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센터 지원한다고 외상환자 살릴 수 없어
같이 일할 외과의사 없고 외상센터는 적자만 누적
최소한의 휴식·적절한 연봉 등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힘들다. 너무 지쳤다. 이제 좀 쉬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외상센터는 안 된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는 외상센터 지원이 필요하다는 대국민 청원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한 소감을 묻는 메디게이트뉴스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대국민 청원은 30일간 20만명이 넘으면 청와대가 직접 답변을 제시한다. '외상센터(이국종 교수)의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인력 지원' 청원건은 17일에 시작해 일주일만인 24일 오전 9시 현재 16만건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 교수는 외상센터 지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외상센터를 지원하면 특정 병원이 지원금을 받지만 그 속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같이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집에 갈 수 있는 날이 손에 꼽힌다”며 “이들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외상센터에 입원한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외상외과 5명 외에 응급의학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10여명의 의료진과 20여명의 전문간호사로 구성된다. 외상 전담 전문의는 365일 24시간 대기한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이 교수가 밤을 새가면서 여러건의 수술을 맡기도 한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지난해 1년간 외상 환자를 수술한 건수는 2422건이었고 헬기 이송건수는 166건에 달했다.
이 교수는 “한 쪽 눈은 망막신경 이상으로 보이지 않고 무릎에 물이 차고 어깨도 부러져 너무 힘들다”라며 “갈수록 체력이 달려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수술건수가 줄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먹고 살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외상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다”며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 한국에선 외상센터가 안 된다”고 말했다.
외과의사 부족…미국은 외과의사 연봉이 내과의사의 2배
이국종 교수가 힘든 이유는 우선 같이 일할 외과 의사들이 없다는 것이다. 외상센터에서 주 7일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려면 충분한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외과 지원율 자체가 낮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2017년 외과 지원율은 0.83대 1(172명 모집에 142명 지원)이었다. 이는 2016년 0.64대 1(197명 모집에 126명 지원)에서 늘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치다.
전공의들은 힘들게 일해도 외과의사의 수입이 다른 진료과와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5년 한국의 직업정보'를 보면 외과의사 연봉은 9052만원으로 내과의사 1억227만원보다 적었다. 연봉이 가장 높은 진료과는 안과(1억720만원)에 이어 정신건강의학과(9721만원), 성형외과(9243만원) 등이었다.
미국 취업사이트 커리어캐스트 조사결과 2015년 기준 미국 외과의사 연봉은 35만2000달러로 내과의사(18만 달러)의 2배가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 일이 힘들고 생명을 살린다는 측면에서 적절한 보상이 뒤따르는 것이다.
외과를 선택하는 전공의도 대부분 암(癌) 등 수술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분야에 몰리고 외상외과에 지원하는 인력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국 16곳의 권역외상센터에서 외상센터 전문의 인력 기준 20명을 채운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 교수는 “외상센터는 사람들이 퇴근한 다음 밤에 긴급한 수술이 시작되는 일이 많다”라며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자는 시대에 외상센터에 지원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시대를 역행한다”고 했다.
복지부는 외상센터 전문의 인건비로 1억2000만원을 지원하지만 병원간 노동강도에 따라 체감하는 편차가 컸다. 일부 환자가 저조한 외상센터는 다른 질환을 진료하는데 이 인건비가 보조되기도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일부 병원 외상센터는 연간 수술건수가 10건도 되지 않았다"라며 "그러다 보니 외상센터 의료진이 외상환자에 대비하지 못하고 가벼운 질환 환자를 진료하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상급종합병원 순이익률 -0.3%, 이득 되는 곳에만 투자
병원은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충분한 인력을 뽑거나 그만큼의 처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에 있는 병원은 미국이나 유럽권 병원과 비교하면 직원을 3분의 1 밖에 고용하지 않는다”라며 “외상센터의 처우가 좋은 것도 아닌 만큼 의사와 간호사들이 너무 힘들어서 계속 그만둔다”고 말했다.
복지부의 2015년 병원경영 분석 자료를 보면 중증 환자를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의 의료수익 순이익률(입원·외래 진료로 얻은 순이익률)은 -0.3%에 그쳤다. 이들 병원은 장례식장이나 임대사업 등의 부대사업으로 순이익률을 겨우 1~2% 정도로 끌어올고 있었다.
