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들이 돌아갈 수 없는 이유…"매 정권서 의사 악마화할 것, 한국 의료 이제 희망은 없다"
불투명한 의대 증원 보다 '수요 중심 의료개혁'이 대안…젊은의사 군 복무 기간 현실화·전공의 파업권도 강조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한민국 어디를 봐도 의료계에 희망이 없다. 이제 의사로서의 삶은 어떤 보람도 없다. 과감히 전공의 수련을 포기한다."
사직한 전공의 34%는 향후 의대정원 문제 등이 해결되더라도 전공의 수련 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등 강행에 따른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많았다.
사직 전공의 15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후 전공의 수련 의사가 있느냐'는 질의에 531명인 34%가 '없다'고 답했다. 해당 설문은 류옥하다 사직 전공의가 3월 29일부터 4월 2일까지 진행했다.
인턴 A씨는 "이번 의료개악과 같은 일이 다음 정권에서도 반복될 것으로 본다. 매 정권마다 의사를 악마화하고 국민들은 함께 돌을 던질 것이다. 이런 환경에선 전공의 수련을 받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마이너과 레지던트 1년차 B씨는 "필수의료 패키지가 통과된다면 전문의가 되는 것이 의미가 전혀 없어진다. 과감히 전공의 수련을 포기했다"며 "정부, 언론, 여론 어디를 봐도 희망이 없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돼도 과연 의사에 대한 인식과 전공의 수련 환경이 좋아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2년차 C씨도 "이번 사태로 대한민국이 마주한 현실을 깨달았다. 건강보험료가 고갈되며 의료체계 전체가 붕괴될 것이다. 특히 환자와 의사간 관계가 파탄났기 때문에 수련을 포기한다. 이제 의사로서의 삶은 어떤 보람도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현재 수련환경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의료 업무가 아닌 일명 '가짜노동'으로 인해 수련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필수과의 경우 낮은 충원율에 비해 지원이 없어 개인의 사명감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1년차 D씨는 "의료 업무가 아닌 인쇄, 커피타기, 운전하기 등 가짜노동으로 인해 수련의 실효성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2년차 E씨는 "대학병원이 3차 의료기관에 필요한 전문의를 양성하지만 정작 전문의는 채용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숫자가 부족하지만 지원은 없어 개인 사명감에만 바이탈과 선택을 맡기고 있다. 전공의 수련과정의 내실은 더욱 줄어 사실상 전임의를 강제하는 구조가 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전공의들은 수련 과정 중 필요한 공통역량을 이해하고 있지만 '일이 바쁘거나 업무 대체자 확보가 불가'해 역량 개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연구보고서를 통해 "적절한 교육이 개설되더라도 참여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는 전공의들이 많다. 공통역량 교육 참여시 어려움은 '일이 바빠 학습에 참여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며 "병원 내 업무 대체자 확보의 어려움과 교육비 지원 부족 등도 확인됐다"고 전했다.
전공의 복귀를 위해 선행돼야 하는 문제론 '군 복무 기간 현실화', '전공의 수련 처우 개선', '무분별한 소송 억제' 등이 꼽혔다.
인턴 F씨는 "전공의를 하지 않으면 현역 18개월, 전공의를 마치거나 중도포기하면 38개월 군의관을 가야 한다. 이런 군 복무 기간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동료, 후배들도 전공의를 굳이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너과 레지던트 1년차 G씨는 "업무가 고되고 난이도가 높은 분야에 대한 알맞은 대우가 필요하다. 단적으로 정형외과 의사는 넘치지만 외상정형분야를 하려는 의사는 적다"며 "선의의 의료행위에 대한 면책과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무분별한 소송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너과 레지던트 2년차 H씨는 "전공의 노조와 파업권이 보장돼야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또한 업무개시명령으로 대표되는 강제노동조항도 없어져야 한다"며 "보건복지부 차관에 대한 경질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류옥하다 사직 전공의는 "한국 의사 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의대 정원은 동결된 것이 맞지만 은퇴에 비해 새로운 의사 진입이 2.9~3.8배 많다"며 "의대 증원은 환자 건강과 경험에 악영향을 미친다. 행위별 수가제도 하에서의 증원은 진료행위량에 인센티브 효과에 의한 공급자 유도 수요 논쟁이 있다. 지역의사는 끊임 없이 트레이닝 받지 못하면 의료의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필요 의사 수 추계는 여러 요소를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동일 연령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는 '건강한 노령화 효과', '의사들의 늦춰진 은퇴 연령', '의료 기술의 발달' 등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10~20년이 소요되고 효과가 나타날지도 불투명한 의대 증원보다 당장 실행 가능한 '수요 중심 의료개혁'이 대안이다. 과다 의료 이용을 절제하고 의료전달체계 완성, 사법 위험 해결, 전문의 중심 병원 등 구조적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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