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새로운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됩니다. 강제입원 절차 전면 개선,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 치료와 복지증진…가족, 의료인, 지역사회가 함께 합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20년 만에 정신보건법을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전면 개정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법 시행 이전부터 우려했던 게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위기다.
모 정신병원에서 근무중인 정신과 전문의 A씨는 8일 "입원 심사를 받아야 할 정신질환자는 넘쳐나는데 이를 진단해야 할 전문의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그러다보니 벌써부터 꼼수, 짬짜미가 판을 치고, 지자체와 보건소에서 이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정 법의 핵심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보호입원, 강제입원)을 할 때에는 최초 입원한 후 2주 안에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정신과 전문의 2명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계속입원을 하도록 한 점이다.
2명의 전문의 중 1명은 국립‧공립 정신의료기관이나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전문의(지정진단의료기관 소속 전문의)여야 한다.
현재 입원중인 환자들을 3개월 후 입원 연장하기 위해서도 서로 다른 정신병원 소속 전문의 2인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한다.
특히 법 시행 이전에 입원한 환자들은 이 달 29일까지 타 병원 소속 전문의 2인으로부터 입원연장 심사를 받아야 한다.
복지부는 최초 입원, 계속 입원 진단건수가 연간 약 13만건 가량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A씨는 "일부 보건소에서 정신의료기관을 1대1로 연결, 정신과 전문의를 서로 파견해 입원 여부를 심사하도록 일종의 짬짜미를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진단을 받아야 할 환자는 많고, 의사는 부족하다보니 환자 인권을 보호하자는 법의 취지가 무색하게 편법으로 매칭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입원심사가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신과 전문의 B씨는 "2명의 전문의 한 팀이 오전에 20명을 심사하도록 한 정신의료기관도 있다"면서 "이렇게 할 경우 실제 심사 시간이 환자당 10분 정도에 불과해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면서 "법 시행 이전부터 이런 문제를 지적했지만 복지부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봉직의협회는 최소 40분에서 1시간을 적정 진단시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현 상황에서 40분 이상 진단하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복지부가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을 밀어붙이니까 보건소는 병원과 병원을 1대1로 매칭시켜서라도 진단대기 환자를 처리할 수밖에 없고, 퇴원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인프라는 거의 전무하다"면서 "이런 게 현실인데 입원이 필요한지 엄정하게 진달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신과 전문의 C씨는 "이달 29일까지 기존 입원환자의 계속입원 여부를 심사해야 하기 때문에 진단업무가 일시적으로 급증하지만 그렇다고 7월 이후 이런 졸속 진단이 개선될 여지는 희박하다"면서 "이미 계속입원 심사를 피하기 위해 자의입원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법조문을 바꾼다고 환자 인권이 보호되고, 퇴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가능한데, 전혀 해결방안을 만들지 않고 법만 뜯어고치고 20년 만에 환자 인권 변화가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알맹이는 전혀 바뀐 게 없다"고 일축했다.
일주일에 2~3일 출장진단을 가야 할 상황이다보니 정작 자기 병원 입원환자 진료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봉직의 D씨는 "내가 볼봐야 할 입원환자가 60명인데 2~3일 출장을 가도 될지 걱정"이라면서 "우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 대한 치료와 인권은 누가 어떻게 보호해 줄건지 복지부가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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