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의료과실 아닌 경우 불기소 놓고…환자 "환자 보호 우선" vs 의사 "필수의료 기피 해소 가능"
환자단체 "의료과실 기소율 진짜 높나?…의대생·전공의 복귀 앞세워 의료사고 면책 받으려는 것 아니냐" 비판
의료계 "해외와 비교해 형사 기소율 지나치게 높아…사법 리스크로 필수의료 외면, 대책 마련돼야"
6일 열린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 전경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필수의료 기피의 원인인 사법 리스크 감소를 위해 정부가 중대 과실 중심의 기소체계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환자·법조계와 의료계 간의 찬반 격돌이 이뤄졌다.
환자 측은 해당 제도가 실행될 경우 불기소가 남발돼 환자를 보호할 수 없다며 의료사고 설명 의무화, 입증 책임전환 등의 제도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당장 고사 상태에 처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사법 리스크 완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6일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이같은 논의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환자단체연합회 이은영 이사,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장
환자·시민단체, 의료인 사과, 유감, 설명 없어 형사 고소 증가…"형사처벌 특례 절대 반대"
환자단체연합회 이은영 이사는 본격적 토론에 앞서 의사 기소 건수가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는 "대한의사협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754.8건의 의사 기소가 있어 매일 3명의 의사가 업무상 과실 치사상죄로 기소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연평균 의사 기소 건수는 3~40%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계속 제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사고안전망전문위가 형사정책연구원에 이달 말까지 연도별 의사의 업무치사상죄 고소건수, 법원의 형사재판 결과 등을 조사하는 연구용역을 추진했다"며 "이것이 공개되면 의료계가 주장하는 과도한 사법리스크 사실 여부가 확인 될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고 하면 의료계가 주장하는 의료사고형사처벌특례 도입 요구의 논리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사고 피해자도 의료인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의료 과실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의료인이 고의가 아닌 실수로 환자에게 상해를 입혔거나 사망한 경우, 의료인이 먼저 의료사고 내용의 경위에 대해 설명하거나 사과, 유감, 애도의 표시를 했다면 혹은 동일 또는 유사 사건에 대해 의료 사고 예방을 약속하고 적정한 피해 배상을 신속하게 진행했다면 상당수의 피해자와 유족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료 사고가 발생한 후 의료진에게 이런 것들을 기대하기란 매우 힘든 상황이다. 대신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은 중상해를 입거나 가족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로부터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한 채 수년째 걸친 소송에서 막대한 소송비 부담으로 울분을 토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이에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은 용서와 화해보다는 형사 고소와 소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환자단체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통해 중대한 과실이 아닌 경우 불기소 처분을 확대하는 정책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이사는 "이는 의료사고 책임을 지나치게 완화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크게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고 본다. 더욱이 의료사고심의위가 필수의료 여부와 중대 과실 유무를 판단하는 기구로 도입된다면 사실상 불기소 처분이 남발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형사처벌 특례를 도입하기 전에 의료사고 피해자가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사고 설명 의무화, 피해자 트라우마센터 설치, 입증 책임 부담완화, 의료분쟁 감정 제도 개혁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환자단체 측 청중은 "의대생, 전공의 복귀를 앞세워서 교수들이 의료사고 면책을 받으려고 중대사고 불기소를 요구하는 것 아니냐"며 "지난 한 해 의료대란으로 환자가 3000명이 죽었다. 정부와 의료계가 보상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송기민 보건의료위원장(한양대 디지털융합학과 교수) 역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송 위원장은 "해당 법안에는 책임보험이라는 용어가 계속 나오는데 이것은 자동차 보험에서만 쓰는 용어다. 그런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이미 위헌 판결을 받았고, 교통사고처리법의 핵심인 입증책임 전환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이 내용을 가지고 오려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건강보험에는 상대가치 점수 체계가 있고, 거기에는 의사의 업무량과 진료 비용, 위험도 세 가지를 갖고 상대가치 점수를 산정하고 있다. 이미 위험도에 대한 점수가 들어가 있어 수가로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라며 "그런데 의사에게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보험료를 정부가 지급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중 지급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전환해 줄 것, 의료 감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여 줄 것, 그레이존에 대한 공적 배상 책임을 강화해 줄 것, 의료사고의 불합리한 수사 절차를 개선해 줄 것 등 4가지를 주장했다.
