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9.02 06:22최종 업데이트 25.09.02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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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과 건강보험 지불제도 개편의 진실

[칼럼] 좌훈정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3월, 우리 국회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각각 인상하는 ‘국민연금 모수개혁 안’을 여야 합의 처리했다. 나날이 심화되는 저출산 및 인구고령화로 인해 국민연금 재정이 당초 예상보다 일찍 (2056년경)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자, 어떤 식으로든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무려 18년 만에 국민연금의 개혁이 이뤄졌다.

이번 개혁안은 한 마디로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더 받는 방안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더 내고 더 받는 방식만 다루었던 건 아니고, 덜 내고 덜 받는 방식도 거론되었다. 특히 20-30으로 대변되는 청년 세대는 내가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겠느냐는 불신이 팽배했고, 덜 내고 덜 받겠다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안 내고 안 받겠다는 주장조차도 제기되었다. 이에 장기적으로 납부한 보험료를 기금으로 쌓아두는 기존의 적립방식이 아니라, 매년 납부된 보험료를 그해 수급대상자에게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으며, 이는 독일, 프랑스 등 다수 국가들에서 채택하고 있는 연금의 방식이기도 하다.

어쨌든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연금을 비롯한 각종 사회복지 재원이 빠르게 고갈되고 다음 세대의 부담이 커지는 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주요 선진국들의 부양률(dependency ratio), 즉 노인인구(65세 이상 인구)/경제활동연령인구(15-64세 인구)은 계속 상승해왔으며, 이는 사회복지제도의 지속성을 유지하는데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따라서 서구의 복지국가들은 공적방식의 연금을 축소하는 대신,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 등 사적인 연금을 확대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잔치는 끝나고 청구서를 받아든 한국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 가까이 이른바 ‘인구보너스 기간’의 혜택을 받았다. 보너스 기간이란 경제활동인구(15∼64세)가 늘어나고 부양해야 할 아동과 노인이 줄어들어 ‘총부양률(아동과 노인에 대한 부양률)이 최저 수준에 이르는 기간‘을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약 20년 동안 경제적 호황을 맞이하여 국내총생산(GDP)이 계속 늘어난 덕분에 국민 1인당 부양 부담도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부양률 증가와 그 부담을 거의 체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잔치는 끝나고 이제 총부양률이 급증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경제활동인구는 정체되거나 줄어드는데,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사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7년의 풍년 뒤 7년의 흉년’이라는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정부 차원에서도 각종 기구들을 만들어 대책을 논의해왔지만, 관련 예산만 잔뜩 쓰고 실효성 있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이번의 연금개혁 또한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험료를 많이 더 내고, 연금을 조금 더 받는’ 방식이다. 보험료를 낼 인구는 줄어드는데 받을 인구가 늘어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을 ‘더 내는 만큼 그대로 더 받는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더 심하게 표현한다면 폰지 사기(Ponzi scheme)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국민연금 개혁의 경우 20-30 청년세대가 주장했던 ‘덜 내고 덜 받는’ 방식, 아니 정확히 다시 표현하면 ‘보험료를 조금 덜 내고, 연금을 많이 덜 받는’ 방식이 차라리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게임 이론에 빗대자면 먼 훗날의 기대 이익이 많이 줄어드는 대신에 지금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개인에겐 보다 현실적일 수 있고, 위험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다른 양대 축인 건강보험의 경우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사회보험의 양대 축인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2010년대 이후 우리 건강보험은 보험료의 꾸준한 상승과 이에 따른 국고지원 확대 등으로 누적 흑자가 증가해오다, 2017년 ‘문케어’라고 불리는 보장성강화 정책 시행 이후 흑자 폭이 줄어들고 그만큼 보험료를 인상하게 되었다. 건강보험 역시 연금과 마찬가지로 보너스기간이 끝나고 늘어나는 의료비를 감당해야 할 다음 세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게 되었다.

적립방식인 연금과 달리 그나마 건강보험은 부과방식이라 보험요율도 매년 정하고 재정 수지에 따라 지출도 다소 가변적으로 정할 수 있어서 재원 유지 차원에서는 좀 낫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시 저출산·고령화 현상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수 없다. 정액을 지급받는 연금과 달리 의료서비스 이용이라는 형태로 지급이 되고 인구고령화로 인한 질환의 복합다중화와 중증도 증가 등으로 인해 향후 의료비 증가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건강보험 재정이 매년 흑자를 적립하던 십여 년 전부터도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뤄졌고, 그 차원에서 일각에서 제기된 것이 이른바 ‘지불제도의 개편’이다. 다시 말하면 건강보험에서 수급자인 국민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 공급자인 의료기관에 어떤 방식으로 대가를 지불하느냐는 것이 ‘지불제도’이며, 장기적으로 건강보험의 지속을 위해서 지불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 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그런데 위의 국민연금 개혁에서 보듯, 모든 제도는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보험료를 더 내야 연금을 더 받고(실제로는 낸 만큼 더 받지 못하지만), 덜 내면 더욱 덜 받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 건강보험에서 의료비 지불제도는 행위별수가제(Fee-for-Service)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일부 항목에 있어서 포괄수가제(DRG) 등을 병행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지만, 행위별수가제가 인두제나 포괄수가제 등 다른 지불제도에 비해 비용은 좀 더 나가지만 의료서비스의 결과는 가장 좋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건강보험의 지속성을 위해서 지불제도를 개편한다는 것은 결국 국민연금의 개혁처럼, 보험료를 더 내고 보장성을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덜 내고 줄일 것인지 선택하는 셈이 된다. 여기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보험의 적용이 되는 항목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항목 안에서도 의료서비스의 질이 제고되는 것을 뜻한다. 만약 보장성을 줄이겠다고 하면 그 반대의 경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불제도의 개편은 단순히 의료공급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서비스의 대가를 지불하느냐 하는 방법론적인 것만이 아니라, 보험료와 국고지원의 증감과 의료서비스의 질과 양의 증감까지 고려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가치관의 문제가 달려있다. 물론 여기서도 연금의 경우처럼 보험료를 부담하는 세대와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는 세대 간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건강보험의 파행과 실손보험의 역설

