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집트 정부의 C형간염 퇴치 성과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게재되면서 전 세계 의학계로부터 찬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대만을 비롯해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C형간염 퇴치를 기치로 내세우고 활발한 활동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C형간염 퇴치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의학계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한간학회를 비롯한 간(肝) 연관 4개 학회(한국간담췌외과학회, 대한간암학회, 대한간이식연구회)가 13~14일 공동으로 주최한 'The Liver Week 2020 Virtual Conference'에서 C형간염 퇴치를 주제로 한 정책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에는 대만의 전 부총통 첸 젠런(Chen, Chien-Jen) 박사를 비롯해 국내외 석학들과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모여 각국의 C형간염 퇴치 정책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정책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C형간염은 만성간염, 간경변증, 간암을 유발하는 중요한 질환으로 예방 백신은 없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효과가 탁월한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단기간의 경구 약물치료를 통해 거의 대부분의 환자에서 완치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환자들을 조기에 찾아내 치료를 한다면 간경변증과 간암으로의 진행도 막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유병률이 낮아도 전 인구 선별검사가 비용효과적이라고 공표했다. WHO는 2030년까지 바이러스 간염을 퇴치하겠다는 계획을 선포했다.
이번 정책포럼에서 첸 전 대만 부총통은 2025년까지 총 25만명의 C형간염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C형간염 퇴치 관련 대만 정부의 정책을 소개했다.
최대한 많은 환자를 빠르게 찾아내어 완치시켜야 정책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인식 하에 대만위생복리부 산하 '대만국가 C형간염 주력 프로젝트 사무실'이라는 전담조직과 전문가단체의 자문을 위한 지도위원회를 설립하고 8년간 510억 대만달러(약 2조 93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C형간염 퇴치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치료가 예방의 선봉이라는 기치로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전방위 선별검사를 통해 감염 사실을 모르는 절반 이상의 만성C형간염 환자를 발견하며 신규 감염과 재감염을 예방하는 3가지 정책적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정책으로 2040년까지 C형간염으로 인한 사망자 5만 6000명 감소(예측된 간질환 사망자가 13만명에서 7만4000명으로 감소), C형간염 합병증 감소로 390억 대만달러(약 1조 5744억원) 절감이라는 성과를 이뤄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첸 전 부총통은 밝혔다.
대만국립대 카오(Kao) 교수는 C형간염 치료 후 간암 위험을 71% 감소시킬 수 있을뿐 아니라 말기신질환, 급성관상동맥질환, 뇌경색, 파킨슨병, 임파선암 또한 감소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C형간염 경구용 치료제인 DAA(Direct Acting Antivirals, 직접 작용 항바이러스제) 치료 후 대만에서는 지난 3년간 9만 8000명을 치료해 98.5%의 완치율을 보였다.
일본의 C형간염 정책도 소개됐다. 일본 국립건강의학센터 칸토(Kanto) 박사에 의하면 일본은 2002년부터 국가적 선별검사를 시작했으며 2008년부터는 선별검사를 무료로 시행하고 있다.
2009년에는 간염 관련 기본법을 제정해 간염 예방 정책을 법적으로 지원했다. 무엇보다 치료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C형간염 치료 비용 대부분은 건강보험과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 하에 환자 부담금은 월 1만에서 2만엔(10만~20만원) 정도로 저렴하다(총 치료기간은 2~3개월).
또 이 심포지엄에서 연세의대 김도영 교수는 국내 C형간염 현황에 대한 분석과 함께 그 동안 학회와 전문가들이 C형간염 퇴치를 위해 기울인 다양한 활동들을 소개했다.
특히 정책적으로 C형간염 국가선별검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수 년간 제안했으나 국내에서는 C형간염 유병률이 5% 미만이고 비용효과분석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국가건강검진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잘 알려진 고위험군이 외국과는 다르고 국토 면적이 좁고 접근성이 높으며 전국민 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치료 의지도 높기 때문에 국가적인 광범위 선별검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의 경우 아직 C형간염 검사나 치료에 있어서 국가적인 정책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2016년 몇몇 의료기관에서 C형간염 집단 감염이 발생해 보건복지부는 2016년 9월 C형간염 예방 및 관리대책을 수립하고 국가건강검진에 C형간염 검사 도입 타당성에 대한 연구용역을 2017년 7월 완료했으나 당시 보고서의 결론이 모호해 C형간염 검사 도입이 정책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연구용역이 진행되던 때만 하더라도 근래 사용하는 C형간염 치료제들이 국내에 막 도입되기 시작하던 시기로 C형간염의 개선된 치료효과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고 현재의 인하된 약가가 반영되지 않아 비용효과분석 등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또 WHO 및 외국 가이드라인에서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환자발굴-치료를 통한 전염 예방이라는 광범위 선별검사 정책(universal screening strategy)도 반영되지 못했다.
따라서 대한간학회는 C형간염 퇴치를 위해 ▲새로 개편되는 질병관리청 내에 C형간염을 포함한 바이러스 간염을 총괄하는 전담부서 신설 ▲C형간염 검진 연구 과제 수행을 위한 예산 확대 배정 ▲C형간염 검사의 국가검진항목 포함에 대한 타당성 분석 연구를 시급히 재수행 ▲만성 B형 및 C형간염과 같은 바이러스 간염을 정책적으로 통합관리 등 4가지 구체적인 정책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한간학회는 이와 별도로 '바이러스간염 퇴치를 위한 대한간학회 특별기획팀'을 구성해 각 부서의 역량을 결집해 바이러스 간염 퇴치를 위한 대정부 정책 제안, 홍보,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와의 협력 등의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그 첫 번째 활동으로 질병관리본부에서 주도하는 'C형간염 환자 조기발견 시범사업'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C형간염 환자 조기발견 시범사업은 9월 1일~10월 31일 실시되며 1964년생(만 56세) 일반건강검진 대상자 중 미수검자를 대상으로 시행된다.
1964년 출생 대상자라면 본인부담금 없이 주거지와 가까운 건강검진 수검기관에 방문해 채혈검사를 하면 된다. 채혈검사에서 C형간염 양성 소견이 나오면 채혈한 기존 혈액으로 확진을 위한 PCR검사까지 진행된다.
대한간학회는 "이 시범사업이 C형간염에 대한 국민 홍보 및 교육의 기회가 됨은 물론 향후 국가검진 도입에 필요한 중요한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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