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실로 벌금형만 받아도 의사면허 정지라니…바이탈과 지원 급감하고 대한민국 의료는 붕괴되고 있다
[칼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전라남도의사회장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여름 의료계 파업 이후 의사들을 압박하기 위한 각종 법안들이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공룡 여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하루가 멀다하고 경쟁적으로 발의되고 있다.
최초의 여성 국회 부의장이자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인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지난 17일 무면허 의료행위나 허위진단서 작성 등 행위에 대해 기존 자격정지 수준에서 의사 면허 취소로 규정을 강화하고, 의료행위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로 인해 벌금형만 인정되더라도 의료인의 자격을 정지시켜야 한다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미 의료법에는 의료인 아닌 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한 경우나 진단서 혹은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한 경우 무허가 주사제를 사용하거나 진료 중 성범죄를 범한 경우 의료인의 자격을 정지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렇지만 김 의원은 무면허 의료행위 등을 시킨다거나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 등 행위는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행위로 현행보다 엄정한 제재와 자질 관리가 요구된다면서 자격정지보다는 면허 취소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의료법에는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 등을 하는 경우 제2항에 따른 사항을 환자(법정대리인)에게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다만,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해 수술 등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의료법 24조의2 제1항)
그런데 김 의원의 법안은 거기에 한술 더 떠 동의를 받은 후 수술을 하던 도중 수술에 참여하는 주된 의사를 변경하거나 추가하려는 경우에도 환자에게 설명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의료법에는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해 수술등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덧붙이고 있지만, 수술 중 주된 의사를 변경하는 것이 꼭 응급이나 중대한 장애 상황만 있겠는가? 지금도 수술 중 예기치 않은 환자의 문제가 발생되면 법정대리인 등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주된 수술자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김 의원의 법안대로라면 수술 중인 환자의 수술을 중단하고 환자의 마취를 깨워서 다시 동의를 받고 수술을 재개해야 한다.
이 개정안의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벌금형만 받아도 의사 면허정지를 하도록 한 조항이다.
이미 현행법에서는 의료인이 의료행위와 관련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김 의원의 법안은 벌금형만 받아도 업무상 과실이 인정돼 형사처벌을 받은 셈이니, 일정 기간 의료인 자격을 정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법안이 과연 국회 부의장이자 4선 의원으로서 발의한 내용이 맞는지 도저히 믿기 힘들다. 범죄에 대한 징벌과 제제는 범법 행위의 정도에 따라 사회적 논의와 법리적 합리성을 토대로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의 정도를 양형(量刑)으로 정한다.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에 대해서도 양형이 개인의 신체적 자유, 경제적 자유 등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고, 나아가 생명까지 박탈하는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때문에 형사재판 전체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원조직법’에 따라 설립된 양형위원회가 기준을 정해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을 설정할 때 ①범죄의 죄질 및 범정(犯情)과 피고인의 책임의 정도를 반영할 것, ②범죄의 일반예방 및 피고인의 재범 방지와 사회복귀를 고려할 것 ③동종 또는 유사한 범죄에 대해서는 고려해야 할 양형요소에 차이가 없는 한 양형에 있어 상이하게 취급하지 아니할 것 ④피고인의 국적·종교 및 양심·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양형상 차별을 하지 아니할 것 이라는 네 가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법원조직법 제81조의6 제2항)
이처럼 형사범을 징벌하는 것 조차도 피고인의 인권과 사회적 차별 등을 고려하고 있는데,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법안으로서 합리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의사 죽이기 올인 법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무과실 또는 고의가 아닌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의 형사처벌이 면제되고 있는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금도 의사들이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인신구속이 남발되고 있다.
4년 전에 발생한 80대노인의 장폐색 사건의 재판 중 두 자녀의 엄마인 대학 교수가 법정구속이 되는 기가 막힌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나라가 의사들의 헬조선 대한민국이다. 이로 인해 올 전공의 모집 지원에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소위 '바이탈과'의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다.
지난 여름 의사들의 파업이 국가의 잘못된 보건 정책과 이러한 비상식적 의료환경 때문에 기인된 것임을 안다면 김 의원은 이런 법안 발의가 아니라, 여당 중진의원으로서 의사파업의 원인을 심도있게 살펴보고 당 차원의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법을 제정해 의사가 안정적 환경에서 환자 진료에 전념하도록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감정적 대응으로 상식이하의 법안을 발의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의료분쟁의 위험이 높은 필수의료과인 흉부외과를 전공한 의사로서 필자는 말문이 막힐 뿐이다.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환자들에게 선의로 의료행위를 시행하고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전세계 어느 국가도 이처럼 선의로 행한 의료행위로 발생하는 업무상 과실에 대해서 의사를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의료가 제대로 발전해 나가려면 의료인의 처벌을 무조건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법 개정을 해선 안 된다. 오히려 선의의 의료행위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사회 규범상에 위배되는 의료행위를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보건의료인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의료법을 개정해야 마땅하다.
이번 법안처럼 징계를 강화하는 입법 시도가 남발된다면 생명을 다루는 바이탈과 의사들의 사기는 크게 꺾이게 될 것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바이탈과 전공 지원이 급격히 감소하게 될 것이다.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 의료는 몰락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최근 10여일 사이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300명을 웃돌고 24일 0시부터 수도권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된다. 대한민국 보건의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의료인들을 격려는 못 해줄망정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연달아 발의하는 것은 코로나19 방역에도 전혀 도움이 않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코로나19를 극복하려면 정부와 의료계는 한마음 한뜻으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의료계가 정부 정책에 반대했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의료계를 처벌하는 각종 법안들을 남발하는 것은 보건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자해행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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