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아시아에서 의과대학 순위를 보면 연구중심의 동경대학이 가장 앞서 있다. 평가기구 마다 보는 관점이 달라 우수 의과대학에 대한 순위는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기관마다 다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라는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가 복강경과 로봇수술 등 국제적으로 ‘의료 기술’이 앞선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국제적으로 좋은 의과대학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순수 의과대학 보다는 종합대학 순위로 알려진 지명도로 의과대학의 순위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포항공대나 카이스트는 의과대학이 없어 이곳을 제외하면 국내 몇 개 의과대학이 좋은 대학으로 꼽을 수 있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연구실적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학교육이나 의료의 강점을 ‘Content Expert’라고 표현한다. 물론 원어민의 표현이다. 우리나라 의학교육에 대한 외부 전문가에 의한 평가는 지난 1980년대 유일하게 있었다. 60~70년대 우리나라는 산업 불모지로부터 경제 성장을 위해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단계였고, 의과대학 증설도 이 무렵에 힘을 받기 시작했다. 모택동 시절에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 세운 ‘China Medical Board’는 중국에서 일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됐다. 그 대신 중국의 주변국인 한국, 타이완,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 그 반사이익으로 CMB의 지원을 받게 됐다.
이미 고인이 된 CMB의 총재였던 패트릭 옹글리는 아시아지역 지원 국가들을 순방하고 나서 의료와 의학교육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하고 난 뒤 이를 연세의대 학술지에 기고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의학교육에 대한 유일한 외부 평가 자료가 아닌가 생각된다. 옹글리 박사는 “우리나라와 대만은 의료서비스, 의학연구, 그리고 의학교육에서 역량이 부족한 반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은 교수와 병원 서비스 모두 역량이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공교롭게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과 한국은 의학교육의 후진국으로 평가된 것이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CMB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평가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대만, 한국 모두 일본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제국대학이 교육의 중심에 있었다. 미국은 베트남전 참전으로 인해 당시 의사가 턱없이 모자라게 된 자국의 사정을 감안해 많은 수의 외국의대 졸업자를 미국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도 한 해에 졸업생 대부분이 전세기를 빌려 미국으로 이주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우리나라의 의학교육 수준이 매우 높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우리나라 의과대학 졸업생 정도 수준이면 미국의 졸업생과 역량이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진찰방식 교육 없었던 우리나라, 캐나다에서 다시 배운 진찰과 문진의 구조
필자도 미국에서 전공의 과정을 밟기 위한 시험을 준비해 통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했음에도 월남전의 종식과 함께 외국 출신 의사의 진입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험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진입 장벽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시험에 합격하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1980년대에 한동안 지속됐던 악명 높았던 이 시험은 합격률 10% 미만의 ‘Visa Qualifying Examination’으로 명명됐으며 설령, 시험에 합격해도 미국의 좋은 의과대학병원의 인기 과에는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북미에서 전공의 생활을 해본 우리나라 졸업생이 공통적으로 알게 된 사실은 우리나라 의학교육에서 제대로 된 문진과 진찰을 배운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하기야 필자가 입학한 1972년은 입학당시부터 졸업할 때까지 단 한해도 휴교를 거른 적이 없었던 말 그대로 ‘암흑의 시대’였다.
무시무시한 군사정권인 박정희 정권과의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싸움에 실습다운 실습은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시절 대학병원의 모습은 지금의 대학병원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식민지 시절 세워진 낡은 목조건물의 대학과 병원은 학생들이 실습하기에는 너무나 환경이 열악했으며, 공간조차도 너무나 비좁았다. 가난한 시절 교수는 수술 장갑을 사용했으나, 일부 전공의는 목장갑을 끼고 수술을 보조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본과학생이 되자 더 이상 볼 수 없어졌고, 모두가 재활용 고무 수술 장갑을 낄 수 있는 ‘신천지’를 만나게 됐다. 물론 지금은 한번 쓰고 폐기해야 하는 철저한 병원 관리 시스템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예전에 있었던 임상 실습의 풍경을 회상해보면, 고명하신 과장님이 선두에 서서 회진행렬을 이루며 진행했다. 많을 때는 한 대열에 10여명에 이르렀다. 여기에 전공의와 학생들까지 가세하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병실에 들어갈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오래 서있기 훈련’이었고 의미 없는 회진에 환자들도 침상에 가지런히 앉아 ‘거룩하신’ 과장님께 존경심을 표하던 시절이었다.
과장회진은 ‘매우 신성한 일’로써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혹시 무슨 지적이 나오지 않을까 극도로 신경을 썼던 시절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장님의 몇 마디 말씀은 매우 소중한 교육 자료였으며,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귀담아 듣기에 바빴다.
우리에게는 서양의 전통에 따른 ‘임상대화(clinical discourse)’란 들어본 적도 없었고, 체계적인 진찰방식도 배우지 못한 채 필기시험만으로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의업에 나선 것이었다. 필자를 지켜본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온 전공의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며 웃음 띤 얼굴로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공손하면서 좀처럼 질문을 하지 않고, 기초적인 진찰소견과 문진소견이 구조적이지 않고,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교수의 친절한 설명도 곁들여졌다. 그러면서 한 달 내 이 문제를 개선해보라고 ‘미소 띤 압박’으로 과제를 부여받았다.