특히 외과는 원가 이하의 의료수가를 가지고 있어 병원이 투자하기 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제2차 상대가치 추진계획을 통해 수술의 원가보상률을 76%에서 90%까지 끌어올린다고 밝혔다. 수술 수가인상은 3027억원을 투입해 올해 7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 수가는 다른 진료과에 분산되는 만큼 외상센터에 체감되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했다.
복지부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상센터에 투자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 이후 전국 16곳의 권역외상센터를 선정했다. 이중 현재 9곳이 운영하고 있다. 특정 병원이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되면 시설·장비 구매비로 복지부로부터 80억원을 받고 연차별 운영비로 7억~27억원을 지원 받는다.
이 교수는 외상센터가 복지부의 지원을 받아도 병원에선 찬밥 신세라고 했다. 이 교수는 "암 수술을 하는 외과는 외상외과보다 수술 인센티브가 10배 이상 많다”며 “병원의 인센티브 시스템만 봐도 생사(生死)를 가르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데 대한 고충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력 키우기 어려운 구조…수련기관 2곳 환경 열악
외상센터의 운영 효과는 눈으로 증명되고 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중증 환자가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전국 평균 6.7시간이지만 권역외상센터는 1.5시간에 그쳤다. 환자 도착과 동시에 전문의 진료가 시작되는 시스템 대기시간은 0시간이었다. 외상센터에 온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다른 병원으로 보낸 일도 한 건도 없었다.
아주대병원은 "권역외상센터 설립 당시 중증외상 예방가능 사망률을 2010년 35.2%에서 2020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1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라며 "개소 이후 현재까지 예방가능 사망률 9.0%로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이 교수는 사람을 키워내지 못하는 외상센터의 전망이 부정적이라고 했다. 당초 정부는 4000억의 예산을 투입해 전국적인 외상센터 3~4곳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여기서 외상외과 세부전문의도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산이 반으로 줄어들고 전국 센터에 지원금이 쪼개졌다. 이 교수는 "병원은 외상외과 전문의 채용 자체에 허덕이고 외상센터 전문인력을 키우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고 했다.
외상외과 의사를 수련하는 시스템도 열악하다. 복지부는 외상외과 세부전문의 배출을 위해 외상 수련센터 2곳을 지정해 매년 9~10억원을 지원한다. 여기서 수련을 마친 외상외과 전담전문의는 권역외상센터로 배치된다. 복지위 김상희 의원은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고난이도 중증 외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수련하는 수련병원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라며 “현재 수련병원으로 지정된 2곳의 외상수련병원은 1년 동안 중증외상환자를 각각 170명, 130명을 진료한 것이 전부이며 여기서 일하는 의사는 제대로 수련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료비 삭감 또 삭감…연간 적자 10억원의 성적표
외과의사의 사명감으로 일하더라도 삭감이 되는 것도 어려운 요인이 되고 있다. 이 교수는 “병원에서 유명해졌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지만 정작 병원에는 연간 10억원이 넘는 적자를 안긴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아주대 교수회 소식지 '탁류청론'에 낸 기고문을 통해 삭감에 대해 자세하게 썼다. 복지부는 의료 행위나 약제에 대해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급여 기준을 정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병원이 그 기준을 따르는지 확인한다. 이 교수는 "심평원은 보험 기준에 맞춰 진료가 됐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조사했다”라며 “사경을 헤매는 환자의 필수적인 치료를 줄일 수 없었지만 매번 심평원의 삭감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 교수는 “원칙대로 환자를 처치했고 써야 할 약품과 기기를 썼다. 수술은 필요한 만큼 했다. 숨이 끊기고 쓰러지는 환자를 막으려고 애썼다”라며 “중증 외상환자들은 계약직이나 하청 노동자들이었고 심평원의 심사 기준을 초과한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본인은)교수별 진료실적에 기반을 둔 ABC 원가분석에서 연간 10억원의 적자를 만드는 원흉이 됐다”며 “매출액 대비 1~2% 수익규모만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사립대병원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불러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외상외과의 필요성을 말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 10년여간 “한국에서는 외상을 하기가 힘들다”고 말하고 또 말했다. 그는 “외상센터 의사가 사명감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시스템으로 외상센터의 적자를 보전해야 한다”라며 “외상센터에 충분한 의사를 고용하면서 전담의사를 키워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취지는 이렇게 쓰여있다. “형편없는 의료수가 문제가 수없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만으로 문제점이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의대생들은 어쩔 수 없이 사명감과 경제력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외상센터 의사들이 환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치료할 수 있게, 하루에 한 번은 잠을 잘 수 있게, 최소한의 보편적인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사명감을 지킬 수 있기를 진심으로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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