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12.13 01:01최종 업데이트 21.12.13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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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명감’으로 굴러가던 필수과의 예상됐던 붕괴

2022년 전공의 모집 결과, 필수과 한계 경고음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든 수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지난해 초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쏟아져나왔다. 당시 대구시의사회 이성구 회장의 SOS에 전국 각지에 의사들은 한달음에 대구로 달려갔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최고조였던 당시, 그들을 움직인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이었다. 정부는 그런 의사들에게 ‘덕분에’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와 여당은 공공의대 설립,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내놓으며 의료계를 아연실색케 했다. 의사들은 정부∙여당의 정책에 반대하며 가운을 벗고 거리로 나서야 했다.

그 와중에도 의사들은 환자의 곁을 매몰차게 떠나지는 못했다. 일부 전공의들은 파업 참여 중임에도 틈이 날 때마다 병원을 찾아 환자의 상태를 살피거나 수술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역시 의사로서 ‘사명감’ 때문이었다.

이 같은 의사들의 ‘사명감’은 그간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무리없이 굴러오게 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특히 저수가 문제와 의료사고 위험 등이 상존하는 필수과의 경우가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의사들의 ‘사명감’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언젠가는 유효기간이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게 자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간 필수과 전공의들의 중도 이탈이 이어지고, 지원자 수도 점차 줄어들며 현행 방식의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지난 8일 마감된 2022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는 이 같은 우려가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줬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될 아이들과 청소년을 진료하는 소아청소년과는 지원자가 아예 없는 병원들이 다수였다. 수술실 CCTV 의무화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조치에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된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도 지난해 대비 충원률이 크게 떨어졌다.

현장의 반응은 ‘분노’를 넘어 ‘체념’에 가까웠다. 3년제 전환, 수련교육 내실화 등 필수과들은 학회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 동원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예상된 결과였다. 정부는 그간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과들이 위기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저수가 등 근본적 문제 해결에는 인색했다.

지난한 과정이 예상되는 수가 인상의 길을 택하는 대신 의사들이 ‘사명감’이라는 굴레를 쉽게 벗어던지지 못할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 속에 생색내기 수준의 미봉책만 내놓기에 급급했다. 결국 필수과는 전공의 지원자 수가 급감했고, 정부와 여당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실제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에 있었던 2018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와 비교하면 필수과의 붕괴 속도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2018년도 전공의 모집에서 전공의 충원률이 80%를 넘었던 외과와 산부인과는 2022년도 모집에선 60% 초반대를 기록했다. 57%를 기록했던 흉부외과도 30%대로 추락했다.

정원을 100% 채웠던 소아청소년과는 23%로 4분의 1 토막이 났다. 후기 모집이 남아있단 점을 감안해도 감소세가 지나치게 가파른 상황이다. 그나마 90% 중반대의 충원율을 보였던 내과만이 유일하게 지원자가 늘어 모집인원보다 지원자 수가 많았다.

하지만 이처럼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근본적 해결책은 외면한 채 공공의대와 의대정원 확대 카드를 고집하고 있다. 의사들의 ‘사명감’만으로 필수의료의 명맥이 이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수가 등 지원을 확대하는 대신 의사 수를 늘리고 지역에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들을 강제로라도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그 편이 지역구 주민들의 '표'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신설된 의대에서 나오는 의사들이 배출되는 수년 뒤까지 필수의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강제적 방식의 필수의료 확대는 지속가능성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부디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현장이 체감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 내년 이맘 때에는 올해와 판이 달라진 전공의 지원율을 전달할 수 있길 바래본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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