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5.31 07:40최종 업데이트 24.05.3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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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의사가 한 것이 아니다

[칼럼] 박지용 공정한의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 대표·신경외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환자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한게 어제 오후인데, 112 신고를 오늘 했다고요?"
"다시 한번 여쭐게요. 환자를 트렁크에서 발견한게 오늘이 아니고 어제 오후인데, 신고한게 24시간이 지난 오늘 오후라는거죠?"

환자의 뇌 CT 결과는 암울했다. 뇌사 상태였고, 지금 당장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수술은 의미가 없었다.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까.

이 환자에 대한 이야기는 읽기 불편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몇 년이 지나도록 이 얘기는 쓰지 않았는데, 훈련병 사망 사건을 누군가는 또 의사 탓을 하려들기에 써본다.

환자는 평범한 외모의 중년 여성이었다. 20대 초반의 건장한 아들이 보호자로 응급실에 내원했고, 표정은 벙 찐 상태였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 정도로 황당한 사건은 평생 한번 겪기 힘드니까. 슬픔의 감정을 느끼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납득하기 어려웠을테니까.

목격자는 환자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사람이 자동차 트렁크에서 발견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목격자의 대처였다. 트렁크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만 하루를 방치한 뒤에야 112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목격자가 범인이다."

범인이 누군지 아직도 나는 알지 못한다. 환자의 치료에만 관여했고 범인이 누군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사고'가 아닌 '강력범죄'라는 사실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응급실에 내려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뇌 CT 영상에 나온 환자의 뇌는 새카맣게 괴사돼 있었다. 뇌사 상태로, 어떠한 치료도 가망이 없다는 뜻이다. 다른 환자들처럼 '수술해도 죽는건 마찬가지지만 최대한 버틸 수 있게 도와드립시다'라는 개념으로 수술하는 것도 가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멍한 표정의 아들에게 말했다. 

"이런 말씀은 드리고 싶지 않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님은 가망이 없습니다. 이미 뇌사 상태시고, 수술은 어머님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수술하시면 3일, 수술 안 하시면 1주일 정도 버티실 겁니다. 수술을 안 하시는게 어머님을 위한 결정이라는 뜻입니다. 동의서 작성하시면 중환자실 입원하셔서 보존적 치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습니다. 경찰서에 꼭 신고하세요."

멍한 아들의 표정처럼 나도 경황이 없었다. 이후 환자에 대한 기억은 딱히 없다. 입원 후에는 다른 뇌사 환자와 마찬가지였고 치료에 있어서는 특별히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달랐던 것은 1달인가, 시간이 지나서였다. 평소처럼 다른 환자들 보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는데, 그 환자의 담당 교수였던 과장님이 나를 진료실로 불렀다.

"이 환자 네가 응급실에서 받았지? 수술하지 말란 설명도 네가 했고.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써서 제출하라니까 입원 시킨 네가 써서 오후까지 줘."

경찰이 줬다는 서류를 보니 사건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가늠이 됐다. 범인은 잡혔고 환자를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열심히 변명하고 있었다. 

범인은 환자가 수술했으면 살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입원하고 투여한 약 때문에 환자 상태가 악화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경찰은, 경찰이 준 서류는, 환자를 치료했던 주치의가 환자를 죽인게 아니라는 근거를 요구했다.

이 상황이 내게는 전공의 시절 겪었던 가장 큰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살인자는 자기가 죽인게 아니랜다. 의사인 내가 죽인 것이라고 했다. 뇌사 상태라서 수술하면 더 빨리 죽을 환자였는데 수술했으면 살았을거라고? 수술하지 말자고 한 내가 죽인거라고? 환자가 단 한 시간이라도 이승에 남아있게 붙들어놓은 약물이 환자를 죽인 거라고?

나는 환자를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환자의 숨을 붙여 놓으려고 노력한 사람은 나인데, 사람을 죽인 사람이 나를 탓한다. 자기가 죽인게 아니랜다. 의사가 죽인거란다.

진술서를 쓰는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도 명확했고, 투여된 약물을 처방한 이유도 명확했다. 10분만에 진술서를 다 쓰고 점심 시간 끝나고 바로 과장님께 전달했다.

그 뒤엔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진술서로 다 끝났다. 다른 흔한 억울한 이야기처럼 법정에 불려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때의 일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사람을 살린 내가 살인범으로 지목돼야 했나.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살인범에게 되레 살인범으로 지목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깨달았다.

한 육군 중대장의 가혹행위로 20대 어린 훈련병이 사망했다. 훈련소에 입소한지 이제 1주일을 넘긴 훈련병. 사인은 가혹행위로 인한 열사병과 횡문근융해증(근육괴사)이었다.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병원 이송에 3시간이 지체됐다며 또 의사들이 사망 이유로 지목당했다. 사람 살리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살인자로 지목당하는 기분을 나는 잘 안다.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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