지도 교수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면 불구하고 캐나다 인턴들이 수행했던 기초 입원절차를 배우고 진찰과 문진의 구조를 다시 익혔다. 군의관을 거쳐 인턴 시절에 한 번도 스스로 환자처치에 대한 명령서를 작성해 본적도 없어 당시 본과 3학년이면 처치명령을 내고 전공의의 서명을 받아 확인을 받으면 정식 처치명령으로 간주되던 토론토에서 나의 무경험은 전공의교육 프로그램 디렉터를 크게 감동(?)시켰다.
우리나라의 의과대학 임상교육은 아직도 개선할 여지가 많다. 임상실습교육 개선을 위해 의사국가시험에 실기시험을 도입해 적용한 지도 세월이 꽤 흘렀다. 그러나 도입초기에 우려한 실기시험의 시기문제는 우려한대로 실습을 위한 준비교육으로 코칭을 해주는 교육으로 변질됐고 장기간 실기시험 기간으로 한 학기 정도는 충실한 임상실습이 아닌 ‘시간 낭비 형 교육’으로 바뀌게 됐다.
인턴제가 있음에도 실기시험을 의과대학 졸업시점으로 필기시험과 동시에 시행하는 이유는 ‘면허법’을 고쳐야 하는 귀찮음과 번거로움 그리고 새로운 시험의 도입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이상적인 실기시험은 별도의 실기 코칭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실습교육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역량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실기시험은 아직도 절반의 성공에 머물러 있다.
홍콩의대 교육, 외부 평가자로부터 정교하고 분석적으로 평가
필자는 홍콩대학이 야심차게 도입하는 새로운 교육과정으로 시작하는 첫학년의 진급시험을 필두로 해서 이제 2학년이 된 학생을 대상으로 진급시험에 대한 외부평가자로 위촉받아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홍콩을 방문하게 됐다. 작년 1학년 때나 지금의 2학년 모두 다지선다형, 단답형, 임상사례 그리고 OSCA(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Assessment)를 시행했다.
강의와 문제바탕 학습 그리고 실기와 인문교육의 병행을 추구하는 새로운 교육과정 첫해의 진급시험 문제는 우리나라 예과 1년 학생과는 비교불가능 상태로 멀리 앞서 나감을 체험적으로 알게 됐다. 홍콩 의과대학 1학년 학생의 시험문제를 보고 우리나라 의사 국시 문제로 착각 할 뻔했던 것이다. OSCA에서 측정하는 엄격하고 정밀한 진찰술기를 보면서 시대가 발전하며 진찰술기도 발전하는 느낌을 받았고, 의료 패턴도 나라마다 다르듯이 진찰술기도 ‘영국식 진찰술기’를 도입해 매우 정교하면서 분석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됐다.
아마도 홍콩대학 1, 2학년의 시험문제를 보여주면 우리나라 의과대학 학장단은 이 시험이 졸업시험이나 국가시험용 모의고사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통합교육의 사례는 3학년 전체과정을 학생 스스로 설계하도록 하는 ‘자유학년제’도 만들어 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학생들을 놀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할 텐데 대부분의 학생이 국외로 나가 1년의 수업을 받음으로써 기존 2학년 과정의 학점을 인정받아 우선 학사자격을 취득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 의과대학의 학년 진급시험을 위해 학년마다 담당 교수를 외국에서 초빙해 학생들이 4학년 과정을 마칠 때 까지 동일 평가자에 의해 추적하도록 하는 제도도 놀랍지만, 이들이 만들어 내는 시험 문제도 형태나 구성 모두가 고 부담 시험인 국가고시의 정밀함과 동일하여 더욱 놀랐다. 시험 종료 후 시험에 대한 평가회를 개최하는데 모든 시험문제는 출제자의 ID가 표기돼 있고 문항에 대한 학생의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이를 모아 평가회에서 재검토를 적용하고 있었다.
즉 시험 문항에서 발생한 문제인지, 아니면 학생의 학습 문제인지 또는 교수의 교육에서 오는 문제인지를 냉철하게 검토하고 토론해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담당교수의 소명도 듣고 문제 자체의 문제라고 판단되면 시험문항을 개선시키도록 하거나 폐기하는 절차를 갖고 있었다.
외부평가자의 임무 중의 하나는 학생대표를 만나 학생들이 경험한 시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학교에 전달하는 것이다. 진급시험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한 해 동안 배운 모든 교육일정과 자료가 평가자에게 제공되고 시험 답안지의 10%가 외부평가자에게 샘플로 제공된다. 외부평가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주일이다. 우리의 예과 1학년부터 강도 높은 교육에 모두 매우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홍콩대학이 보여주는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학생교육에 대한 규범을 우리나라에서도 적용하고 있는 대학이 과연 있을지 궁금해진다. 설령, 우리나라도 문항에 대한 시험 후 검토 작업을 하더라도 질적으로는 다른 형태일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홍콩대학의 경우 진급시험 전체에 대한 종합평가를 외국에서 외부평가자를 초빙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하게 한 후, 학장의 마지막 질문에서 평가자가 경험한 다른 나라의 시험에 비해 그 수준이 어떠한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같은 평가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의과대학을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다. 세계 최고의 기술도 알고 보면 ‘Content Expert’를 의미한다. 1차 의료가 제대로 발달할 수 없는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는 의과대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병력채집과 진단술기 교육만 관찰해도 그 이유를 알 만하다.
옹글리 박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와 대만의 식민 일본식 서양의학교육의 미숙함은 아직도 극복해야할 교육적 문제가 곳곳에 남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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