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표준 진료 가이드라인과 맞지 않는 한국만의 '특수한' 보험급여 기준 때문에 투여가 시급한 다발골수종 신약이 심사평가원의 보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다발골수종연구회 소속 전문의들은 대체약제가 없는 다발골수종 신약 '포말리스트'의 보험 적용 시급성을 피력하기 위해 조만간 심평원과 회의를 가질 방침이다.
2014년 8월 국내 허가받은 '포말리스트(성분명 포말리도마이드)'는 더 이상 쓸 약이 없는 환자를 위한 유일한 3차 약제다.
제조사인 세엘진은 이 약의 ▲보험 적용이 시급하고 ▲한달에 수 백만원 상당의 고가 약제라는 점을 감안, 전 세계 최저가보다 낮은 약가(표시가격)로 '위험분담계약제'를 통해 보험을 신청했다.
그럼에도 이 약제는 2년 가까이 심평원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국내 보험급여 기준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표현에 따르면, 국내 다발골수종 보험급여 기준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팍팍하다.
다발골수종의 글로벌 진료지침은 '안정상태(stable disease, SD)'를 치료효과의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
또 국내 고형암 및 악성림프종 역시 2~3주기마다 반응 평가를 했을 때 '안정상태'를 유지하면 약제의 지속적인 사용을 인정하지만, 유독 국내 다발골수종은 4주기 투여 시까지 '최소관해(Minimal response, MR)'에 도달하지 못하면 더 이상 약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그나마 이것도 작년 10월에서야 '부분관해(partial response, PR) 이상'에서 '최소관해 이상'으로 확대했다.
'포말리스트'를 포함해 '카필조밉', '파노비노스타트' 등 조만간 나올 신약들이 이러한 국내 급여기준을 맞출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 신약은 모두 글로벌 진료지침대로 '안정상태'를 효과의 지표로 삼아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심평원은 "임상 디자인이 국내 급여기준과 맞지 않아 경제성평가에서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기 힘들다"며 '안정상태' 환자를 제외한 보정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김진석 교수는 "임상시험을 다시 할 수도 없는데 보정데이터를 내놓으라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국내 보험기준 자체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쓰지않는 기준이라 계속 꼬이는 것인데, 정부는 뚜렷한 근거없이 기준을 그렇게 설정해 놓고 신약에 대해 국내에 맞는 데이터를 요구하면 누가 한국만을 위한 데이터를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의사들도 국내 보험재정이 부족하다는 것을 감안해 작년 보험기준을 확대할 때 '최소관해'로 양보한 것"이라며 "그렇다면 심평원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한국만의 문제 때문에 제약사가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하는 것을 이유로 치료가 지연되는 것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민창기 교수 역시 "'포말리스트'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이미 질병이 많이 진행 된, 내성 환자라 약제라 질병을 안정만 시켜도 상당한 혜택"이라며 "심평원이 상당히 무리한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선 보험을 적용하고, 사후관리 방안을 활용해 신약의 불확실성과 재정 부담을 관리하자는 게 이들의 제안이다.
김 교수는 "지금은 기존 논문들을 해석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최대한 빨리 보험적용 해야 할 때"라며 "예상보다 포말리스트로 인한 재정부담이 너무 크면 그 때 사후관리 방안을 작동시키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심평원은 고통스러워 하는 환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어 보인다"면서 "근거부족을 이유로 보험 적용 안하면 그만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떠안는다"고 환기시켰다.
이에 대해 심평원 약제등재부 관계자는 "심평원 역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이 약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은데, 어떻게든 이번 재평가 기한 내에 평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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