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12.13 10:12최종 업데이트 25.12.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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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학이 무너지고 있다…MD 교수 중 38% 5년 내 퇴임, 신규 진입은 '제로'

의사 기초의학 교수·학생 멸종 위기…국가 기초의학 연구소 설립·MD 비율 제도화·보상확대·병역 제도 정비 등 제언

(왼쪽부터) 서울의대 김종일 교수, 연세의대 이민구 교수, 경희의대 허영범 교수, 고려의대 유임주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 의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핵심 기반인 기초의학이 구조적 붕괴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이에 국가 단위 연구소 설립, MD 기초 교수 비율 제도화, 경제·제도적 지원, 병역 제도 정비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대한의학회와 대한기초의학협의회는 12일 서울대 의과대학 교육관에서 '대한민국 기초의학의 위기와 도전'을 주제로 2025 기초의학진흥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고려의대 유임주 교수(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경희의대 허영범 교수(대한기초의학협의회 회장), 연세의대 이민구 교수(한국의사과학자협회 부회장), 서울의대 김종일 교수(한국의사과학자협회 회장)는 기초의학 분야가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며, 인력 양성 방안에 대해 제언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기초의학 전임교수는 1638명이며, 이 중 전통 기초의학 교수는 1316명이다. 병리학·예방의학을 제외한 전통 기초의학 교수는 883명이고, 의사(MD)는 368명(42%)에 불과하다. MD 교수 중 약 140명(38%)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어 인력 공백이 예상된다.

이 가운데 신규 인력 충원 전망도 어둡다. 김종일 서울의대 교수는 "서울의대 41~48회(1987~1994년) 졸업생 중 13명이 생화학교실로 진입했다. 이후 49~56회와 57~64회, 65~72회는 각각 3명 수준에 그쳤고, 최근 73~79회(2019~2025년)에서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중 현재까지 기초의학에 남은 인원도 많지 않다"며 "전일제 학위 연구 지원도 2021년 4명에서 2024년 0명까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기초의학의 붕괴는 불투명한 진입 경로, 임상 중심 평가·보상 체계, 박사 후 경력 경로 부재, 열악한 근무환경, 정책 지원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유임주 교수는 "기초의학은 대부분 우연한 진입에 의존했다. 공식적인 트랙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MD 특화 조기 임용 트랙과 코스화를 통해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진입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각 대학은 연구 실적에 기반해 순위 경쟁을 한다. 이 때문에 교육을 잘하는 교수는 배려받기 어렵다"며 "교육에 헌신할수록 연구력이 떨어져 불리해진다"고 덧붙였다.

허영범 교수는 "MD 대학원생 부족, 낮은 보상, 논문 압박, 임용 기회 축소 등 여러 요인이 누적되면서 MD 기초의학 교수는 계속 줄고 있다"며 "이대로면 의학교육 질 저하와 연구 역량 약화, 기초-임상 연계 단절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김종일 교수는 "박사학위 후 연구급여, 연구 보호 시간 등 출구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며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컨트롤 타워와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세의대 이민구 교수 발표자료 중 일부.

이어 병역 제도가 전일제 박사(MD-PhD) 양성 체계의 병목으로 지적됐다.

이민구 교수는 "전일제 박사 과정에서 군 전문연구요원은 중요한 유인인데, 전국 TO가 30명뿐"이라며 "정부가 연간 100~150명의 MD-PhD 양성을 목표로 한다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TO를 늘리려면 공대·자연과학대 TO를 줄여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문제는 TO가 있어도 실제 편입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2024년 8명이 의사과학자 편입을 확정했는데, 국방부 병무청에서 '내과 등 6개 과는 군의관이 부족해 편입 불가'라는 공문이 내려와 3명은 결국 군의관으로 재입대했다"며 "올해는 12개 과목이 편입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전주기적 양성 프로그램으로 10년 이상 준비한 인재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연구 트랙 진입이 차단되면 학생들은 '연구를 열심히 해도 국방부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며 군의관·공중보건의사·병역판정전담의사 외 의사과학자 병역 트랙 신설을 제안했다.

발표자들은 대학 단독으로는 기초의학 기반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국가 차원의 구조 개편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유 교수는 일본 국립 생리학연구소(NIPS) 사례를 언급하며 "일본도 MD 감소 위기가 있었지만 국가 연구소가 연구의 중심축으로 작동해 구조적 붕괴를 막았다"며 "한국도 국가기초의학연구소가 필요하다. 국가적 거버넌스와 지속 가능한 펀딩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의사과학자 인력 양성 모델을 언급하며 "미국은 국립보건원(NIH) 주관으로 학부과정부터 젊은 교수급까지 다양한 단계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개인 또는 기관을 지원한다. 또한 2018년 기준 약 44조원에 달하는 미국 국립보건원 전체 의학연구 예산 중 2.26%, 약 1조원 이상이 양성 보조금으로 지출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 학생들은 연구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높다. 연구를 하면 인생이 달라지는 게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각 기초의학 교수의 MD 비율을 50% 이상으로 설정하는 등 최소 기준을 세우고, 이를 의학교육 평가인증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이 외에도 대학원생 장학금 확대, 기초 교수 보상 현실화 등 경제·제도적 유인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원 기자 (jwlee@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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