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10.21 08:00최종 업데이트 20.10.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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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 지표연동 자율개선제에 '75세 이상 5개 이상 약제 처방률' 포함...75세 이상 노인은 약도 먹지 말고 죽으란 말인가

[칼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전라남도의사회장

사진=지표연동 자율개선제 항목 변경 공문 

[메디게이트뉴스] 의료계가 4대 악법 저지 투쟁으로 뒤숭숭하던 지난 7월 2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광주지원은 지역 의료기관에 '지표연동 자율개선제'(이하 자율개선제)의 항목 변경 관련 공문을 보냈다.
  
심평원에 따르면 자율개선제는 의료기관에서 청구한 진료비용 및 내역을 토대로 심평원이 산출한 지표가 의료기관의 진료가 개선해야 할 대상인지를 통보하고 자율적으로 개선하라는 제도다. 

그러나 현장에서 자율개선제는 "과거 심평원의 행태로 보아 지표가 높은 기관은 향후 현지조사나 실사 대상 기관으로 선정될 것이니 조심하라"는 경고로 들린다.
  
이번에 통보된 내용의 핵심은 기존 '전체 처방 건수 중 6품목 이상 약제의 처방 비율'을 점검하던 것에서 세분화됐다. 75세 미만은 ‘6품목 이상 처방률’을 점검하고, 75세 이상은 ‘5품목 이상 처방률’을 점검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번 개정 사항의 문제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75세 이상 고령환자의 질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65세 이상 노인 환자 중 75세 이상의 고령환자의 경우 만성적인 질환을 다수 가지고 있어서 비교적 젊은 75세 미만의 노인 환자에 비해 다약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율개선제 항목을 ‘75세 이상 5품목 이상 처방률’로 변경하는 것은 더 많은 약제를 써야 할 고령자에게 오히려 약을 줄이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자칫 75세 이상 고령환자의 건강을 크게 위협할 소지가 있다.
  
둘째. 사전 계도와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었다.
심평원은 이번 변경사항을 2020년 4분기 통보분(3분기 심사결정분)부터 적용한다고 하나, 3분기 심사결정분이라고 하면 청구를 늦게 하는 의료기관의 경우 올해 초인 1,2월 진료분도 포함될 수 있다. 정부의 제도 변경사항은 적용 시점 이전부터 충분히 안내를 하고 의료기관에 일정 기간의 계도 기간을 두어 혼란과 민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1월 진료분도 해당될 수 있는 사안을 5월 이후에나 공문을 보낸 후 적용하는 것은 심평원의 일방적인 행정 갑질이다.
  
셋째. 전문가 단체의 의견수렴이 없었다.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약품 처방을 제한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러한 전문적 내용을 변경하려면 사전에 전문가의 의견과 자문을 충분히 수렴하고 특히 실제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의료계 전문가 단체인 대한의사협회 등과 신중한 협의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생략됐다.
  
넷째. 자율개선제 고유의 취지 및 목적에 역행한다.
심평원은 자율개선제의 도입 당시 이 제도를 통해 의료기관의 자율적인 적정진료를 유도한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 자율개선제 시행 과정에 기관의 특성상 특정 약제의 지표가 높은 기관에 대해 일률적 약제비 삭감이나 보건복지부 실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강압적인 통제 효과로 의료기관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침해하는 통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섯째, 자율개선제는 글로벌 다약제 관리 사례와 달리 학술적 근거도 없는 행정 폭력이다.
'우리나라의 다약제 현황과 적정관리 방안에 대한 고찰'(한국임상약학회지 제28권 제1호)에 따르면 “부적절한 다제약제 처방을 관리하는 목적은 무조건 처방약 개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다제약제 중 부적절한 약제가 포함되지 않도록 해 그로 인해 발생되는 이환이나 사망, 추가 의료비를 줄이고자 함이다”고 정의하고 있다.

실제 유럽에서는 다약제 처방의 치료 유효성이나 적응증, 상호작용, 중복투약 등을 집중 관리하고 있으며 미국도 약물치료 검토, 개인 약물 이력 관리 등을 핵심요소로 관리한다. 일본은 재택요양환자를 방문하여 복약지도, 약제 적절성 검토, 복약순응도, 부작용모니터링 등을 시행한다.

그동안 심평원은 의학적 근거보다는 비용적 관점에서 심사 기준을 정하고 진료비 삭감을 많이 해와서 소위 '심평의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기관이란 오명을 들어왔다. 특히 그 과정에 전문가 단체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의사들부터 끊임없이 원성을 들어왔다.
  
이번 자율개선제 변경도 마찬가지로 심평원은 고령 환자의 의학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대한의사협회 등과 어떠한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 제도의 기준을 변경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홍보를 해왔다.
  
우리나라도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번 심평원의 일방적인 자율개선제 변경이 적용되면 75세 이상 고령환자의 치료에 문제가 생길 위험에 처해있다. 학문적 근거도 없이 단지 약제비 절감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고령환자의 다약제 처방을 제한하는 '행정 폭력'은 노인의 인권과 복지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잘못된 정책이다. 

나이 들어 병든 것도 서러운데 약 조차도 제대로 못쓰게 하는 심평원의 지침에 대해 노인 환자들은 불안해 하고 있으며 자녀들은 분노한다. 만일 무리하게 지금의 자율개선제를 강행할 경우 심평원은 향후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을 경고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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