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한국 의료의 문제는 건강보험 단일 의료체계, 강제수가, 비급여 관리체계, 전공의 불공정 보상체계, 과도한 민·형사책임 등으로 압축된다.
이에 새로운 의료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왜곡된 정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갈라파고스에 갇힌 한국 의료체계…의사 강제 동원·과도한 사법리스크 해결해야"
대한의학회 박형욱 부회장은 26일 개최된 '대한민국 의료사활을 건 제1차 전국의사 대토론회'에서 선진국의 의료체계와 한국의 의료체계를 비교하며, 한국 의료체계는 갈라파고스 체계에 갇혀있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한국의 갈라파고스 의료는 ▲건강보험 단일 의료체계 ▲강제수가 ▲비급여 관리체계 ▲전공의 불공정 보상체계 ▲과도한 민·형사책임 등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박 부회장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의료체계를 살펴보면 의료보장을 명분으로 의사를 강제로 공공의료에 동원하는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다. 또 의료보장을 명분으로 프라이빗 케어에 대한 국민 선택권을 박탈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강제 동원에 의한 건강보험 단일의료체계로 이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 부회장은 낮은 의료수가와 보건복지부의 의료 왜곡을 지적했다. 그는 "국가별 내시경 수가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낮다. 또 간의식 비용은 미국의 16분의 1이다"며 "미국은 생명을 구하는 의사를 우대하지만, 한국에선 생명이 소중하니 의사들은 헐값에 일하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복지부는 필수의료 등 구체적 정책 없이 화려한 말 잔치만 반복하고 있다. 초저수가 문제는 철저히 외면하고 비급여, 미용의료 탓을 한다. 필수의료 위기는 의사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비난한다"며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는 건강보험료율 인상 등 정책적 의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결국 필수의료지원은 100%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부회장은 정부가 비급여로 의사를 불법으로 몰아간다며, 이로 인해 의료기술 발전에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부회장은 "비급여는 국가 의료보장 제도 밖의 의료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료보장 재정 한계와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프라이빗 케어를 정당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정부는 비급여가 의료인의 과도한 이기심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건강보험 재정 한계로 급여가 되지 않는 의료행위가 많은데, 비급여로 치료할 경우 불법 의료행위가 돼 버린다. 또 새로운 의료 행위를 임의 비급여로 폄훼해 의료기술 발전에 제동이 걸렸다"고 비판했다.
박 부회장은 전공의의 수련과 경험을 보상하지 않는 불공정 체계와 과도한 민·형사책임으로 인한 필수의료 이탈도 한국 의료의 갈라파고스화를 초래했다고 언급했다.
박 부회장은 "2013~2018년까지 영국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단 4명뿐이다. 한 해 평균 0.7명인 것이다. 기소된 사람은 한 해 평균 1.2명이다. 영국에서는 내셔널 서비스 소속 전문의의 의료사고는 정부가 배상한다. 단 프라이빗 케어 제공 시 발생한 의료사고는 의사 본인이 책임을 진다. 우리나라 GP와 같은 의사도 내셔널 서비스 환자를 진료하다 사고가 나면 정부가 배상한다"고 설명하며, 한국의 과도한 사법리스크를 비판했다.
이에 박 부회장은 새로운 의료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필수의료 위기의 정확한 진단과 대안 제시 ▲주요국의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 현황 공개 및 사과법의 진정한 의미 전달 ▲명확한 재원과 정책지표 제시를 통한 정책 결과와 책임소재 판단 ▲진정한 계약에 기반한 거버넌스 구조 개혁 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의료계 '진실' 국민이 알기 쉽게 전파해야…소통하지 않으면 더 고립될 것"
이후 진행된 패널토의에서는 의료계의 진실을 국민에게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명예교수는 "의료계는 상황의 심각성을 공유해야 한다"며 "복지부 이야기만 들으면 현재 상황은 괜찮아지고 있다. 이를 믿는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의료계는 분명하게 의학 교육, 의료 현장 등이 얼마나 위협을 받는지 등을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민주화된 사회에서 전문가는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중요한 책무가 있다. 그 누구도 전문가를 대변해 주지 않는다. 전문가 스스로가 국민에게 자기 분야의 중요성과 가치를 설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며 "의학 교육의 문제, 의료 현장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정리된 형태로, 다듬어진 메시지로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공의가 누군지 모르는 국민도 많다"며 "수련병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전공의는 수련 과정에 있는 학생, 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이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노무브 장효곤 대표는 "국민의 시각에서도 의대증원은 우려되는 일"이라면서도 "의료계가 값지고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 대표는 "우리나라 의료가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유리한지를 국민은 잘 모른다. 게다가 정부가 대개혁을 외치면서 의료에 문제가 많다고 착각한다. 또 국민은 의사가 '너무' 과하게 잘 산다는 인식이 있다"라며 "여론이 이렇게 몰아갔다. 현재 의료계 상황에서는 여론은 야속한 존재지만, 역설적으로 믿을 건 여론뿐이다. 여론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텍스트뿐 아니라 중요한 메시지를 뽑아서 짧은 동영상 등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며 "이런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생산돼야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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