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잇따라 국내 전문병원에서 대리수술 등 정황이 포착됐지만 이들 병원에 대한 전문병원 지정취소 규정이 없어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의료계와 학계는 전문병원 사후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동의하면서도 향후 전문병원 제도 확대를 위해 제도개선과 재정적 지원 등이 절실하다고 제언한다.
전문병원 제도, 사업목표 달성 ‘긍정적’…사후평가 기준은 ‘애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전문병원 지정제도는 전문질환에 대한 비용효과적 의료서비스 제공과 중소병원의 경쟁력 강화, 상급종합병원과 병·의원 사이의 중간 역할을 담당해 지역완결적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시작됐다.
국내 전문병원 지정제도는 2005년부터 3차례 시범사업과 2009년 의료법 개정을 거쳐 2011년 처음 시작됐고 2021년 기준 101개소가 지정돼 제4기 전문병원 제도가 운영 중이다.
현재 전문병원은 분야별로 관절이 20개소, 척추 15개소, 한방 척추 8개소로 주로 근골격계 분야에 전체의 43%가 분포하며 산부인과와 안과가 각각 10개소, 알코올이 9개소, 화상 5개소 등이 지정돼 있다.
전문병원 지정제도는 꾸준한 성과 모니터링을 통해 사업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지난해 연이어 인천과 광주 등 척추전문병원에서 대리수술 정황이 포착되면서 전문병원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해당 병원들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함께 부당행위에 대한 지정취소 등 제재방안이 없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실제로 현행법상 지정취소를 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은 전무한 상태다.
전문병원의 지정 및 평가 등에 관한 규칙 제6조에 따르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지정을 받은 경우나 ▲전문병원 지정을 받은 자가 지정취소를 희망해 지정서를 반납한 경우 ▲재평가 시 지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만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문병원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즉 의료기관이 스스로 지정취소를 희망해 지정서를 반납하거나 시정명령을 내리는 정도가 현재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제재방안인 셈이다.
상대평가 기준은 있지만 실질적 지정 여부 결정 전무
이에 전문가들은 적절한 전문병원 행정처분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전문병원 관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용역을 총괄한 순천향대 함명일 보건행정경영학과 교수도 적절한 사후평가 기준을 통해 전문병원 지정이 제한돼야 한다고 봤다.
함명일 교수는 "현재 기지정된 전문병원에 대해 지정기간 중 발생한 처분이나 부당행위에 대한 제재방안으로서 지정취소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의료법 위반 판결이 확정되거나 지정기준 미충족 유지 및 개선 의지가 없는 경우 전문병원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 무면허 의료행위 등으로 지정 취소된 의료기관은 향후 재지정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병원 지정과 관련한 애매한 상대평가 규정도 문제로 꼽힌다.
전문병원의 지정과 평가 등에 관한 규칙 등 관련 법령과 규정에 따르면 전문병원 지정 관련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기준이 존재한다. 현재 전문병원 상대평가는 ▲총 전문의 1인당 1일 평균 입원환자수(30%) ▲환자구성비율(20%) ▲진료량(20%) ▲의료의 질(30%)을 기준으로 두고 평가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상대평가를 통한 전문병원 지정 여부 결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함 교수는 "상대평가도 전문병원 지정 여부와 관련이 있고 상대평가 기준도 존재하지만 지금까진 이를 통해 전문병원을 탈락시킬 이유가 충분치 않았다"며 "절대평가 기준만 충족하면 지정이 이뤄졌고 (상대평가로 탈락이 이뤄지면) 분야별, 지역별로 추가 지정 등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함 교수는 "지정 시 행정처분 횟수, 처분 수준을 반영해 전문병원 지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상대평가 세부 평가항목으로 행정처분 이력 항목을 신설할 수 있다"며 "별도의 평가항목을 신설해 감산점수로 적용하는 방안과 기존의 상대평가 방법의 평가항목을 추가 적용해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분야 병상 가동률 떨어져 경영 어려움 많아…재정적 지원 필요
사후관리 방안과 더불어 각 병원들의 어려운 상황 등을 고려해 재정적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병원을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재정적 인센티브는 전문병원관리료와 의료질평가지원금이 있다. 그러나 현재 지원금은 환자 수에 의존하는 보상체계로 규모의 경제가 이뤄질 수 있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적정한 보상이 어렵다는 게 현장의 다수 의견이다.
대한전문병원협의회 정재훈 총무위원장은 "전문병원 확대를 위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현재는 의료기관 입장에서 전문병원 지정 메리트가 부족하고 기존 전문병원들도 신청을 할지 망설이고 있다"며 "어떤 알코올 전문병원의 사례를 보면 알코올 환자만 입원시켜야 하다 보니 오히려 병상 가동률이 떨어져 재정적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알코올 전문병원의 경우, 전문병원 지정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알코올 환자가 일반 환자 대비 연평균 66% 이상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즉 5명 중 4명은 알코올 환자만 입원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충분한 환자군이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자칫 일반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해 병상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정 총무위원장은 "병원 입장에서 병상가동률은 떨어지는데 전문병원이기 때문에 인력은 20% 정도 더 고용해야 하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든다"며 "전문병원관리료나 의료질평가지원금에서 급여 환자는 제외되는데 알코올 전문병원은 평균적으로 50%, 많은 곳은 80%가 급여환자다. 이런 병원들은 전문병원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함명일 교수도 "다른 나라도 국가지원 기반의 보건의료 사업은 지원이나 육성이 필요한 분야에 한해 인프라 구축 및 운영 지원, 전담인력 인건비 지원 등의 지원책을 제공하고 있다"며 "육성이 필요한 분야는 재정적 지원을 통해 신규 전문병원의 확장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함 교수는 "구체적으로 지정기준 이외 추가적인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등 인프라 투자나 인력 고용에 따른 인건비 보조, 사업운영비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며 "지원이 필요한 지정 분야나 지역에 대한 정의가 먼저 이뤄져야 하고 대상에 맞는 사업운영비 규모와 재원 마련 세부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척추수술, 할수록 수지타산 안 맞아…“저수가‧과도한 삭감 구조 개선”
전문병원 중에서도 일부 저수가와 삭감이 심각하고 육성이 필요한 과목과 지역을 우선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가 회원 1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95.3%가 의료수가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고 보험삭감이 심하다는 평가도 89.9%에 달했다.
또한 삭감이 의료행위에 미치는 심각성을 묻는 질의에서 척추전문병원 의사의 88%가 심각하다고 밝힌 반면, 종합병원과 의원급은 70%대, 대학병원 의사는 60%대에 그쳤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구성욱 척추신경외과 교수(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기초분과연구위원)는 "척추수술에 대한 수가 불만이 굉장히 큰 상태다. 분만 수가가 적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척추도 마찬가지다. 의사와 어시스트, 의사보조인력 등 많은 인원이 동원되도 수가가 너무 낮다 보니 현시점에선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병원이 많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수술 부위 앞쪽과 뒤쪽 모두에서 병변이 있어 같은 레벨의 수술을 했는데 한쪽만 삭감 당한 경우도 있다"며 "환자에 따라 효과가 없는 보존적 치료이기 때문에 수술을 하려고 해도 보존치료 시간이 부족하다는 산술적 이유로 삭감이 이뤄지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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