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cancer)은 우리 몸속 한 개의 세포에서 시작한다. 어떤 이유에선가 세포 안에 있는 DNA에 돌연변이가 생기고, 우연히 해당 DNA 돌연변이가 암과 관계된 것이었고, DNA 돌연변이가 생긴 세포가 무한하게 분열해나가기 시작하면서 암이 시작된다.
암이 세포의 질병이고,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하는 질병이고, 세포 안에 있는 DNA의 질병이라면, 하나의 세포와 그 세포에 있는 각각의 DNA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바이오스펙테이터가 펴낸 신간 '암 유전체학 노트-암과 유전자, 그리고 싱글셀 분석'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저자인 박웅양은 의사면서 과학자다. 삼성서울병원 미래의학연구원 유전체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암 유전체학을 연구한다. 그의 주된 관심은 싱글셀(single cell) 분석이다.
암이라고 부르는 부위는 암세포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암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새로 만든 혈관 세포,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올려온 면역세포 등 여러 종류의 세포들이 한데 엉켜 있다. 게다가 암세포 스스로 끊임없이 변이를 계속하기 때문에 암세포 또한 한 가지 종류만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암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최적화된 암 치료제를 처방하기 위해서는 암 조직을 개별 세포 수준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분석은 암이 세포 속 DNA의 변이로 인한 질병이므로, 각 세포 안에 있는 DNA를 각각 분석할 때 가장 정확하다. 의사면서 유전체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저자는 암 조직을 이루는 개별 세포 속 DNA를 분석해, 환자에게 가장 최적화된 암 치료제를 골라내고, 재발과 전이라는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해, 싱글셀 연구를 하고 있다.
'암 유전체학 노트-암과 유전자, 그리고 싱글셀 분석'은 암이라는 질병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유전체학 정보를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암에 걸려 고통 받는 상황에 놓인 사람, 최신 유전체학 연구를 접할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던 암 치료 현장의 의료진, 그리고 유전체학과 암을 이해해보고 싶은 독자를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되 최신의 연구 결과까지 더해 설명을 이어간다. 생명과학과 유전체학, 암과 첨단 신약이라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 가운데 꼭 필요한 것만 골라내고, 비전문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준다.
저자는 임상에서 환자를 직접 보는 의사는 아니지만, 암 치료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환자와 의료진을 만난다. 그리고 암이라는 상황에서 궁금한 것이 늘어난 환자와, 답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의료진의 어려움 또한 알고 있다. '암 유전체학 노트-암과 유전자, 그리고 싱글셀 분석'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와 의료진에게 차분하게 설명을 들려주는 일 또한 맡기로 했다.
책은 실제 암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겪게 되는 일을 보여주고, 그때그때 환자에게 생겨나는 궁금증을 풀어준다. 물론 암 치료라는 방대한 프로세스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암 유전체 검사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암 발생과 치료 일반에 대한 궁금증부터, 암 유전체 검사와 암 치료법 연구라는 첨단 분야에 대한 설명까지, 꼭 필요한 것들을 다룬다.
싱글셀 분석을 위한 ‘인간 싱글셀 분석 프로젝트(Human Cell Atlas, HCA)’ 소개하면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최신 기술에 대한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 여기에 화학항암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가 암을 치료하는 메커니즘이나 임상 현장에서 각각의 첨단 기술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소개도 더해졌다.
첨단 기술의 개발, 그것의 상용화에 대한 소개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포 1개에 들어 있는 DNA를 연구하는 싱글셀 분석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제안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실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분석 기술이 개발되지 못했다. 가설이 검증되고 다시 현장에 적용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려면, 결국 기술의 발전이 따라와야 한다.
저자가 창업을 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저자는 싱글셀 분석으로 환자에게 최적화된 암 치료제를 찾아내는 진단법을 상용화하는 바이오테크를 창업해 경영하고 있다. 의과학자의 연구와 노력도 결국 상용화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실질적인 암 환자 치료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가설이 과학으로 입증되고, 과학이 임상에서 암 환자를 치료해내려면 언젠가는 거쳐야 할 기업의 상용화 과정에 참여하는 것. 저자가 전하는 암 유전체학과 싱글셀 분석 이야기는 암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 선 의사이면서 과학자이고, 과학자이면서 기업가가 가진 고민을 보여준다.
한편, ‘과학자의 글쓰기 시리즈’는 첨단과학과 정밀의학, 병의 진단과 치료 사이를 연결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프로젝트다. 암 유전체학을 연구하는 의과학자가 여섯 번째로 프로젝트의 배턴을 이어받았다. 의사이자 과학자인 저자는 암과 유전 사이의 오해를 풀고, 암 치료의 첨단의학이 일하는 현장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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