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APL(지역적 잠재적 접근성 지표) 연간 2.5 미만 ‘저밀도’ 지역 지원...단순 밀도·접근시간 아닌 의료 공급·수요 통합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자료=보건복지부
[메디게이트뉴스] 현 정권은 지역 의사제를 비롯해 필수 의료와 공공의대 등 속칭 ‘지필공’을 보건의료 분야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다시 ‘국민만 바라본다’라는 기조 아래 의사 인력 증원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정책이 공공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의도인데 정작 지역은 어디를,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의미인지 구체성이 빠져 있어 불분명하다.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력 증원뿐 아니라 이미 배출된 인력도 지역으로 유도하려는 조치와 이미 지역의 의사로 자리 잡은 전문의 활용 방안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 방안은 없어 보인다. 즉 ‘지역의료’가 무엇인지도 정의하기 힘들고, 어떤 지역에 어떻게 의사를 배치하는 것이 지역의료를 활성화할 수 있을지 아직은 매우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나라 취약지 개념 이동 시간, 인구 대비 의료인 비율 등 표면적 자료만 활용
정부는 아마도 10년 이후쯤 배출될 지역 의사를 배치할 지역에 대해서는 막연히 현재의 ‘의료 취약지’를 염두에 둔 것 같다. 현재의 전문의가 인구 소멸 지역이나 취약지에서 지역의료를 위해 과연 어떤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 제공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의료 취약지 선정으로 삼는 기준을 보면 환자가 의료기관까지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인구 대비 의료인의 비율을 고려하는 것 같은데, 이러한 표면적인 자료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취약지 선정이 어려워 보인다.
국가마다 취약지의 명칭도 다르고, 그 기준도 제각각이다. 어느 곳에서는 의료 취약지가 아닌 ‘건강 취약지’에 중점을 두고 지표를 개발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교육, 직장, 소득, 문화 등 다양한 변수를 동원하여 마땅한 지표개발을 위해 노력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단순한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인구 3500명당 1차 진료 의사가 1명 미만인 지역은 1차 진료 의료인 부족 지역(Health Professional Shortage Areas)이라고 해서 약자로 ‘HPSA’라는 명칭을 붙여 지정한다.
정부는 지난 2019년에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료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권역 및 지역 책임의료기관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2025년 기준 전국에 권역 책임의료기관 17개와 지역 책임의료기관 55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책임의료기관은 대부분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지정돼 민간병원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했다.
정부는 2025년부터 200병상 이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포괄 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히고, 올해 7월 전국에 걸쳐 175곳의 의료기관을 지정했다. 포괄 2차 종합병원은 주로 민간병원 중심으로 지정했으나, 지역 책임의료기관 55곳 중 32개 공공병원이 2개의 제도에 중복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제도가 지역의료에 주는 영향은 아직은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선진국 지역의료 통합 모델과는 달리 우리나라 공공-민간 이원화 비효율적 운영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책임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살펴보면, 중진료권 단위에서 양질의 필수 의료를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별 필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보건의료기관과의 연계·조정, 연구·조사 등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처럼 ‘필수 의료 제공’에 관한 업무 자체는 해당 권역의 책임의료기관과 포괄 2차 종합병원의 핵심 수행 역할이 중첩된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공공과 민간 구분 없이 하나의 제도로 통합해 지정하는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의 지역의료 지원병원 제도와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필수 의료에 대한 대응책이 이원화돼있는 것이다.
이는 필수 의료에 관한 공공-민간 간의 협력 네트워크를 정책적으로 약화할 수 있으며, 중복된 예산 집행과 제도 운영의 비효율성 등으로 인한 차별적인 정책 논란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병원 위주의 지역의료는 있으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풀뿌리 차원의 일차 의료는 언급조차 없다. 이렇게 되면 ‘지역의료’는 결국 ‘중소도시 의료’인 것인지 궁금하다. 특히 취약지는 어떤 지역의료의 특성으로 기획하는지도 매우 아리송하다. 지역의료는 결국 해당 지역에서 그 지역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설계되고 해결해야 하는데, 여전히 중앙정부의 톱다운 형식이 지역의료의 해결책으로 일괄 적용되고 있다.
