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10.14 08:41최종 업데이트 25.10.14 08:41

제보

의료와 정치, 공존의 그늘...의료취약지 건강지표 세계 최고 수준, 정치적 선동으로 악성 정책 남발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프랑스의 DREES(Direction de la Recherche, des Études, de l'Évaluation et des Statistiques: 연구·조사·평가·통계국)는 사회보건부 산하 통계청으로, 사회와 보건 상황에 대한 각종 조사, 연구 및 통계 분석을 수행하고 관련 정책을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DREES가 내놓은 통계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는 전체 인구의 약 8%가 속칭 ‘의료사막(déserts médicaux)’으로 분류되는 지역에 거주한다.

이른바 의료사막은 주민 1인당 연간 진료 횟수가 ‘2.5회’ 미만으로, 특히 일반의의 진료가 매우 취약한 지역을 의미한다. 이는 프랑스 전체 인구 중 약 540만~800만 명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제 의료사막이라는 용어는 국제적으로도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느낌이다. 캐나다에서도 주치의 부족 현상을 의료사막으로 표현한다.
 
프랑스 ‘의료사막’ 연간 진료 횟수 2.5회 미만 의료 임계점 표시
 

프랑스 의료사막에서 1인당 연간 진료 횟수 2.5회라는 수치는 말 그대로 의료의 임계점을 나타낸다. 이 기준의 미만은 곧 심각한 의료 접근성과 환자 대기 시간의 증가, 의료기관까지 원거리, 그리고 다른 물류적(logistic) 이유로 진료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의사는 인구 10만 명당 약 339명이고, 이중 일반의가 150명으로 소위 ‘일차 의료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의사 수는 증가하였으나 지역간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역간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PA, 전문간호사, 정원 증원 정책 등 다양한 방안을 시도했으나 고질적인 의료사막 현상은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보조적인 수단으로 특정 지역을 순회하는 일반의가 월 2회 정도 근무 지원에 나서거나, 이동식 진료 차량을 운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의료사막’이라는 용어 대신에 ‘의료 취약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의사 수나 환자의 이동 거리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취약하다는 지역도 연간 수진율이 15.9회로 분류돼 선진국의 의료사막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의료 취약 지구임에도 수진율은 세계 최상위 수준의 반열에 있는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불가한 ‘역설적 현상’을 보인다. 프랑스를 비롯해 우리나라보다 영토가 훨씬 더 광활한 국가의 연간 3~4회 수진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월등하게 높아 의료 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캐나다 도시-지역간 심각한 의료 격차 의료 서비스 조정 관리에 난항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북부 지역은 광대한 면적과 낮은 인구 밀도로 인해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의료 접근성의 심각함과는 다른 차원의 현상을 지니고 있다. 북온타리오 지역은 온타리오주 전체 면적의 90% 이상 차지하나 거주 인구는 온타리오주의 6% 정도에 불과하다. 1 평방킬로미터 당 평균 주민 수는 1명이다. 북온타리오 주민들은 만성 질환 발병률이 높고, 기대 수명이 짧으며, 의사 수도 적어 의료 서비스의 조정과 관리 운영 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기반 시설과 지리적 거리상의 문제로 인해 의료 서비스 제공자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교통이 불안정하고 지역 간 이동 시간이 크게 소요되기 때문이다. 단위 면적 당(km2 당 1명) 거주 여건은 연간 수진율이 온타리오 평균 3~4회 이하 수준임에는 자명하다. ‘예방 가능 사망률’은 공중 보건 조치를 통해 예방할 수 있거나, 시기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통해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한 75세 미만의 사망 건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온타리오주의 치료 가능 사망률을 보면 202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약 65명이다. 온타리오주 Public Health Ontario의 2023년 데이터에 의하면, 북동부의 치료 가능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90명, 북서부는 약 101명의 통계를 보이는데, 이 수치는 온타리오주 평균 65명 규모를 훨씬 상회, 도시와 지역 간의 심각한 격차를 보여준다. 공공의료의 맹주인 영국(UK)의 4개 구성국 중에서 우리나라와 지리적 여건이 비슷한 England(英蘭)만 놓고 보면 2021년도 기준 치료 가능 사망률은 71명이다. 이에 반해 웨일즈는 91명으로 한 눈에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영국 전체 평균 치료 가능 사망률과 비교해도 우리나라가 훨씬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치료 가능 사망률 가장 높은 지역도 영국 등 선진국보다 훨씬 낮아
 

한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2023년 치료 가능 사망률이 높은 지역은 충북인데, 그 수준은 49.94명이었고, 반대로 낮은 지역은 울산 36.93명으로 조사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평균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치료 가능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지역조차도 선진국과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치료 가능 사망률’은 세계 최상위 수준의 ‘양호한 반열’에 속해 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이것은 건강지표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제대로,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하나의 작은 지표 수치가 아닌 다른 전체적 맥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다른 건강지표인 기대여명, 고령인구 비율, 인구 1000명 당 의료기관 종사 의사 수 및 의료기관 병상수 등 다양하고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치료 가능 사망률과 다른 건강지표를 살펴본 연구에 의하면, 시도별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 사망률과 다른 건강 지표상의 관련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즉 건강지표와 의료 수준이 동일하지 않다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건강의 문제는 곧 의료의 문제’로 의도적으로 비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강지표 상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정치적 선동으로 악성 정책 남발
 

우리나라는 이미 건강지표 상 세계 최고의 반열에 있음에도 정치적 선동 구호에는 애써 도시와 지역간의 격차를 노골적이고 심각한 것으로 부각한다. 그리고 건강과 의료를 동일시해 건강의 문제를 의료의 문제로 비약해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료기관 확충 등 그럴듯한 성과 전시용 정책으로 악용한다.

건강의 목표가 의료로, 그리고 정권으로 필요에 따라 시시각각 이동하고 있다. 승객 없는 낭비성 공항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나라 취약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진율이라는 역설적 현상을 보면 의료의 문화적 특성에 대한 세심하고 심오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왜 취약지에서 그리고 지역 내 낮은 의료기관 이용률에도 세계 최고의 수진율을 보이는지, 그 이유에 대한 학술적 증거자료를 찾아 분명하게 규명해야 한다. 최고 수진율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enabler)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문화적 배경에 어떤 정책이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지 판단해야 한다. 의료를 위한 것은 ‘착한 적자’라는 이유로 무작정 막무가내로 추진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건강 증진이다. 이미 우수한 지표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도시와 지역 간의 ‘미세한 격차’ 줄이기를 위한 효율적 정책은 과연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참고 문헌>
geoconfluences.ens-lyon.fr
vie-publique.fr
Connexion France
Publichealthontario.ca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

이 게시글의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