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얼마나 무지하고 법안의 내용 파악에 최소한의 성의도 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9일 국회의원들은 한의약 난임 치료 시술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현재까지는 지방자치단체가 한방난임치료를 지원해 왔다.
필자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이 설립된 2012년부터 한의학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지적해왔는데, 한방 관련 문제 중에서 가장 끔찍한 문제는 난임치료 한약이다. 일반적인 한방치료처럼 안전성·유효성 근거가 없다는 정도가 아니다.
한약을 복용한 난임 여성들의 임신성공률이 아무 치료를 받지 않았을 때 의학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준보다 높지는 않은데, 임신하는 경우 태아를 잃는 비율이 매우 높다. 한방난임치료의 출산 성적에 대한 몇 안 되는 자료들을 보면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으로 임신한 난임 여성들의 출산실패율보다 최대 8배까지 높다.
한약이 난임에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 근거가 없어서 보건복지부는 6억 2000만원의 연구비를 동국대일산한방병원 김동일 교수팀에게 지원해 연구를 의뢰했다. 김 교수팀은 2015년 6월부터 2019년 5월까지 강동경희대병원, 원광대광주한방병원과 함께 임상연구를 진행했는데, 임상시험에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조군(control group)을 생략하고서 진행해 안전성과 유효성 판단이 불가능하다. 몰라서 그랬을 리는 없고, 고의로 연구비와 4년의 시간을 낭비했으니 책임을 추궁하고 연구비를 환수해야 마땅한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연구에서 끔찍한 결과가 튀어나왔다. 임신한 13명 중 절반에 가까운 6명이 출산에 실패했다. 연구팀은 7개월 동안 14% 정도가 임신한 사실을 두고 인공수정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언론에 사기를 쳤다. 국내 통계에서 인공수정은 7개월이 아닌 1개월(1주기)에 14% 정도가 임신에 성공한다. 7개월이면 인공수정을 3번까지도 시도할 수 있다. 언론은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김동일 교수의 거짓말을 그대로 보도했다.
한의사들은 여러 지자체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임신성공률이 나온 사례들을 홍보해왔다. 그러나 바른의료연구소와 단국의대 최유미 교수 등의 분석 결과 한의사들이 홍보하는 수치가 상당히 부풀려졌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사람들이 난임 환자의 자연임신 가능성을 실제보다 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방난임치료로 임신에 성공하는 비율은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임신율에 비해 높지 않다.
가장 의아한 부분은 한의사들이 생아출산율을 홍보한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지자체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 중에서 최종적인 생아 출산 여부까지 조사해 공개적으로 발표한 자료가 없다.
한의사들은 출산에 성공한 사람들을 모아서 홍보하는 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반면에 임신한 경우 중 유산한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혹은 최종적으로 얼마나 출산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의도적으로 조사하지 않았거나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 같다.
일부 논문으로 발표된 사례들은 모두 논문 작성 시점에 임신 중인 대상자나 연락이 두절된 사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지자체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에 관한 논문의 제목과 생아출산 실패(사산 또는 유산) 비율을 정리하면 이렇다.
2017년도 경기도 한방 난임 지원 사업 진료 결과 분석 연구 - 사산 또는 유산 최소 34.6%, 최대 61.5%
2019년도 충청남도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에 대한 결과 보고 - 사산 또는 유산 최소 22.2%, 최대 72.2%
2021년도 인천광역시 한의약 난임 지원 사업에 관한 결과 연구 - 사산 또는 유산 최소 28.9%, 최대 100%
2021년도 광주광역시 한방 난임 치료 지원 사업에 대한 결과 보고 - 사산 또는 유산 최소 8.7%, 최대 100%
2022년도 경기도 한의약 난임지원사업 결과 분석 연구 - 사산 또는 유산 최소 33.3%, 최대 63.3%
국내 난임 환자의 임신 뒤 출산 실패 비율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의 대규모 조사 자료인 ‘2017년도 난임부부 지원사업 결과평가 및 저소득층 지원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여성의 5.5%, 체외수정으로 임신한 여성의 21.6%가 유산 또는 사산으로 생아 출산에 실패했다.
