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술 공장 공장장, 자존감 상한 의사들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비급여 병원
원가 줄이고, 마케팅 지출 증가
'치료'와 '개선'이라는 목표로 환자를 대하는 급여와 비급여 진료는 그에 맞게 성격도 다르다. 비급여 치료는 선택의 폭이 넓고 뚜렷하게 명시된 치료(TOC)가 없다는 점에서 상업적일 개연성이 높고, 경쟁이 과열될수록 이런 성질은 더욱 명확해진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병원의 새로운 모습, 경제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진짜 '시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가 절감, 마케팅 지출 증가
특허가 풀려 국산 복제 약이 많아지면서 보톡스 시술비는 많이 저렴해졌다.
비교적 육안적 효과가 확실했던 보톡스는 약물 원가까지 낮아지면서 비용효과(cost-effectiveness) 면에서 가장 뛰어난, 그리고 대중적인 시술이 되었다.
피부미용 클리닉을 운영중인 한 개원의는 "미끼 상품(Loss Leader)으로 가장 좋은 게 보톡스와 필러다. 레이저 치료와 더불어 환자들이 가장 거부감이 없고, 효과를 즉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원을 유인하는 좋은 시술이다 보니 가격경쟁이 심하다"고 전한다.
그는 "문제는 용량이다. 클릭닉 모두가 출혈경쟁을 하다 보니 몇몇 의원은 보톡스 양을 조금 줄여 낮은 단가를 보전한다. 턱을 작아보이기 위해 보통 50유닛을 주입하는데, 40유닛 정도만 넣는 것이다. 야무진 고객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보는 자리에서 약물의 포장를 열고 믹스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Too much Cost Cutting)
원가절감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있는 반면, 마케팅엔 많은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형 피부미용병원을 담당했던 한 코디네이터는 "좀 큰 병원의 경우 매달 3000만원 이상, 이쪽에서 잘 나가는 최상위 병원은 억대를 마케팅비용으로 지출한다. 에이전시를 통하던 병원 마케팅은 최근 자체적으로 팀을 꾸리는 게 추세다. 마케팅을 위한 인건비가 또 추가되는 것이다. 대형 병원의 경우 (마케팅) 비용을 더 쓰고 싶은데, 마케팅하고 싶은 채널을 찾지 못할 정도"라고 전했다.
규모가 작은 네트워크 병원의 분원도 공동 마케팅 명목으로 매달 600만원 이상을 지출한다고 하니, 비급여 시장에 있어서 마케팅 효과(Returning On Marketing Investment)에 대한 관심을 알 수가 있다.
시술 공장 공장장, 자존감 상한 의사들
비급여 시장이 상업화되면서 다른 영역에서나 적용되던 경제의 기본 원리가 이쪽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격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정 시술에 특화된 피부미용 병원이 개설되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병원이 늘어났다. 이들 병원은 시술의 종류를 몇 가지로 단순화시켜 가격경쟁력을 높이고(mass production in small variety), 네트워크 분원과의 공동구매를 통해 물품의 구매가를 낮춘다. (Collective Buying).
'원가절감'의 논리는 '인건비'에도 적용된다
네트워크 병원에 근무했던 한 봉직의는 "온종일 인젝*만 한다. 피부미용에 발을 처음 내딛는 봉직의들은 술기라도 배울 생각으로 높지 않은 임금을 받으면서 근무하지만, 결국 배우게 되는 것은 쁘띠**가 전부"라고 호소했다. 봉직의에게 일정 월급만 주고, 덤핑으로 유인한 많은 환자들을 빡빡하게 채워넣는 것이다.
*injection : 주사
**쁘띠 : 일반적으로 필러나 보톡스 시술을 아우르는 말
그는 "코디네이터는 매출 대비 인센티브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매출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어느날 아침 병원에 출근했는데 '레이저 10회 얼마'라는 덤핑 플래카드(one of 4P : promotion)를 볼 때마다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레이저 단가를 후려쳐서(4P : price) 티켓팅*하면 환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고, 하루종일 앉아서 빨간 불빛과 비프음을 들으며 레이저를 환자 얼굴에 쏴댄다"고 불평했다.
*다수의 시술을 할인받고 선결제하는 것
그의 말에 따르면 봉직의가 시술 기술만 취득하고 그만두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비 명목으로 1억원의 보증금을 요구하는 네트워크 병원도 있다고 한다.
근무 내내 레이저 기기와 씨름하지만, 힘든 것은 육체적 노동만이 아니다.
과거 봉직을 했던 개원의는 "연일 진행하는 프로모션으로 코디네이터와 몇 번 부딪히다가 결국 크게 한번 다퉜고 이것이 원장의 귀에 들어갔다. 나는 같은 의사로서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을 들어줄 거로 생각했지만 큰 착각이었다"고 회상하며 "원장 생각은 간단했다. 유능한 코디네이터는 구하기 힘들지만, 일할 봉직의는 줄을 섰다는 것이다"고 하소연했다. (Labor-market Flexibility)
거울에 비친 나 - 강혜진 작품
그는 이어 “결국 그만두고 나와서 개원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개원을 해보니 나를 잘랐던 그 원장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Cost-Effectiveness : 비용효과
Loss Leader : 미끼 상품
Too much Cost Cutting : 무리한 원가절감
Returning On Marketing Investment (ROMI) : 마케팅 투자회수
Mass Production in Small Variety : 소품종 대량생산
Collective Buying : 공동구매
4P of Marketing :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 경로(Place), 판매 촉진(Promotion)
Labor-market Flexibility : 노동시장 유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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