국민연금의 개혁이 인구보너스 기간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여 여태껏 파행이 되었듯이. 건강보험 또한 건보재정이 누적 흑자를 쌓아가고 아직 민간보험(실손보험)의 비중이 크지 않았던 2010년대 중반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결과, 이제 와서 뭔가 바꾸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여타 선진국들도 사회보험만으로 국민의 보건이나 복지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서 기술했듯이 연금 또한 기업/개인연금 등의 비중을 늘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사회복지의 재원을 어디서 조달하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향적인 연구와 대승적인 합의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자유시장경제의 모순이나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보장제도가 탄생하였다. 국민건강보험은 사회보험으로서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회보장적 목적을 달성하였으나, 출범 당시부터 부족한 재원으로 인한 ‘저부담 저급여’ 때문에 보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힘들었다. 그 결과 건강보험의 모순(저부담·저급여) 및 사각지대(비급여 등)를 해소하기 위해서 시장원리로 작동되는 민간보험(실손보험)이 보완재 내지 대체재로 발전하게 되었다.

즉, 시장경제의 실패나 사보험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공보험인데, 우리의 경우 공보험의 실패/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보험이 등장하고 발전하게 된 반대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보험이 공보험의 실패를 보완하게 된 이른바 ‘실손보험의 역설’을 일으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고질적인 저수가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보장성 강화이다. 

그동안 정부는 수가현실화에 필요한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 보조를 애써 외면해왔으며, 보장성강화 역시 필수의료 지원에 적재적소로 투입되기보다는 선심성 정책 위주로 이뤄지기도 했다.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후려치기 식으로 급여 수가를 매우 낮게 책정하거나 적응증을 좁게 만들어서 사실상 사장되도록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환자의 부담이 최고 90%에 이르는 선별급여/예비급여라는 기형적인 제도를 만들어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

결국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지 못하는 비급여 의료서비스에 대해 국민들은 호주머니를 털어 별도의 보험료를 지불하면서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결과, 지금 국민의 80% 이상이 실손보험에 의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좋은 제도라고 자화자찬 했던 국민건강보험의 이면에는, 국민들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면서 실손보험에 가입하여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받아야만 했던 부끄러운 현실이 숨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손보험 때문에 건강보험이 망가졌다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자충수일 뿐이다.

지불제도 개편이 말하지 않는 진실

이러한 건강보험의 파행에 대해서 정치나 사회 일각에서는 지불제도의 개편이 마치 그 해법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건강보험료와 국고지원 등 재원의 투입이 뒤따르지 않으면 지불방법을 아무리 바꿔본들 건강보험의 모순이나 사각지대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항목에 있어 지불방식을 행위별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로 변경할 경우, 당장 지불하는 비용은 다소 줄어들지 몰라도 의료서비스의 질과 양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포괄수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다른 나라 사례들에서 이미 증명이 되었는데, 병원들이 원가를 줄이기 위해 값싼 약이나 치료재료를 사용하고 수술 후 빨리 퇴원하도록 요구하거나 해서 질병의 재발이나 재입원율이 올라가는 등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행위별수가 뿐만 아니라 포괄수가조차도 대개 주요 선진국들의 1/3 미만인 상황에서 적용이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일부에서 주장하는 지불제도의 개편이 어떤 식으로든 의료비 지출을 줄이려는 방향이라면, 그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의 급격한 저하를 감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그러한 사실을 국민들께 솔직하게 알리고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국민연금의 개혁은 덜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건강보험의 개혁은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으로 바뀐 지금, 건강보험은 거꾸로 덜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가려는 것 같아 비관적인 전망을 지울 수 없다. 다시 표현하자면 의료비용을 조금 덜 내는 대신, 서비스를 훨씬 덜 받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인구고령화로 인해 의료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합당한 정책 방향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국민연금과 더불어 사회보험의 양대 축인 건강보험에 대한 변화를 추구한다면, 정부나 국회는 현재 우리 의료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진솔한 담론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머지않아 고갈될 것 같으니 ‘보험료를 더 많이 내고 조금 더 받읍시다.’ 하는 것처럼, 건강보험 또한 의사들만 죄어 붙이면 다 해결될 것처럼 오도하지 말고, 낸 만큼 받는다는 현실적인 얘기를 해야 되지 않을까.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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