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돋보기] 최근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법안 발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분야와 관련된 법안들의 역사와 주요 내용, 실제 현장에 적용됐을 때의 효과 등을 조명해보겠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채 기자] 새해 벽두부터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으로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의료계의 외침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의료인에 대한 폭행·폭언을 방지하고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매년 되풀이돼 왔다.
관련 입법화 노력도 꾸준히 있었다. 그 형태도 의료인 등을 폭행·협박했을 때 가중처벌에 처하게 하는 것을 비롯, 반의사불벌죄·주취자 감형 삭제, 비상벨·비상공간 설치, 의료기관 안전기금 설치 등 다양하다. 하지만 현행 ‘의료인 폭행 방지법’이 실제 현장에서는 효과가 미미하다며 실효성을 갖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빗발친다.
최근 발생한 ‘故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에도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의료인 폭행 방지법’의 역사와 주요 내용, 현장에 적용됐을 때의 효과에 대해 짚어봤다.
의료인 폭행 방지법의 변천사
제17대 국회 당시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를 폭행·협박하는 행위, 의료기기 등 의료기관의 시설을 파괴하는 행위 등을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하는 의료법 전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회기만료, 자동폐기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18대 국회에서는 임두성 의원과 전현희 의원이 의료인을 폭행한 경우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를 폭행·협박해 의료행위를 방해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비뇨기과 의사가 외래 진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법안 입법화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의료인에 대한 특혜 논란 등 일각에서 우려가 제기되며 법안 처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다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응급환자를 진료 중인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 등을 금지하는 규정이 만들어지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입법화에 진통을 겪던 ‘의료인 폭행 방지법’은 19대 국회에서 결실을 맺는다.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시민단체와의 합의를 거쳐 지난 2016년 5월 ‘의료인 폭행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2016년 5월 29일 개정된 의료법 제12조는 ‘누구든지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의료행위를 행하는 의료인, 제80조에 따른 간호조무사 및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의료기사 또는 의료행위를 받는 사람을 폭행·협박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의료계 숙원 의료인 폭행 방지법 통과됐지만
하지만 법안의 국회 통과에도 의료인에 대한 폭행 사건은 쉽사리 줄지 않았다. 지난 2016년 경북 고령 소재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가 진료 중이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복부 등을 찔려 응급수술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3월에는 대전 소재 의료기관에서 상습적으로 의료진 폭행을 일삼던 택시기사가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11월에는 자신의 아들을 잘 봐주지 않는다며 당직 의사를 폭행한 40대 남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전북 익산의 응급실 폭행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료인 폭행 방지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보다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 범의료계 규탄대회’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됐다. 의료계는 같은 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관련 법안을 릴레이로 발의했다.
반의사불벌죄·주취자 감형 조항을 삭제하고 가중처벌 등 의료인 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의료법·응급의료법 개정안이 연이어 발의됐다. 각 개정안은 의료기관 내에서의 진료 방해 또는 의료인 등을 폭행·협박하려는 행위 등에 대해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자 한다.
이후 지난해 12월 27일 응급실 응급의료종사자에 폭행이 발생할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과된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해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 중상해의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사망의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또한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폭행, 기물파손 등 응급의료 방해행위를 할 경우 형법 제10조제1항(심신상실자 행위에 대한 처벌의 필요적 면제)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심신상실 상태에까지 이르지 않은 심신미약자의 경우 기존에는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필요적으로 형을 감경했다. 다만 형법 제10조제2항의 개정에 따라 법관이 형을 감경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이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폭력행위자가 주취상태 뿐만 아니라 약물복용이나 정신병력 등으로 인한 형 감경을 주장해도 이를 배척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반 진료현장을 대상으로 의료인에 대한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반의사불벌죄 조항 폐지와 관련, “반의사불벌죄를 유지하더라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 경우에는 가해자 처벌이 가능하며 폐지 시 가해자-피해자 간 개인적 분쟁 해결 가능성이 원천 차단된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보안인력 배치와 관련해서는 “안전관리 필요성이 큰 응급의료기관부터 단계적으로 보안 인력을 배치할 수 있도록 응급의료법령에 우선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청원경찰 배치 시 청원경찰법(제6조)에 따라 의료기관의 장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비용 부담 주체인 의료계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故임세원 교수 사건’으로 커지는 파장
의료인 폭행 방지법에 대한 입법화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새해 벽두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의사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료계는 또 다시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
의료계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보장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도 사태의 심각성에 공감하며 일명 ‘임세원법’을 연이어 발의했다. 특히 이번에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적시에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故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비상문·비상공간 설치, 보안요원 배치, 긴급출동시스템 구축, 의료기관안전기금 조성 등의 예방책과 반의사불벌죄 조항·주취자 감형 삭제, 가중처벌 추진 등 사후 관리 방안으로 나눠볼 수 있다.
여당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임세원 교수를 기리고 제2의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TF’를 구성했다. TF는 윤일규 의원이 팀장, 권미혁·신동근·정춘숙 의원이 팀원으로 참여했다.
의료계는 의료기관 내 폭력 방지 법안 마련, 의료기관안전기금 신설, 의원·중소병원 등에 폭력 예방 위한 안전시설 구축 등의 방안이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해 12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무회의가 법을 공포하면 실정법으로서 효력이 발휘된다"며 "의료기관 내 폭력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의료법에서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고 의료기관 내 폭력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준해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더 이상 용납하기 힘들다. 결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도 조치가 필요하다"며 "현장에서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대책으로 의료기관 내 진료실에 대피 공간 마련, 비상 경찰 호출 장비 설치해 경찰과 핫라인을 구축하고 청원경찰을 고용하는 등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또한 “의료법 일부개정안을 통해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해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에 필요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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