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경혈 두드리기를 통한 감정자유기법' 비급여 행위 등재
정신건강의학과에는 불안, 우울과 같은 증상을 치료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흔히들 정신과 치료라고 하면 약물 치료만을 떠올리지만, 아주 다양한 면담 기법과 행동 치료들이 있다. 약물만으로 효과가 부족한 환자, 약을 거부하는 환자, 약과 병행해 효과를 노리는 환자 등 이들의 불편감을 다스리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게끔 아주 많은 다양한 면담, 행동 치료 기법들이 오랫동안 발달해 왔다.
대표적인 것들이 인지행동요법, 수용전념치료, 변증법적치료, 마음챙김치료 등인데, 이러한 것들은 수 십년간 전 세계에서 수없이 많은 연구를 통해 치료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됐다.
하지만 이것들을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 건강보험 심사라는 높은 허들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보험인만큼 그 기준이 까다로운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4일 화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안장애, 불면증,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경혈 두드리기를 통한 감정자유기법(EFT)’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으로부터 신의료기술로 인정돼 건강보험 비급여 행위로 등재되는 일이 벌어졌다.
일단 ‘경혈 두드리기를 통한 감정자유기법(EFT)’라는 말부터 완전한 코미디다. 왜냐하면 EFT는 미국의 목사인 게리 크레이그(Gary Craig)가 만든 대체요법으로 1993년에 창안된 것이기 때문에 2021년에 신의료라 할 수 없고, ‘경혈’이라는 것 자체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도 없기 때문에 ‘기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비급여 등재 심사 과정에서 인용된 논문들도 무척 황당한데, 위에 나열한 면담 기법들의 방대한 연구 결과와는 비교할 가치조차 없는 부실한 소규모 연구 논문 두 편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을 정부가 승인한 이유는 정치적 목적 외 그 어떤 것도 추가로 담겨있다고 보기 어렵다. 차라리 ‘전통 의료 활성화를 위한 구제 지원책’ 정도로 이름을 붙였다면 이정도로 황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정치적 목적에도 솔직했을 것이다.
바이오산업이 날로 발전하고 전 세계가 첨단 신의료기술 개발에 뛰어드는 판에, 대한민국 정부는 무려 ‘경혈 두드리기’를 신의료기술로 인정했다.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신의료기술’에 대한 가치와 평가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부끄러움은 우리만의 몫일까.
대전시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이렇게 비판했다.
“신의료기술은 새로울 신(新)이 아니라 귀신의 신(神)이 내린 의료기술을 의미하는 것 같아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이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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