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3.09 09:14최종 업데이트 24.03.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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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필수과 증원에 찬성하는 의사다

살인적인 필수과 근무 환경 개선하지 않고 의대 증원만 되면 의사가 망하는게 아니라 이 나라 의료가 망한다

[칼럼] 이경민 동국대학교일산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나는 솔직히 언젠가 의사 수는 늘어나야 된다고 생각해"

자주 동료들에게 했던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의대 증원은 다른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의대 증원 전에 해결해야하는 문제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절실히 같이 일할 동료를 찾아 헤메는 응급의학과 교수로서, 지금 이대로 의대생을 늘리면 더 값싸게 미용진료를 받는 것 외에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값싸게 예뻐지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것이 필수의료의 붕괴이다. 

왜냐하면 필수과에는 의사를 늘리는 것 보다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다. 수십년간 필수과의 문제들을 해결해달라고 읍소하기도 하고, 화내보기도 하고, 힘들다고 칭얼대도 보았지만, 보건복지부와 이 나라는 그것을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그런데 현재 정원 3058명에 더해 늘어난 2000명의 의대생이 의사가 되는 기간동안 필수과와 관련된 문제들이 해결될리 만무하다. 오히려 필수의료에 문제가 있다고 외치는 전문가의 목소리에 돌아오는 건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 뿐이다. 그 싸늘한 시선에 의사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의사로 살아가는데 회의감이 들지만, 아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의대 증원이 되면 의사가 망하는게 아니라 이 나라 의료가 망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많은 문제 중에 반드시 하나만 강조해야 한다면 살인적인 필수과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서 국가지원이 필수적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는 시대에 1년동안 365일 24시간 전화를 받아야 하는 직업이 있을까? 대형병원 필수과 의사가 그러하다. 흉부외과 교수 2명이면 182.5일씩 나눠서 받을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세부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심장 및 혈관, 그리고 폐를 나눠서 2명 모두 365일 24시간 내내 전화를 받는다. 

내과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분야라고 하더라도 입원환자를 보고 있다면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른다. 의료는 점점 세분화돼서 같은 과가 실제로는 같은 분야를 진료하지 않는 것이다. 세부진료과목별로 나누면 내과만 해도 하룻밤에 10명이 넘게 당직표에 이름을 올려야한다. 이런 현실에 필수과만이라도 365일 24시간 진료가 가능한 사람들을 충원할 수 있을까? 

보통 응급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발생한 환자들은 오히려 적자가 발생하고 법적 분쟁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민간 병원은 24시간동안 불을 밝혀줄 필수과 의사들을 충분히 채용하기 위해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돈을 적게 받고, 주당 88시간을 일하고 세부과목과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피교육자(전공의)들이 대학병원의 필수 인력이 된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둬야 할 것은 필수과, 그 중에서도 수술과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대형 병원에 근무하기를 원하고, 그래서 의대 교수 자리가 귀하던 시절도 있었다. 전공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형병원에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뽑아줄 자리는 없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배운 걸 써먹을 자리가 없는 과는 더 이상 피교육자(전공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은 사명감 넘치던 젊은이에게 의학드라마와 같은 삶을 꿈꾸게 하면서 고혈을 빨아 놓고선 전문의로 성장하자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년이 흘러 피교육자를 재물 삼아 유지되는 살인적인 근무환경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퍼지면서 의대생이 필수과를 선택하지 않게 만들었다. 값싼 인력이 없는 과는 정년이 될 때까지도 살인적인 근무 환경에 노출돼야 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필수과=희생'의 공식이 성립됐고 공고해졌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늘어난 의대생들이 필수과 앞에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라는 희망회로를 돌린다.

이 사태 속에서도 필수과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다 보면 정말로 의사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응급실을 함께 지킬 동료가 없을 때는 될 대로 되라 싶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부와 국민들은 이성을 찾고 문제의 핵심을 직시해 필수과를 의대생이 가장 선망하고 주저없이 선택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것이 내 생애 최대의 자랑이자 기쁨이도록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환자와 나의 삶, 나의 가족사이에서 고민해야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후배들이 필수과 앞에 문전성시를 이루고도 의사가 부족하다면 의대 증원은 두 손들고 환영할 일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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