법조계, "형사법 안에서 의료사고 다뤄져야…의료사고 형사특례법 반대"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황만성 교수는 "의료사고 역시 형사법의 기본적인 원칙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형사 사건에서 기본 원칙을 준수하되 그 범위 안에서 환자와 의료인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보건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며 형사특례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황 교수는 "명백한 중대 과실은 당연히 형사처벌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전형적인 과실 반복, 중대한 결과를 예견함에도 불구하고 강행함으로 인한 과실 등 애매한 과실이 있다. 이 경우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서 중과실의 유형을 더 세분화하고 구체화해 수사 과정 또는 재판 과정에서 중과실 판단의 중요한 근거 자료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음 법률사무소 유현정 대표는 의료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료사고안전망 강화 정책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유 대표는 "의료사고 손해배상 접수 건수는 최근들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 1101건으로 정점을 찍고 2014년 약 900건에서 2021년 853건, 2022년 768건, 2023년 768건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분쟁해결 제도의 영향도 있겠지만 의료소송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진행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 대표는 "의료사고 예방을 강화하고 소통을 활성화하자는 데 찬성한다. 그러나 병원에는 환자케어에도 인력이 부족하다. 누가 사고를 환자에게 설명하고 상담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흐지부지 해 질 가능성이 있기에 이 부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환자에게는 환자 대변인 제도를 신설하고, 의료인에게는 전문 상담 지원을 하겠다고 하는데 대변인 제도는 대변인을 변호사가 하지 않는 이상 변호사법 위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환자도 의료인처럼 전문상담을 지원하는 것을 확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 대표 역시 "형사특례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고 본다. 일본도 지침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 특례를 적용할 지 여부를 법으로 정하면 그것이 하나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논란이 발생할 것이고, 그 특례를 적용한 다음 범위나 기준 등이 불분명하고 어려워 불안함이 크다"고 비판했다.
인제대 일산백병원 이성순 교수
의료계, "의료사고 형사 기소율 해외와 비교해 지나치게 높아…의료사고 보상도 국가가 해야"
반면 의료계는 의료사고로 인한 사법 리스크가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는 것은 사실이라며, 필수의료 인력 확충를 위해서도 고의가 아닌 경우 중대 과실 의료사고 중심으로 형사 기소를 하는 체계가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제대 일산백병원 이성순 교수는 먼저 환자단체와 법조계가 의료사고가 많다는 의료계 주장에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검찰청 의료 업무상 과실 치사상 기소 건수를 들어 반박했다.
이 교수는 "검찰청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1년 데이터에 따르면 의료 업무상 과실 치사상 기소 건수는 약 780여 건 정도 된다. 그중 1심, 2심 대법원에서 1년 내 확정 판결이 나는 건수가 30건 정도다. 검찰과 경찰이 기소를 하더라도 실제로 불기소되거나 분쟁조정위원회 합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확실치 않다"며 "문제는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해외는 1년에 형사 기소 건수가 3~4건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500건이라고 잡더라도 심하게 높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대목동 신생아 사건으로 소아청소년과 특히 신생아 중환자실 의사가 사라지고, 응급실 사망 사건 등으로 응급의학 의료진을 검찰이 무더기로 기소하면서 응급의학과 의사가 사라지는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고양시 인구가 100만이 넘는데 신생아중환자실이 다 사라지고 한 군데 남았다"며 "응급의학과 의사들도 교도소 담장에 서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의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사법리스크의 피해는 의사도 입겠지만 결국 환자인 국민들이 입는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물론 환자가 피해를 본 부분에 대해서는 민사 소송을 통해 충분한 보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사는 다르다. 형사 기소가 되면 의사는 범죄자나 피의자로 45시간씩 2~3차례 조사를 받는다. 이것만해도 큰 부담이 되기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이런 차원에서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과실 여부의 중증도를 파악해 기소를 할지 걸러주면 불필요한 사법 절차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전 국민이 강제로 가입돼 있다. 모든 병의원도 강제로 환자를 진료하도록 복지부에서 지정한 속박 안에서 진료하고 있다. 보험료 재원을 걷는 것도 국가이고, 지급도 국가에서 하기 때문이 성형, 피부 등 미용 분야를 빼면 모든 의료가 공공의료라고 생각한다"며 "모든 행위가 공공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배상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공공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다만 의료진에게 사과를 강제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의사 입장에서 과잉입법이라는 생각도 든다"며 반대 의견을 표했다.
이날 서울의대 소아청소년과 강희경 교수도 참관해 "의료사고에서는 의료진도 피해자이다. 단순 과실로 형사처벌을 한다면 누가 의사를 하겠나"라며 "일각에서는 의료사태 때문에 이런 논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이 논의는 필수의료 지역의료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해외에서는 의료사고로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 의사가 떠난 이유는 의사를 가해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설명을 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하는데, 의사들은 시간이 없다. 환자를 너무 많이 봐야 하기 때문이다"라며 단순 과실을 형사 처벌 하는 것은 단 한 건도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는 형법 체계가 아닌 면허관리를 통해서 관리돼야 한다"며 "의료사고 보상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서구의사회 조용진 회장도 청중석에서 "의사도 사람이다. 너무 잘 하고 싶고, 사람을 살리고 싶지만 불가피하게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 그 의사를 처벌하면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비슷한 환자를 포기할 것이다"라며 "의사들은 두렵다. 수술방에 CCTV가 달려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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