2022년도 OECD 자료에 의하면, 프랑스의 일반의, 전문의 수진 모두를 합한 전체 수진 총량은 5.5다. 일반(주치)의에 의한 수진으로 측정하는 평균 APL 값은 3.3회였다. 의료 취약지도 연간 수진율이 ‘20’을 넘기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프랑스의 의료사막 사태는 매우 심각해 보인다. 지난 2022년도 기준으로 프랑스에서 진료 접근성이 가장 낮은 하위 10% 구간의 수진 횟수는 주민 1인당 1.5회였다. 이에 비해 가장 높은 10%대에서 일반의 수진 횟수는 주민 1인당 5.7회였다. 이는 접근성이 가장 낮은 하위 10%의 평균 횟수보다 3.9배 높은 수치다. 이 같은 비율은 2022년에서 2023년 사이에 약 5% 증가해 일반의 접근성에 대한 지역별 불평등이 약 4.1배 정로 심화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다른 의료 직종보다는 양호한 상태라고 평가한다.
프랑스, 의료사막 해소책 ‘APL 지표’ 근거 우선 개입 지역 결정 후 집중 지원
프랑스는 의료사막의 수준에 따라 우선 개입 지역을 결정하고 집중적인 지역의료 지원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 우선 개입 지역 선정을 위해 지역적, 잠재적, 접근성 지표(accessibilité potentielle localisée, APL)를 개발했다. APL은 특정 지리적 수준에서 일차 진료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공간적 적절성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각 지자체 수준에서 이용이 가능한 지역 지표로써 주변 지자체의 수요와 공급을 고려하는데, 지자체가 제공하는 정보가 매우 중요하다.
지자체 수준에서 계산되는 APL은 훨씬 더 큰 격차를 기반으로 계산되는 표준 밀도 지표에서는 간과되기 쉬운 의료 제공의 불균형을 강조하고, 의료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각 지자체의 의료 종사자 활동 수준과 인구의 연령 구조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산정한다.
지역적 잠재적 접근성 지표(APL)는 우리나라의 병원 위주의 지역의료와는 달리 지역 사회 의료(병원 제외)에 대한 수요와 공급 간의 지역적 적절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의료 전문가의 근접성과 가용성을 모두 측정해 일반적인 밀도나 접근 시간의 지표보다 더 세부적이고 명확하다. 이는 각 지자체 수준에서 측정되고 계산되며, 주변 지자체의 수요와 공급을 고려하며, 거리에 따라 감소하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과거 관찰 결과를 기반으로 한 의료 전문가 활동 수준의 추정치와 연령대별로 평균적인 의료 소비량을 기반으로 한 지역 주민의 상대적인 의료 수요도 포함한다. 이미 투명하게 공개된 데이터를 통해 지자체보다 더 넓은 모든 지리적 수준에서 이 지표를 집계하고 통괄할 수 있다. APL 개발을 위해 매개변수가 초기 2010~2013년 버전에서 현재 2025년도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화하고 발전해 취약지 선정에 있어서 매우 정교하고 신뢰할 만한 자료를 제공한다.
프랑스 APL 기준 연간 2.5 미만 ‘저밀도’ 분류, 우리나라 취약지 15.9 매우 상반돼
APL에 의한 전국 평균 진료 횟수는 주민 1인당 연간 3.3회다. APL이 주민 1인당 연간 진료 횟수 2.5회 미만인 지역은 저밀도 지역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의료 취약지역의 최저 수진율이 15.9인 것을 감안하면, 프랑스와 비교해 볼 때 취약지 선정에 있어 매우 위험한 취약함이 노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의료사막의 저밀도 지역 중 연간 2회 미만은 일명 ‘적색 지역(Red Zone)’으로 불리며, 우선 개입 지역(one d’intervention prioritaire, ZIP)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ZIP에 진출하는 의사는 지역보건기구, 지자체, 보험기금 등 공공에서 시설과 장비, 토지와 건물 임대, 정착금, 특수 외래 의무법인설립, 설립 타당성 조사 등에 필요한 다양하고 포괄적인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는 APL의 객관적 지표에 근거해 공중 보건 및 지역 계획 정책에서 인센티브 구역 설정(저밀도 지역, 정착 규정)을 정의하는 데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벤치마킹하면 지역의사제도나 지역의료를 활성화하는데 있어서 우선 배치 지역을 타당성 있게 설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PL의 강점을 요약하자면, 의료의 공급과 수요를 모두 통합하고 환자의 인근지역 이동에 따른 행정구획을 초월한 효과도 포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의료사막을 정의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국가적 기준을 제공해 우선 개입 지역에 대한 집중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으로써, 지역의료를 활성화할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도 훌륭한 정책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