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12.28 01:34최종 업데이트 21.12.28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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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의사들의 목소리 반영해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의료정책 펼쳐야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⑳ 이은아 대한신경과의사회장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내년 3월 9일로 다가왔습니다. 각 후보캠프들이 여러 단체들로부터 정책 제안을 받아 대선 공약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대통령 후보라면 반드시 짚어야 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agenda)를 사전에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의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의료계가 각종 악법에 대한 방어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꼭 필요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의료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①이철호 전 의협 의장 "일차의원과 중소병원 특별법·의료전달체계 정립·수가현실화"
②이로운 의협 홍보이사 "의료분쟁처리 특례법 제정"
③박상준 의협 부의장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응급의료시스템 정비"
④최운창 전남의사회장 "지역의료 살리기"
⑤안치석 전 충북의사회장 "서울과 지역 의료격차 최소화"
⑥주신구 병원의사협의회장 "보건의료 문제는 의사들과 먼저 협의"
⑦김장한 전국의대교수협의회장 "의료체계 정부 관여 줄이고 자유도 높이기"
⑧장성구 전 의학회장 "전문가 의견 수렴·정치적 판단 배제…고품격 의료강국 대한민국"
⑨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의료전달체계 확립"
⑩김동석 개원의협의회장 "필수의료 살리기가 최우선"
⑪박진규 신경외과의사회장 "공공성 재정립과 지역불균형 해소"
⑫이태연 정형외과의사회장 "의료계 논의 거쳐 필수의료 살리기"
⑬정홍수 대구시의사회장 "공익의료 국가책임제 시행"
⑭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 "필수의료, 적정 의료수가로 자율적 발전"
⑮박홍서 충북의사회장 "보건부 독립·건정심 구조 개편"
⑯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 "응급의료체계 개편"
⑰좌훈정 개원의협의회 부회장 "의사들의 정치세력화"
⑱강청희 한국보건의료포럼 대표 "현장 참여 보건의료정책"
⑲윤인대 성형외과의사회장 "K-뷰티 성형산업에도 관심을"
⑳이은아 신경과의사회장 "현장 의사들의 목소리 반영한 의료정책"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D-70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남은 날을 헤아려본다. 대선은 5년마다 한 번씩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여기저기 상흔을 남기며 홍역처럼 치러진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가 유난히 시끄럽고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치러야만 하는 선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 후보들의 선거운동 전략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운동회에서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서 서로 상대팀을 꺾고 이기기 위해서 목청이 터져나가라 응원하고 다시는 서로 안볼 것처럼 치열하게 싸우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떠오른다. 운동회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에 치러지는 계주달리기였는데, 아마도 계주달리기에 걸려있는 점수가 가장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경기에서 다 졌어도 마지막 계주달리기에서 승리를 하면 '한판 뒤집기'가 가능했기 때문에 청군과 백군의 모든 학생들, 선생님들이 계주선수로 출전하는 학생들에게 목숨 걸고 뛸 것을 주문했다. 또한 출전한 선수들과 같이 팔을 휘휘 돌려가며 쫒아가면서 ‘힘내라’고, ‘조금만 더 빨리’, ‘뒤돌아보지 마’ 등 하늘을 찌를 듯 한 외침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해 응원했다.   

마치 모든 국민들이 대선을 앞두고 후보로 출전한 우리 대선후보들에게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 나 또한 진료현장에서 많은 환자분들과 가족들을 만나고 여러 학회 활동과 대한신경과의사회 회장을 하면서 느끼고 배운 점들을 토대로 대선후보들에게 힘내시라고 응원하며 바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첫째, 저출산 고령화 사회,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에 과감한 투자를 해주시길 바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가 됐고, 이미 고령사회를 넘어서,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20%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저출산 문제도 심각하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스스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일 것이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료수준은 이미 최고의 의료기술과 희생과 봉사정신이 투철한 의료진들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가히 의료강국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 의사들의 성실함과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수준을 넘어서는 의료실력에 비해 우리나라 의료수가는 터무니없이 낮다. 사실 너무 창피해서 입에 올리는 것도 민망할 정도다. 

한 예로 의원기준 재진료 본인 부담금이 3530원, 새우깡 400g 한 봉지 가격이 3850원이다. 청구금액까지 합해도 의원과 병원의 재진료는 1만1770원, 초진료는 1만6470원이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각종 물가 인상률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그저 ‘국민들에게 건강보험료를 더 올려 받을 수 없다'라는 국민 입장의 핑계로 참새 눈물보다 더 적은 수가가 책정됐다. 그러면서 의사들에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계속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고 암묵적인 헌신만을 강요당하며, 지금까지 대한민국 의료가 지탱해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의사들의 희생과 헌신만으로 대한민국의 높은 의료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진정한 의료강국이 되려면 국가에서는 건강보험료에만 의존하지 말고 건강보험 예산을 파격적으로 확충해 과감하게 의료에 투자해야 한다.

