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정원 수요조사 발표에 의협 패싱, 9.4의정합의 위반 반발...26일 전국 의사 대표자 회의 통해 대책 논의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의료계가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정원 증원 정책에 대해 "정부가 대한의사협회를 일방적으로 패싱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의료계는 의대정원 증원 정책 강행에 대비해 파업을 준비하되, 국민들까지 설득할 수 있는 의대정원 증원의 폐해를 강력히 알려나가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한의사협회 송병주 감사(전주 PSI한솔비뇨의학과 원장)는 21일 오후 7시 전북 전주에서 열린 ‘올바른 의료정책을 위한 의사모임(올의모)’에서 의대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회생에 대한 토론을 위한 특강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의대정원은 의약분업 때 확정된 40개 의대 3058명 그대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2020년 의료계 파업 당시 매년 400명씩 10년간 4000명의 의대정원을 확대하려고 했으나, 9.4 의정합의에 따라 의대정원 문제는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의 문제 해결을 이유로 의대정원 확대를 기정사실화했다. 이날 40개 의과대학의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40개 의대는 2025학년도까지 최소 2151명, 최대 2847명까지 증원을 요청했고 2030학년도까지는 최소 2738명, 최대 3953명까지 추가 증원을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송 감사는 “우리나라는 의사인력 수급 거버넌스를 논의하는 전담 조직 자체가 없다. 심지어 이해단체의 의견 수렴조차 없다”라며 “정부가 의협과 함께 의정협의체에서 의대정원 증원을 논의하자고 했지만, 결국 정부가 알아서 발표하고 의협을 패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감사는 "이번 의대정원 수요조사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몇 마리 먹을래'라는 식의 질문에 불과할 뿐”이라며 "지금 의대정원을 늘려도 10년 이후에나 의사가 배출되는데 의대정원 증원 정책은 답이 아니다" 말했다.
송 감사는 “과연 의대정원이 3000명 이상 늘었을 때 의대에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마땅한 교실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전북의대도 서남의대 정원 32명을 더 받았을 때 교실에 의자가 없어서 학생들이 힘들게 수업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OECD 평균 단순 비교로는 의사 수 부족으로 해석 불가
우리나라 의사 수 부족 수치는 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인용된다. 2021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평균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6명이지만, 한국 의사 수는 2.1명이다. 의료계는 의사인력 산정 기준이 국가별로 달라 OECD 평균만으론 국내 의사인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며, 대신 의사 수 증가율이나 의료접근성은 세계 최고라고 강조했다.
송 감사는 “실제로 미국이나 네덜란드, 호주 등은 의사인력을 산정할 때 전일 근무자 기준을 사용하는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근무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인력 기준을 사용하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다”라며 "우리나라 의사 수에 전공의를 포함하지 않았고 전공의들은 80시간 이상 근무하기 때문에 오히려 의사 수가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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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감사는 OECD 평균 국토면적대비 의사밀도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면적 10㎢당 의사 수가 12.1명으로 네덜란드(14.8명)와 이스라엘(13.2명)에 이어 3번째로 높다. 단순 통계만으로 우리나라 의사 수 부족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의사 수의 가파른 상승도 지적했다. 송 감사는 "2010~2020년 활동의사 연평균 증가율은 2.84%로 OECD평균(2.19%)보다 높고,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 연평균 증가율도 2.40%로 OECD평균(1.70%)보다 1.41배 높다"라며 “인구는 5200만을 정점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앞으로 의사 수를 줄이는 걱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 정치적인 이유로 등장한 의대정원 증원, 포퓰리즘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
송 감사는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 보궐선거에서 실패한 여당이 갑자기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정치적으로 들고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 감사는 “그간 정부는 의협과 여러가지 정책적 협조를 잘 해왔다. 하지만 의대정원 증원처럼 정치적인 이유로 포퓰리즘 정책이 등장했고 이는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의대정원 증원은 답이 아니다. 필수의료 근무의사와 의료취약지 의사 부족이 문제일 뿐, 절대 의사 수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가령 안과 전문의 99%는 안과 진료를 하고 있는 반면, 흉부외과 전문의 82%는 전공과 다른 과목을 진료하는 실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흉부외과 전문의가 실제 흉부외과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필수의료 수가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송 감사는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진료과가 대학병원에 10명, 20명 이상의 교수가 있다면 당직 부담이 줄고 진료나 수술도 편하게 할 수 있다"라며 "하지만 교수 한두명이 24시간씩 교대로 당직을 서고 있으니 필수의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의료 취약지에는 지역가산제가 필요하다는 건의가 이어졌다. 지역에 분만수가 55만원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지만 농촌 지역 분만산부인과는 한 달에 분만건수 3건에 불과한 곳도 있어서다. 보조금이나 시설 지원비가 없이는 병원 유지 자체가 힘든 지경이다.