반면에 위의 지자체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 논문 5편 중 4편에서는 조사 시점에 이미 체외수정의 생아출산 실패율을 초과했다. 2021년 광주광역시의 유산율이 최소 8.7%인 이유는 임신한 23명 중 최종 조사 시점에 2명이 유산하고 21명이 아직 임신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의계는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 환자들이 연령이 높고 건강 상태가 더 나빠서 유산율이 높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체외수정으로 임신한 환자 중에도 여러 차례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에 실패했던 환자들이 많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 없이 이런 간접적인 비교만으로는 한약이 유산 위험을 얼마나 증가시키는지 정답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김동일 교수팀의 연구에서도 나타나듯이 한의사들은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약이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 정답은 알 수 없다.
또 하나 간접적으로 한약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논문을 김동일 교수가 작년에 발표했다. “Utilization of traditional herbal medicine formulas for unexplained female infertility in Korea: a retrospective study”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제시된 표를 보면 임신 사례가 5건 이상 되는 난임에 주로 사용되는 처방들이 총 6가지였는데 임신 12주 이내에 유산된 비율이 배란착상방이 14.8%로 가장 낮았고 나머지는 모두 20.0% 이상이었다. 안전이천탕 복용 이후의 유산 비율은 무려 57.1%에 달했다. 이쯤 되면 난임치료 한약인지 인공유산 한약인지 아리송할 지경이다. 물론 논문에서 한의사들은 이렇게 높은 유산율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임신을 확인하고 한약 복용을 중단하더라도 임신 초기 몇 주는 한약에 노출된다. 임신 전에 복용을 중단했더라도 체내에 축적된 중금속이나 한약재의 독성이 배아 또는 태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의사들이 엄격한 품질검사를 통과했다고 거짓말하는 의약품용 한약재들에 대해서도 매달 평균 5건씩 중금속 기준치 초과 등을 이유로 회수명령이 내려진다. 회수명령이 내려진 한약재 제품들을 보면 대부분 생산 초기가 아니다. 한약재의 유통기한은 3년인데 회수명령 대상 제품들은 생산일자에서 1년에서 2년이 지난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은 환자들이 이미 복용했을 것이다.
잔류농약이나 중금속에 대한 품질관리도 부족하고, 애초부터 한약재에 따라서 기준치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2023년 11월에 지룡(지렁이) 2건이 비소 기준치 초과로 회수명령이 내려졌는데 지룡에는 중금속 중 비소만 기준치가 설정돼있다. 중금속 중 가장 흔한 회수 원인인 카드뮴이나 다른 중금속에 대해서는 기준치가 없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연구팀은 2019년 '곤충기원 한약재의 무기성분 함량'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곤충 기원 한약재에 중금속 기준치가 설정되돼있지 않기에 유해물질 허용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에서 한약재 선퇴(매미 허물)에서 식물성 한약재에 적용되는 기준치를 초과하는 납과 카드뮴이 검출됐다.
유해물질 오염 외에도 동물실험에서 자체적인 독성으로 인해 태아를 손상시킨 한약재들도 많아 한약이 실제로 유산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난임 한약에 대해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일조차 비윤리적이다. 한방난임치료는 한약 복용을 종료한 뒤의 몇 개월까지의 임신도 한약으로 인한 임신성공에 포함시키는데, 한약 복용 중에 임신한 경우와 복용 종료 후 관찰기간에 임신한 경우의 유산율을 비교하면 임신 직전 및 초기에 복용한 한약의 유해성에 대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이미 종료된 수많은 지자체 한방난임지원사업에 대해 최종적인 생아출산 여부를 조사해서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흘러간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진흥원,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한방에 관련된 어느 기관도 난임치료 한약이 효과가 있는지, 얼마나 해로운지 진실을 찾아서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국회까지도 한약 판매자의 매출을 높여주는 데 기여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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