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진단서에 '병사'를 체크하게 한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사태가 이만큼 커지리란 것을 가늠이나 했을까?
백남기 씨 사체의 부검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사 사회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사망진단서가 잘못됐다는 데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것 같다.
이번 사망진단서는 평소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던 의사들을 머쓱하게 했다.
'병사'가 기재된 사망진단서가 의료계의 영원한 오명으로 남을 걸 생각하면, 아는 인력을 총동원해 환자를 담당했던 백선하 교수를 설득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번 논란에 관해 두 가지만 얘기해볼까 한다.
의사 윤리에 어긋나는, '연명치료가 최선의 치료'라는 주장
개천절에 있었던 서울대병원 특별조사위원회 기자간담회.
의사들은 "심폐정지"와 "병사"가 기입된 사망진단서에 이어, 또 다른 논란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백남기 씨를 담당했던 백선하 교수가 해명한 '사망진단서 작성 근거'는 동료 의사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
백 교수는 보호자가 혈액투석을 거부해, 환자 체내에 칼륨이 축적됐고, 그에 따른 고칼륨혈증으로 백남기 씨 심장이 정지했다고 설명했다.
환자 사망 직전 고칼륨혈증이 치명적인 영향을 준 장기가 심장이니, '심폐정지'라는 단어가 (통상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최종 사인이 맞고, 그 고칼륨혈증은 혈액투석으로 개선될 수 있었는데 보호자가 (연명) 치료 거부를 선택해 '병사'가 됐다는 것이다.
의사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해괴한 논리는 둘째 치고, 백 교수의 해명은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연명치료란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심폐소생술이나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의학적 시술을 말한다.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선택하게 하는 행위 자체도 국내에선 아직 명확하지 않아 문제가 되지만, 실제 임상에서 제법 흔하고 법이 곧 시행된다는 이유로 일단 여기에선 언급을 피한다.)
따라서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 호전이 힘든 게 확실할 경우만, 연명치료 선택을 보호자에게 권고한다.
본인 주장대로라면, 백 교수는 호전 가능성의 여지가 있던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 대신 연명치료라는 보호자의 선택에 맡긴 셈인데, 내 상식으론 대한민국에 이렇게 판단할 의사는 없다.
그리고 의료진이 보호자의 선택을 빌미로 호전 가능성이 큰 환자의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살인방조죄로 기소될 수도 있다.
한 의대교수의 황당한 논리에, 왜 부끄러움은 나머지 십만 의사의 몫이어야 하는지...
백남기 씨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부검을 하면 사체가 훼손된다.
백남기 씨 보호자 입장에선 시신을 묻든 태우든, 결정 전까지 환자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싶은 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부검을 시작하면 사인에 관해 유용한 정보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으니, 하고 보자"라는 의견은 설득력도 없고 이기적이다.
국내 최고 법의학자인 이윤성 교수마저 며칠 사이 다른 뉘앙스의 매체 인터뷰를 할 정도로 부검의 결정은 쉽지 않다.
기자가 의문인 건 백씨의 '사망' 자체가 그의 경막하출혈 원인을 밝히는데 과연 결정적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부검이란 환자의 사망 뒤에야 가능한데, 정말 백씨의 사망이 없었다면 그의 경막하출혈 원인을 우리는 현재 능력으로 밝힐 수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백씨가 사망했든 사망하지 않았든, 그의 뇌출혈을 일으킨 원인은 바뀌지 않고, 그 원인을 조사해야 할 수사기관의 의무 또한 변하지 않는다.
만약 백씨가 생존했다면 어땠을까?
백씨가 운이 좋아 뇌의 출혈량이 적어, 오랜 기간의 병상 생활 후 (일부 장애를 갖고) 회복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가 사망하지 않고 회복돼 부검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백씨의 경막하출혈 원인을 모른 채 그의 치료비와 피해보상을 담당해야 할 주체를 결정하지 못하게 되는가?
백씨가 물대포 맞는 다양한 앵글의 비디오, 현장을 목격하던 수많은 증인들이 있는데도, 우리는 그가 (가정대로) 생존해 부검을 하지 못하게 돼 이 사건을 모호한 미제 사건으로 남기게 되는가?
백씨의 사망 가능성이 높든 아니든, 뇌출혈 원인을 조사해야 할 수사기관은 300일 넘는 기간 동안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기자는 부검 필요성보단 그게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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