도로마다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도 신호등이 빼곡하게 설치돼 있는 모습을 보며, 연말이면 정례 행사처럼 보도블록이 파헤쳐지는 공사현장을 바라보며, 국가의 뜻만 확고하다면 의료에 투자할 예산 확보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삶에서 건강과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대선 후보들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가성비 높은 의료에 확실하게 선투자를 해주시기 바란다.                                                       

둘째, 한국형 의료시스템을 존중하고 발전시켜주시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선진국을 비롯한 외국 여러 나라에서 부러워할 만큼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영주권을 발급받아 미국에서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한 지인이 당뇨병과 고지혈증 약을 처방 받으려고 하는데, 자신이 진료 받을 수 있는 의사는 1년에 한 번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과정의 의사가 전부라는 말을 전해줬다. 대한민국에서 전문의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고 진료 받을 수 있는 국민들은 ‘참 축복 받은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공공의료'로 꼽히는 영국의 신경과 의사와 수년 전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그는 "영국은 MRI를 찍는 것은 무료인데, 머리가 아파서 MRI를  찍으려면 1년 반에서 2년은 대기를 해야 하고, 그 사이에 종양이 있거나 뇌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병이 악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의사로서 고통스럽다"라고 했다.  

최근 한국의 의료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료전달체계부터 커뮤니티 케어까지 다양한 변혁의 시도와 시범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고 반영하는 근거가 포함돼 있지만, 간과해선 안되는 중요한 점은 ‘한국인들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사회적인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외국의 선례를 강조하고 따라하기보다는 한국형 의료시스템의 장점을 존중하고 발전시켜 세계 여러 국가들이 오히려 한국형 의료시스템을 따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란다.  

셋째, 생명을 다루는 진료과, 위험한 상황에서 의료를 제공해야 하는 의료인들을 보호해주시길 바란다.  

내가 인턴을 마치고 전공과목을 정해야 할 때 '여의사니까 고생을 좀 덜 하고 진료를 할 수 있는 과'를 선택하도록 여러 가지 조언과 유혹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힘들어도 내가 의사를 하면서 환자분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진료하고 보람을 최우선으로 느낄 수 있는 과를 선택’했던 것처럼, 나도 중환자 진료와 응급실 당직이 필연적인 신경과를 선택했다.

피 묻은 수술복을 벗지도 못하고 서서 햄버거를 우걱우걱 입에 구겨 넣고는 또 다른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도 얼굴엔 늘 위중한 환자분들을 살려낸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가득했던 한 흉부외과 전공의 선생님의 얼굴은 28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지독히도 낮은 저수가가 지속되고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망 환자가 발생하거나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사들을 구속하고 처벌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덩달아 생명을 다루는 진료과, 응급상황과 위험률이 높은 진료과, 소위 '필수 의료'라고 하는 진료과들을 지원하는 의사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MZ 세대의 의사들에게는 더 이상 ‘눈 앞의 것을 보지 말고 네가 평생 보람을 느끼면서 잘 할 수 있는 과를 선택하라’는 진리의 조언이 통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의료에 대한 요구사항이 더 섬세해지고 눈높이도 점점 더 높아가기만 하는 21세기 한국 의료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마치 어벤져스처럼 세상을 구하겠다고 밤낮 없이 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장시간 수술을 해내야 하며,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 옆에서 밤을 새며 치료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과를 선택하기는 쉽지가 않다.

필수 의료 기피현상은 결국 한국 의료의 질 저하를 초래하고, 결국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의사들의 열정 페이로만 필수의료를 지탱하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생명을 다루는 진료과, 위험한 상황에서 의료를 제공해야하는 의사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들이 노력한 댓가에 충분한 수가를 제공해주는 등 전략적인 필수 의료 지키기에 나서야 한다.  

넷째, 향후 의료 정책은 탁상에서 결정하지 말고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주시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의사들과 정책을 결정하는 보건복지부 정부 관계자들 모두 참 열정적이고 지혜로운 인재들이다. 이쪽저쪽을 각각 쳐다보면, 너무나 훌륭한 생각을 갖고 있고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은 동일하다. 그런데 결과는 서로 만족하지 못하는 의료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이유는 일부 전문가들의 이론과 정책 제안에 현장의 목소리가 다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의료'는 생명과 직결되는 것을 넘어 국민이 어떻게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쥐고 있어야 하고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의료정책은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공공기관과 민간의료 자원의 협력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전문 의사들과 충분히 논의하고 수립하고 실행해주시길 바란다. 

다섯째, 치매 환자 운송 서비스 등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해주시길 바란다   

정부는 치매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치매 국가 책임제를 선포하고 전국 276개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를 개설하고 치매안심병원 운영까지 나서고 있다. 대한민국은 치매 정책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앞서나가고 있다. 치매 환자 진료를 많이 하고 있는 신경과 의사로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 실행되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치매 정책들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실질적이고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원하고 생각하는 치매 서비스가 아니라, 환자와 가족들, 또 치매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됐으면 한다. 
 
한 예로 치매 환자의 운송 서비스가 제공됐으면 좋겠다. 치매 환자와 가족들은 보호자의 도움이 없으면 이동을 하기 어렵다. 치매 환자가 혼자서 병원을 가는 것은 어렵고 보호자가 노인인 배우자라면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욱 쉽지 않다. 치매 환자는 장애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차량을 지원받을 수도 없다. 치매 환자와 가족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교통 바우처나 치매 패스 등을 도입해 민간 택시 등의 운송업계와 협업해 정책적으로 치매 환자의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운송업도 활성화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 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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