송 감사는 “필수의료 의사들을 위한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도 필요하다. 의사가 소신진료를 했는데도 환자가 사망하면 무조건 소송으로 가고 있다"라며 "필수의료 형사처벌 면책은 물론 국가 배상책임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 이용이 과잉되는 측면도 해결해야 한다. 중증 질환자가 상급종합병원으로 제대로 이송될 수 있도록 경증 응급환자부터 제대로 분류해야 한다”라며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경증 질환 본인 부담률 상향, 실손보험 리모델링 등도 필요하다. 지역에서 환자가 중증 질환을 치료받으면 의료비를 감면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료계 전국 의사 대표자회의 통해 대응방안 논의
의료계는 오는 26일 오후 3시 전국 의사 대표자회의 및 확대 임원 연석회의를 통해 의대정원 증원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참여자는 의협 대의원회 의장 및 운영위원, 의협 집행부, 각 시도의사회장 및 임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 대한의학회장, 대한개원의협의회장, 대한군진의사협의회장, 대한공공의학회장,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 대한전공의협의회장, 대한병원의사협의회장, 한국여자의사회장, 대한병원장협의회장 등이다.
2기 의료현안협의체 부단장을 맡은 김종구 전북의사회장(의협 부회장)은 “정부는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인 근거 없이 수요조사만을 근거자료로 국민들에게 눈가리고 아웅하면서 필요에 의해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이는 9.4의정합의에 반하는 것이자 의협을 패싱하는 것이다. 협상단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공식적으로 의료계가 정부를 상대로 어떤 방향성으로 로드맵을 펼쳐나갈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라며 “의정협상이라면 서로 어떤 논의를 하더라도 존중과 소통으로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어야 대화가 되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수요조사 발표를 보면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김 회장은 “협상단이라고 하지만 협상할 수 있는 준비가 돼있지 않다. 협상할 수 없는 의대정원 문제 자체를 거론하기 어렵다”라며 의료계가 중지를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전주시의사회 정경호 회장은 “세계 최고 저출산과 경제성장률 1%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 앞으로 닥칠 국가적인 재앙은 다방면에서 상당한 위기에 처할 것이다. 정치인들에 의해 의료정책이 혼란에 빠지고 의료진이 헌신적으로 버텨온 세계적인 의료체계가 무너지는 추세가 됐다”고 호소했다.
정 회장은 “의약분업, 의전원, 문재인 케어 등 의사들이 반대하고 올바른 정책을 건의했지만 정부는 이를 듣지 않았다. 다시 정부가 총선을 위해 의대정원을 몇 천명씩 증원하는 것을 밀어붙이고 있다"라며 “협상이 되지 않으면 투쟁 외에는 방법이 없다. 대신 의사들에게 피해가 적은 방법에 대한 구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임정신건강의학과 김임 원장은“정치인은 앞뒤가 다른 정책을 들고 나오기 마련이다. 복지부와 어떻게 소통하면서 국민들에게 진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허기석내과 허기석 원장은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될 때부터 현재까지 근거 자료를 만들어서 의대정원 증원 정책의 폐해를 알려야 한다. 정책의 맹점을 과감히 지적하고 근거자료로 설득해야 한다”"라며 "일본의 20년 전을 따라가는 상황에서 일본의 의사 수 감소 입장을 한국에도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한나산부인과 박용배 원장은 “의대정원 증원 문제는 분명히 정치적인 논리에서 시작됐다. 국민들에게 필수의료 의사 부족에 따른 공포심을 일으키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라며 "의사에 대한 특유의 반감이나 보복심리도 있는 만큼 정부는 이를 이용해 '낙수효과'로 해결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행정가나 정치인들을 상대로 의료계가 협상하긴 힘들고 이기기도 힘들다. 심지어 의료계 내에서도 적전분열이나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만드는게 그들의 수법이다"라며 "협상은 해도 그만, 안해줘도 그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의료계는 의대정원 증원을 하지 않아도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찾고 논리를 개발해서 국민들까지 설득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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