해 공식으로 발족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서울의대 차원의 노력에도 미국과 일본 등 해외와 비교하면 국내에서 세계적 수준의 의사과학자가 많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김 단장은 "우리나라는 해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의사 과학자 양성을 위한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의사과학자 트랙 진입을 위한 예산 및 제도는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미 의사과학자 트랙에 들어온 학생들을 어떻게 여기에 남게 하는지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학생들이 의사과학자 트랙에 진입하지 않거나, 중도에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라며 "실제로 박사학위를 마친 후 출구 전략에 대한 대책이 매우 부족하다. 연구 급여라든지 연구 시간을 보호해준다든지 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더 이상 의사과학자를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의사과학자 트랙에 들어와 박사까지 한 학생들이 본인이 원하고 최소한의 자격 요건만 갖춘다면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산 증액뿐 아니라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컨트롤 타워와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병역 문제를 포함한 의사과학자 양성 특별법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의사과학자 연구 정년 보장, 연구비 지원, 군 복무 정책 개선…내외재적 인센티브 필요
뒤이은 패널 토의에서도 한번 의사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이들이 끝까지 자신의 진로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인제의대 이종태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과대학 졸업 후 취업으로 이어지는 의사 과학자 양성 경로에 대한 체계적인 설계와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 의사과학자 진로를 선택하더라도 임상과 달리 상대적으로 진로가 불명확해 장래 비전을 세우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상의사의 경우 연구를 하고 싶어도 진료 현장과 연구를 병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전국의 의사과학자와 의사 연구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동료 의사와의 차이 일과 생활의 균형, 사회적 인식 등을 의사 과학자로서 자기들의 장애 요소라고 인식을 하고 있었다"며 "의사과학자가 보람을 가지도록 장기적인 국가 연구 정책이나 안정적인 국가 연구 정년 보장, 군 복무 정책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세의대 이민구 교수는 실제로 기초의학 대학원을 다니던 학생이 군복무 때문에 연구가 단절된 사례를 소개하며, 정부의 의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문제 삼았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사회 전반이나 정부는 의대의 사명이 건강보험을 환경 하에서 제한된 자원을 갖고 국민 진료를 잘할 사람을 육성하는 것으로 보는 같다. 그 외에 의사과학자 양성 등은 부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첫 번째 목표는 배출되는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진료만 하는 의사를 배출하는 것 보다 국부를 창출하고 우리나라의 의학 발전과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리더를 배출하는 것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기존에 있는 의과대학들의 목표를 새로 수정하고 지속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고려대 안준모 교수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외재적 인센티브와 내재적 인센티브 두 개가 모두 필요하다. 외재적 인센티브는 쉽게 말해 돈이다. 정부 차원에서 의사과학자를 위한 전용 펀딩이라든지 신진 기초 중견 리더를 단계별로 커버하는 연구비 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가 R&D가 100조원이 넘었고, 정부 R&D도 30조원이 된다. 정부 R&D와 더불어 민간 R&D를 어떻게 끌어올 것인지도 정책적으로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외재적 인센티브만큼 중요한 게 내재적 인센티브라고 생각한다. 의사과학자 진로 선택으로 개인이 위험 부담을 안지 않도록 하고, 의사과학자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존경할 만한 좋은 사례를 발굴하고, 인사 제도 측면에서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며 "본인이 의학계 나아가 국가 산업과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내재적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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