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의 급여화 과정에서 수가 인상 중요
국민·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하나로' 보상받아야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용익 명예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올리려면 수가를 인상하고 중소병원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병원 시설에 의존하는 현재 문화를 개선해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7일 서울대 치대병원에서 열린 한국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 기조연설 ‘보건의료 개혁의 방향과 과제’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은 2015년 현재 63.4%로 너무 낮고 본인부담의 한계가 없어 환자가 되면 가계 파탄이나 타격을 방지할 수 없다”라며 “이로 인해 많은 국민이 상업적인 민간보험을 들고 비싼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급여 풍선 효과’ 보장성 정체
김 교수에 따르면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 수차례 급여 확대를 시도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일정한 규모로 급여 확대를 해도 곧바로 비급여가 팽창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 보장성은 다시 낮아졌다. 김 교수는 “비급여를 포함해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 총지출인 본인부담 상한선 설정도 불가능했다”라며 “비급여가 존재하는 한 급여 확대가 불가능한 사실이 명백해졌다”고 밝혔다.
문재인 케어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모두 급여화한다. 비급여는 급여 또는 퇴출되거나 본인부담률을 50~90%으로 맞춘 '예비급여' 항목으로 둔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급여 확대 방식은 부분적으로 급여 항목을 늘려왔다"라며 "이번에는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비급여가 전면 급여화되면 보장성 정도는 법정 본인부담금 조정에 따라 결정되고 본인부담 상한선도 쉽게 설정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환자의 가계파탄을 막고 민간보험 필요성이 줄어 국민은 점차 ‘건강보험 하나로’ 질병 위험에 대처할 것으로 내다봤다.
‘건강보험 하나로’는 국민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도 적용된다. 모든 의료기관이 비급여없이 건강보험 진료만으로 생존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급여 항목 결정과 수가 책정은 의료기관에게 중요하며, 정부는 의료기관에 원가 이상의 수가를 보장해줄 수밖에 없다"라며 "정부는 각급 의료기관을 최대한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종별·진료과별 '수가 인상' 큰 과제
문재인 케어의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원칙은 간단하지만 실행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교수는 “의학적인 가치 여부는 어떻게 정할 것인지, 신의료기술은 어떤 절차로 판단할 것인지 정하기 어렵다”라며 “개별 급여 항목의 수가를 정하거나 1·2·3차 의료기관 간, 전문과목 간 형평성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김 교수는 “건강보험 전면 급여화는 전면적인 수가 설정을 의미한다”라며 “건강보험 도입 이후 미뤄둔 수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국면이 된다”고 했다. 그는 비급여가 없어지면 원가보다 높은 수준으로 건강보험 수가를 인상해줘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비급여는 낮추고 급여 수가는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개편 중인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과 동시에 새로운 보장성 수준과 수가 수준에 맞춰 보험료를 조정할 수 있다"라며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시스템 개편은 완성 단계에 놓이고 이후는 작은 개혁만 남게 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개편이 잘 이뤄지면 의료서비스는 병의원 등 생산자가 만들어 국민에게 제공하고 건강보험은 그 비용을 지불하는 각자 고유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건강보험 수가는 병원 종별, 전문과별에 따라 원가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전국의 모든 병의원이 만족하는 수가를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1·2·3차 의료기관의 수가를 완전히 분리하는 제도로 가야 한다"라며 "의원급도 내과계, 외과계 등 그룹을 만들어서 수가를 따로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중소병원 축소 필요
문재인 케어에 따른 의료전달체계 재정립도 빼놓지 않았다. 의료기관의 기능이 정립되지 않아 의원과 병원이 서로 경쟁을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다. 김 교수는 “의원과 병원의 기능 분화는 구조 변화와 행태 유도 두 가지 방식이 있다”라며 “그동안 의료전달체계 대책은 모두 환자가 경증 질환이 있을 때 대형병원에 가지 않게 하는 행태 유도 방법이었지만, 구조를 변경하지 않으면 변화를 유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의원과 병원의 기능분화가 어려운 요인으로 '중소병원 난립'으로 봤다. 김 교수는 “중소병원은 투자금이 많이 들고 외래와 입원을 동시에 취급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비급여가 사라지면 적정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중소병원은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소병원 비중을 자연스럽게 줄이는 구조 변화가 의료전달체계 변화의 핵심적인 전략"이라며 "‘병원’의 법적 정의를 현행 100병상 이상에서 300병상 이상의 시설로 변경하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중소병원의 신규 설립을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중소병원은 그대로 운영하되 퇴출을 원하는 경영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원책도 주문했다. 김 교수는 "중소병원 진입 제한과 퇴출 장려가 필요하다"라며 "병원이 외래 기능을 포기하면 입원 진료만으로 유지할수 있도록 수가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장기적으로는 지역사회 보건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병원 시설 중심인 우리나라 보건의료를 지역사회에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가정방문을 통해 환자들이 한 장소에 여럿 모일 수 있는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을 대폭 설치해야 지역사회 보건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이런 주장을 펼치는 데는 돌아갈 집이 없거나 가족이 거부하는 신체장애인, 정신장애인, 노인환자 등 때문이다. 이들은 장애인시설, 정신병원, 요양병원 등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들은 그룹홈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으면 정신보건, 노인요양보험, 의료급여 제도 등을 정상화할 수 없으며 장애인 인권보호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공공일자리 81만개 확충’ 공약을 활용해 그룹홈을 중심으로 간호사, 사회복지사를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그룹홈은 외래 진료 기능은 없어도 되지만 의사 2~3명과 충분한 수의 방문간호사가 있어야 한다”며 “농촌은 기존 보건지소를 활용하되 인력을 충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공공주택 일부를 그룹홈으로 사용하고 전국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라며 "여기에 적절한 수의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을 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5% 수준에 불과한 공공병원 비율도 아쉽다고 했다. 2013년 국회의원 시절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을 페업한 일은 그에게 뼈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김 교수는 “현재 준비 중인 성남의료원 등 공공병원 설치를 늘려야 한다”라며 “단계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처럼 공공병상 비율을 전체 병원의 30% 정도로 맞춰야 한다”고 했다.
한편 김 교수는 이달 30일 임기가 끝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성상철 이사장에 이어 차기 이사장 물망에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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