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실수는 교정 후 새로운 프로토콜을 남긴다.
메르스 확산이 아직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미디어에선 슬슬 이번 사태의 의미를 찾고 해결책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민의 결과가 과거의 대응방식처럼, 진단 기록지에 몇 가지 항목만 부랴부랴 보태져 전공의들이 새로운 챠트에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이 나올까 우려스럽다.
드문 풍토병 환자들,
의사에게도 낯선 바이러스 질환들
알고 있던 것을 유지하고, 새로운 의학 지식을 갱신하는 게 의사의 의무다.
하지만 종합병원 수련을 마치고 개원의나 봉직의가 되면, 다양한 환자를 접하기가 힘들어 새로운 지식 습득에 둔감해진다.
전문의와 대형병원을 선호해 그쪽에만 환자들이 몰리는 국내 의료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련 병원에서도 자주 접하지 못했던 질환과 유사 증상을 가진 환자가 방문하면, 의사는 의심 가는 질환의 자료를 찾아 기억을 살린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나 동남아 오지를 다녀온 환자가 고열을 호소하면 뎅기열(Dengue Fever)이나 말라리라(Malaria)를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는다.
말라리아 모기가 분명히 몇 종류 있었던 것 같고, 지역별로 다른 모기였던 것도 같은데 생각이 안 난다.
의사는 '환자에게 티가 나지 않게' 정보를 찾아내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이미 진단과 치료가 명확하게 알려진 풍토병도 이런데,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던 신종 바이러스 질환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의사에게 생소하다.
물론 개원가로 진출해도 새로운 의학 소식을 빠르게 접하고, 지식 갱신에 능숙한 의사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의사도 상당수다.
'분발하지 않은' 의사들 책임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질환의 조기 감지를 위한 다양한 장치가 고안돼야 한다.
새로운 질환, 특히 전염되면 문제가 커지는 질환은 관련 정보를 의료기관에 빠르게 전파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국내엔 이미 EMR(전자 의료 챠트)이 소규모의 의원까지 보편화해 있다.
국가에서 의지만 있다면 EMR서비스 회사와 협업해 의사에게 정보를 쉽게 전파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된 것이다.
꼭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바이러스 혹은 그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바이러스와 관련한 새로운 질환 역시 언젠가는 출현할 것이다.
치사율이 높고 전염성이 더 강한 질환이 국내로 유입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질환은 초기 환자의 빠른 감지가 중요한 만큼, 바이러스 감지를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법은 전부 동원해야 한다.
DUR(의약품 안심 서비스)에 이용하는 알람을 응용하면, 소홀하기 쉬운 질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챠트의 알람 서비스를 DUR(의약품 안심 서비스) 같은 곳에만 쓰지 말고, 의사가 기록한 증상이나 질환명에 맞춰 응용한다면 조기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 정보 유출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여행지', '귀국 시각과 잠복기 관계', '환자 증상'을 고려해 감염 가능성이 큰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면 득이 클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행지 정보는 문진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지만 꼭 물어야만 얻을 수 있고, 여러 변수로 정확한 대답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기본적인 의료정책만 잘 유지해 사회적 비용만 줄여도, 젊은 의사 해외로 보내 푼돈 벌 궁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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