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 받은 응급의학과 전공의의 한탄 "보호자 고발도 없는데 인지수사 대상...응급환자 보기가 겁난다"
[인터뷰] "자살 징후 환자, 보호자 동의로 폐쇄병동 있는 병원으로 전원...환자 귀찮아서 진료거부 했다는 이유로 수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수사를 받으며 심적으로 많이 괴로웠어요. 이제 응급환자 진료하기가 무서워요."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3년차 A씨는 오늘도 밤낮으로 병원 응급실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어떻게 환자들을 봐야 할지 걱정이다. 다친 환자들을 병원의 가장 최전방에서 진료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보람으로 지금까지 힘든 전공의 생활을 버텨왔지만, 이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A씨는 최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구조대에 의해 실려 온 응급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이른바 '진료거부'했다는 이유에서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대구북부경찰서는 A씨가 초기대처에 미흡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가 환자를 초진하긴 했지만 CT 등 보다 명확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전원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A씨는 억울하다. 자신은 분명 배운 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은데, 사회는 자신을 '진료를 귀찮아 하는 돌팔이 의사'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처음 내원했을 때, A씨는 환자와 가족들을 문진한 결과, 자살 징후자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최근 아무도 없는 폐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얘기를 들었고 '죽고싶다'. '자퇴하고 싶다' 등 얘기를 자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환자는 낙상에 따른 우측 다리 골절이 의심됐고 무엇보다 A씨는 환자에 대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고 봤다. 보통 자살 징후가 명확한 응급환자에 대해선 정신과 폐쇄병동이 있는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가 함께 이뤄지지만, 파티마병원의 경우 폐쇄병동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A씨는 "병원에서 몇 년 전에 자살 기도 환자를 그냥 받았다가 환자가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정신과적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폐쇄병동이 있는 병원으로 전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이뤄졌다. 그는 "당시 병원 상황과 전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환자 어머니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입원 자체가 힘들다 보니 폐쇄병동이 있는 상급병원으로 가야한다고 전달드렸고 어머니 동의하에 전원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환자 전원 이후, 사건이 잘 마무리된 듯했지만 해당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서 A씨는 경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경찰 측은 응급의료법 제6조 2항을 들어 A씨가 '응급의료 거부 금지' 조항을 어겼다고 보고 있다. 다만 동일법 제48조 2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당 법률은 응급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만 환자 수용 의무를 일방적으로 부과하고 있지 않다.
제48조 2의 1항을 보면 응급환자 등을 이송하는 자는 ‘이송하고자 하는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능력을 우선 확인’하고 ‘응급환자의 상태와 이송 중 응급처치의 내용 등을 미리 통보’해야 한다. 즉 병원과 의료진 책임에 앞서 응급환자를 해당 병원에서 수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미리 점검됐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대구파티마병원은 응급환자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응급의료정보상황판에 공지한 상태였지만 구급대원은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환자를 이송해왔다.
A씨는 "원칙대로 한 것 같은데 내가 잘못했다고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수사 과정에서 초진 의사라는 이유로 내가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 같은 전제가 짙게 깔려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심지어 수사 과정에서 '귀찮아서 환자를 받지 않고 돌려보낸 것 아니냐',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이후에 진행될 환자 정신과 치료를 왜 신경쓰냐. 그건 가족들이 알아서 할 문제다' 등의 발언들은 A씨의 가슴에 날아와 비수가 됐다.
밤낮 응급실을 지켜야 하는 응급의학과 특성상 병원 최전방에서 환자들을 가장 먼저 진찰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환자 사망 사건 앞에서 이런 소명 따위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병원과 진료밖에 모르던 대구 의사에게 수차례 이어진 경찰 조사는 현실이었다.
A씨는 "수사를 받으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분명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소신껏 진료해왔는데 이런 것들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것 같았다"고 현재 심경을 털어놨다.
아울러 그는 "결과론적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등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장의 의사들이 가해자로서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응급실에서 하루에도 몇 분씩 돌아가시는데 이젠 진료 보기가 겁난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2023년도 전반기 응급의학과 전공의 충원율은 85%로 만성적인 지원율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빅5병원으로 가톨릭중앙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도 '미달'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A씨는 "현재 우리 병원도 응급의학과 1년차 전공의가 없다. 안 그래도 전공의 지원율도 떨어지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자긍심과 사명감을 흔드는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향후 응급의학과 기피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대구파티마병원 측도 전공의를 구하기 위해 초비상에 빠졌다. 대구파티마병원 최규일 응급의학과장은 "현 사건의 본질은 필수과 부족으로 인한 응급환자 수용의 한계가 지속되고 있고, 그런 사례들이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는 데 있다"라며 "하지만 경찰은 유족의 고발도 없는 상태에서 인지수사를 시행해 전공의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곧 기소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잘못된 의료체계의 문제를 전공의 1인에게 형사적 책임을 지우려는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응급의학과를 지원하려는 전공의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현장에서 이탈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도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는 전공의 1인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각 병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행정처분을 충실히 시행하고 의료계 내외부적으로 의료체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경찰의 무리한 수사는 현 의료체계의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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