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2.18 10:31최종 업데이트 26.02.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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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캐나다에서 실패한 정책 폐기한 모델, 한국에서 되살아난 추계 방식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1990년대에 캐나다에서 이루어진 의사 인력 추계 방식은 국제 보건의료 인력 관리 분야에서 자주 인용되는 정책적 실패 사례라는 ‘위험 표시 경고등’이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북미의 보건 경제학자들은 의사가 늘어나면 이에 비례해 의료비가 증가하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그 당시의 추세로 2000년대에 접어들면 의사 인력이 너무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이고, 주장이다. 특히 1991년에 발표된 ‘바러-스토다트 보고서(Barer-Stoddart Report)’에 따르면, 캐나다 의사 공급과잉의 판단 근거를 주로 인구 대비 의사 수(physicians per 1000 population)의 비율로만 따져 과거의 증가 추세를 단순하게 계산해 추산하는데 그쳤다.

왜냐하면, 당시 의사 추계의 가장 큰 목적은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불확실하고 복잡한 요소들을 배제한 단순 비율의 기반 모델을 정책적이고 사회 정치학적으로 채택해 의도성을 갖고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잠시 복기해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과거 캐나다 의사 추계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 보면, 우선 잘못된 ‘추계 방법론(Ratio-based model)’을 선택해 적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추계 방식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일정하면 충분하다고 가정했고, 의료 수요에 대한 변화는 고려하지 않았다. 사회가 안고 있는 고령화 속도를 비롯해 만성질환의 증가, 의료 이용률의 증가, 의료 기술의 발전에 따른 진료 시간 증가 등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즉, 당시 인구 증가 속도로 봤을 때 천천히 늘고, 의사 생산성은 크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지극히 안이한 가정을 설정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의 변화는 고령화 급증과 진료량의 폭증, 의료복잡성과 다변화의 증가를 동시에 경험하는 다이내믹한 사회로 크게 변화한 것이다.
 
‘의료비 억제’라는 정치 목적으로 단순히 계산한 캐나다 의사 인력 추계 처참한 실패
 

캐나다 의사 인력 추계에서 실패 원인의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의사 추계에서 ‘의사 행태 변화(Behavioral change)’가 반영되지 못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당시에 적용한 추계모델은 의사가 평생 ‘동일한 방식’으로 일한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사회적 변화에서 여성 의사의 비율이 급증하고, 평균 근무시간도 감소했다. 육아와 가족을 이유로 파트 타임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유형의 근무 형태가 속출했고, 일로 인한 소진(번 아웃) 문제를 비롯해 법적인 소송 문제와 각종 행정부담, 특히 워라밸 등 삶의 질 등의 새로운 사안이 등장하고 개인의 가치관에 변화를 주면서 조기 은퇴자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캐나다에서는 그동안 의사 단독개원이 감소하고 팀 기반의 의료가 증가했으며, 각종 행정업무의 증가로 인해 실제 의사 공급 면에서 보면, 전일제(FTE) 기준으로 계산하면 단순한 의사 머릿수(Head count) 수치보다 크게 줄어든다. 이에 따라 캐나다 정부는 의사 과잉의 우려와 정무적 판단에 따라 실제 의사 유입에 대한 과도한 정책을 추진했다.

지난 1993년에 캐나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10~15% 감축하고, 외국인 의사의 진입도 엄격히 제한했다. 전공의 교육을 위한 수련의 정원도 축소하고, 면허규제를 더 강화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적 조치는 이로부터 10~15년 후쯤 의사 부족 현상으로 나타났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곧바로 되돌릴 수 없게 됐다.
 
캐나다의 1990년대 추계 방식에는 오늘날 글로벌 기준의 추계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상황별 시나리오 분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단순하게 단 하나의 예측치만 발표하고, 다른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만일 상황별 시나리오를 고려했다면, 고령화 가속 시나리오, 은퇴 증가 시나리오, 여성 의사 증가 시나리오, 의료 이용량 증가 시나리오 등 다양한 불확실성을 추계 작업에 포함해 반영했어야 했다. 하지만 예상되는 사회적 변화를 별다른 고민 없이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꼴이 된 것이다.
 
