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다른 처치를 했다면, 감압이 성공했다면, 조금만 늦게 출혈이 진행됐다면, 환자가 좀 더 버텨주었다면...
의사는 환자가 죽었을 때 이러한 '만약'을 가정해본다.
그 '만약'이란 너무나도 아쉬운 순간들이지만 돌이킬 수 없기도 하다.
따라서 자신에게 '만약'이란 질문을 했을 때, '만약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SNS에서 글 쓰는 의사로 유명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씨(현 충남소방본부 공보의)가 최근 '만약은 없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남궁인 공보의가 고대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시절 응급실에서 겪은 다양한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팩션(Fact+Fiction)이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의 부제처럼 책은 38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으며, 응급실의 급박한 상황을 생각보다 생생하게 그려냈다.
다음은 남궁인 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Q.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들었는데,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 워낙 글을 쓰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도 문예반에 있었고, 고대의대를 다닐 때도 문학회 소속으로 글 쓰는 것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항상 무슨 일이 있거나, 특히 슬픈 일이 있을 때는 글로 남기려고 했다.
그렇게 의대생 시절부터 레지던트까지 쓴 글이 천편이 넘었다.
또 처음엔 시를 너무 좋아해서 도서관에 있는 시집을 다 읽어볼 정도였다. 보통 글도 시 형식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막상 시에 그렇게 소질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산문을 쓰게 됐는데 결국 보여줄 것이 많은 분야는 산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결국 이 것이 제 강점이 된 것 같다.
이번 '만약은 없다' 책은 공보의로 지내는 기간 동안 새로 쓰기도 했지만, 레지던트 시절 썼던 글을 찾아보면서 각색해 다듬었다. 그때의 감정을 다시 발굴해 완전한 산문의 문법으로 재탄생 시켰다.
Q. 그렇다면 의대가 아닌 인문계열로 선택했을 것도 같은데 어떻게 의대에 입학했나?
- 처음엔 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는 혼자 진로를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고, 수학도 좋아하고 잘 하다보니 부모님께서는 결국 잘하는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의대를 추천하셨다.
처음엔 내가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수능을 잘 봤다. 그래서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Q. 의대에 입학해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들었다. 당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
- 대학생 시절 우울증이 있었다.
깊이 우울할 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서 글을 적으면서 지냈다. 심할 때는 글마저도 적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늘 문학 안에서 뭔가를 찾으려고 했다.
남들이 우울해하거나 죽고 싶어 하는 그런 내용이 담긴 책을 많이 보고 베껴 써보기도 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그런 어둡고 무거운 글이 주는 아름다움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더욱 몰두했던 시절이었고, 그렇게 계속 글을 쓰다 보니 증상도 많이 나아졌다.
그래서인지 응급실에 자살 시도로 실려 오는 환자들에게는 한 마디라도 더 건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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