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4.20 06:26최종 업데이트 19.04.2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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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돋보기] 낙태죄 66년 만에 폐지 수순...허용 시기·진료거부권 인정 여부 등 쟁점

헌재, ‘자기낙태죄’·‘동의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의료계 “조속한 대처 필요”

낙태 허용 시기 설정·진료거부권 인정 여부·자격정지 1개월 규정 폐기 여부 등 과제 남아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채 기자] 낙태죄가 제정 66년 만에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청사 1층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 제269조1항과 270조1항 관련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4명(헌법불합치), 3명(단순 위헌), 2명(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행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자기낙태죄’ 조항이다. 270조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지난 2012년 재판관 의견 4대 4로 위헌 정족수 6명을 충족하지 못해 낙태죄가 합헌으로 결정된 지 7년 만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이 교차하고 있다. 동시에 낙태 허용 시기, 진료거부권 인정 여부, 자격정지 1개월 규정 폐지 여부 등의 과제도 남아있다.

낙태죄 처벌 규정 조항이 제정된 이후 논란을 거듭해 온 역사와 의료계 반응, 풀어야할 남은 과제 등에 대해 짚어봤다.

낙태죄, 1953년 제정 이후 폐지 논란 거듭해

낙태죄 논쟁은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는 1953년 처음으로 형법에 낙태죄가규정됐다. 이후 정부는 1973년 제한적인 경우에서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을 마련했다.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임신중절수술 허용사유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이 된 경우 등이다.

이후 낙태죄는 산아 제한 정책 등의 영향으로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 2009년 12월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진오비)’가 불법 낙태 근절 운동을 위해 ‘프로라이프 의사회(Prolife Doctors)를 출범시키며 낙태죄가 다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이들은 불법 실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한 병원 등을 고발하면서 낙태 근절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의료계 내에서도 열띤 논의가 이어졌지만 크게 합의점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낙태죄 위헌 여부는 지난 2012년 8월 본격적으로 공론화 된다. 당시 낙태죄 혐의로기소돼 재판을 받던 조산사 A씨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는 재판관 4명(합헌), 4명(합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선된다는 배경에서다.

하지만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 7년이 흐르는 동안 국민정서를 비롯한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며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했다. 과거와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가 영향을 준 탓인지 헌재는 지난 11일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 법 조항에 대해 사실상 위헌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4년 9월 병원에서 환자의 승낙을 받아 낙태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A씨가 ‘자기낙태죄’(형법 제269조1항)와 ‘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1항)에 대해 낸 헌법소원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의료계, “헌재 결정 존중...혼란 최소화하도록 조속한 대처 필요”
 
오랜 기간 논쟁을 끌어왔던 낙태죄 처벌 규정이 사실상 위헌으로 결정 됐지만 여전히 국민 정서는 엇갈리고 있다.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며 찬성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태아의 생명을 침해한다는 우려의 시선도 공존한다.

의료계는 대체적으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속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산부인과 의사는 환자·임산부의 치료자로서 여성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이 단순위헌 결정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잘된 결정이다”라고 말했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헌재 판결에 따른 의견서를 통해 정부의 조속한 대처를 요청했다. 의사회는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의 찬반을 선택할 수 없고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질 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라고 밝혔다.

의사회는 “모자보건법에서 의학적으로 개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개진해 여성과 태아의 건강권을 지키는데 전념하겠다”라며 “정부는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발생할 수 있는 국민들의 불편함과 진료실에서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확한 지침을 제시해 우선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협회 또한 공동 성명서를 통해 “보건복지부와 의료계는 일선 의료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충분한 의학적 근거에 기반한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의료인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는 헌재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 관련 부처가 협력해 헌법불합치 결정된 사항에 대한 후속조치를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의사 신념에 따른 진료거부권 인정 목소리도

낙태죄 처벌 규정에 대한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국회는 2020년 말까지 개정해야 한다. 즉시 법 효력이 상실될 경우를 대비해 개정 시한을 뒀지만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는 많다.
 
우선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진료거부권 인정 여부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의사의 개인 신념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진료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사한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지난 12일 ‘낙태 합법화, 이제 저는 산부인과 의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인지’라는 제목의 국민 청원을 게시했다.

청원인은 “낙태를 찬성하는 분들의 의견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으며 그분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10년 이상 밤낮으로 산모들을 진료하고 저수가와 사고의 위험에도 출산의 현장을 지켜온 산부인과 의사로서 제게 낙태시술을 하라고 한다면 저는 절대로 그 시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의 신비에 감동해 산부인과를 선택하고 싶은 후배들은 낙태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포기해야 한다”라며 “또 독실한 가톨릭이나 기독교 신자의 경우 종교적 양심으로 인해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선택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낙태 합법화가 원하지 않는 의사는 낙태 시술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진료 거부권을 반드시 같이 주시기를, 그래서 낙태로 인해 진료 현장을 반강제적으로 떠나야 하는 의사가 없게 해주시기를 청원한다”고 밝혔다.

낙태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설정도 논의해야
 
낙태를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하는 것도 과제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임신 22주’를 일종의 한도로 제시했다.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고려한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조건은 국회가 논의해야 한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 4인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이를 허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3인은 임신 제1삼분기(약 14주)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낙태 가능 기간은 헌재의 결정을 바탕으로 입법화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최근 임신 14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으로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15일 낙태죄 폐지를 골자로 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대표발의했다. 이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현행 형법의 낙태죄를 폐지하고자 했다.

형법 27장 ‘낙태의 죄’를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바꾸고 기존 자기 낙태죄와 의사의 낙태죄를 삭제했다. 또한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변경해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모자보건법의 경우 헌재 결정의 취지대로 임신 중기인 22주까지는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기존 사유 외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시켜 실질적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자 했다.

또한 임신 14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의원은 “실제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3개월 내의 임신중절이 94%를 차지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기간 내에 임신의 중단과 지속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라며 “이 시기 행해지는 인공임신중절은 의료적으로도 매우 안전하다. 개정안이 헌재판결의 취지에 부합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자격정지 1개월 규정 폐기 여부·유산유도약 도입도 쟁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보고 수술한 의사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처분 폐기 여부도 쟁점 사항이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의사가 낙태하게 한 경우’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해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되면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시행한다고 밝혔다. 
 
최근 이같은 내용의 행정처분을 관계법 개정 때까지 시행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며 향후 논의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산유도약의 빠른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정부는 임신중절에 관한 서비스를 제도화하기 위한 행정시스템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라며 “제약회사는 여성의 임신중절에 대한 선택권을 확대시키기 위해 국내에 미페프리스톤 성분의 의약품을 허가받기 위한 검토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미페프리스톤 성분의 미프진이라 불리는 유산유도약은 임신중절을 위한 경구용 의약품으로 WHO(세계보건기구)가 2005년부터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건약은 “하지만 현재 미프진은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라며 “국회·정부는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여성의 안전한 중절권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미프진의 조속한 도입을 포함한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낙태죄 # 헌법재판소

윤영채 기자 (ycyoon@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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