이러한 부정확한 추계를 정책에 반영한 결과 캐나다는 결국 2000년대 들어 의사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지난 2005~2015년 사이 캐나다는 주치의 제도가 기본인 나라에서 가정의학과 의사의 심각한 부족 문제를 비롯해 응급실 대기시간의 증가, 전문과 환자 진료 대기시간 폭증(평균 수개월간 대기), 농촌 지역 의료 붕괴와 주치의가 없는 가정이 증가한 것이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곧 정치 분야로 화살이 돌아가 의사 부족 문제는 곧 ‘실패한 정책이 만든 부족(policy-induced shortage) 현상’이라는 거센 비판이 회자됐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정책을 급선회해 의대 정원을 다시 대폭 증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캐나다의 의사 인력 추계에서 실패한 원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방법론적으로는 단순 인구 대비 비율에만 의존했고, 수요 예측에서는 의료 이용량 변화를 무시했으며, 공급 예측에서는 은퇴와 근무시간(FTE) 변화를 별다른 고민 없이 간과한 것이다. 또한 단일 시나리오에 의존한 정책 설계와 ‘의료비 억제’라는 정치적 목적이 정책이 나가야 할 방향을 강하게 지배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큰 화를 부른 것이다.
 
캐나다의 학자들은 훗날 스스로 평가하기를 2000년대 의사 부족 문제는 1990년대 단순 비율 기반의 무모한 인력 계획을 반영한 결과였다는 자성적인 비판을 내놓았다. 캐나다는 비싼 교훈을 통해 이후에는 1990년대 진행됐던 추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식의 선진형 의사 추계 모형을 구축했다. 의사 인력 추계 모형은 Stock-and-flow 모형, Micro-simulation 모형, Needs-based demand 모형 등 상황별 시나리오 분석 의무화와 FTE 기반 추계와 정기 업데이트 등이 필수적인 요소로 추가되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틀을 갖추게 됐다.
 
다양한 변화 요인 위험 요소 미반영한 추계 땅속 금은 담보 무한대 화폐 발행과 같아
 

이미 OECD나 WHO에서도 지적했듯이 현대적 의사 추계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정책은 ‘00년도 의사 00명 필요’ 등 단순 산수와 같은 단일 숫자 제시 방식이다. 마치 의사 머릿수(Headcount)가 한 나라의 전체 보건의료 정책을 대신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 추계의 최대 함정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 의사 추계를 보면 FTE 기준, 의사 행태 변화, 지역과 전문과 별 분석이 누락돼 있고, 무엇보다도 정치성을 배제하기 위한 추계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여기에 우리나라 고유의 특성인 높은 전문의 비율, 저수가, 사법 리스크 등 법적인 부담, 환자의 자유로운 의료 이용 등 타국에는 없는 ‘별난 요소’의 정책적 변수의 도출과 반영이 없다.

미래의 의사 추계와 의료 개혁과는 완전히 별개의 사안이 된 것으로 보인다. ‘추계’가 의료 개혁에 따른 다양한 정책변화로 인한 인력의 구조 등을 반영하고 검증하는 것도 아니고, 추계만으로는 절대로 해결 불가능한 현시점의 고질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역의료’와 ‘응급실 뺑뺑이 해결’이라는 허구에 매달려 펄럭이고 있다.
 
캐나다에서 실패한 1990년대 의사 추계를 보면, 우리나라 보건의료 인력정책의 수준이 어디에 와 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국제적으로 실패한 의사 추계의 뼈아픈 경험에서 ‘해서는 안될 추계’를 여전히 답습하고 이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추계라고 '박박' 우기고 있다. 비록 의사 인력 수급 추계위원회를 구성해 짧은 기간에 ‘습작’을 발표했으나, 이후의 과정들을 보면 “이렇게 하려면 추계위원회를 왜 구성했는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비판을 의료계 안팎에서 신랄하게 제기하고 있다.

추계에 대해 전문성과 이해가 부족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는 또 하부 소위원회를 급조해 추계 결과를 검토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의사 머릿수 (Headcount) 계산 이외 다른 것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의사 추계에 대한 미숙함을 보면, 곧 우리나라의 의료인력 정책의 수준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결국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독립성과는 무관한 ‘보건 정치 심의회(보정심)’로 솔직하게 이름을 바꾸는 것이 선진적 보건 인력정책에 대한 기대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게 해줄 것 같다는 좌절감마저 떨칠 수 없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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