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의료진의 진료 및 처방에서 과실 발견 안돼…지도설명 의무위반도 "의사의 의료행위 결과 아니기에 관계 없어"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치료 중이던 환자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물을 과다 복용해 사망한 사건에서 그 유가족들이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유가족은 의사가 자살위험이 있는 환자에게 약물을 과다처방했고, 환자에게 본인의 상태 및 약물 과다 복용 시 사망위험 등에 대한 지도 설명을 하지 않았다며 4억원을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최근 서울북부지방법원은 2021년부터 시작된 장기간의 소송을 마무리하고 원고 측이 A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제기한 약 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장기간 우울증, 공황장애 앓던 환자,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유족은 의사에 책임 물어
고인이 된 환자 B씨는 2006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등으로 두 개의 정신과 의원을 다니며 정신과 진료를 받아 왔다.
B씨는 2020년 2월경 A씨가 운영하는 정신건강의학과의원로 옮겨 지속적으로 병원 소속 의사들로부터 진료를 받았다. 당시 의료진은 B씨에게 우울평가, 사회공포증척도, 불안민감척도 등 검사를 진행했는데, 이를 통해 B씨는 공황장애, 중증도 우울에피소드, 비기질성 불면증으로 진단됐다.
B씨는 지속적으로 A씨 의원을 내원해 A씨로부터 진료를 받았고,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 공황장애치료제 등을 처방받았다.
그러던 2020년 8월 17일, B씨가 약물(우울증약, 공황장애약, 대인기피증약, 수면제) 30봉 가량을 술과 함께 복용하는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하면서 A씨가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이후에도 A씨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2021년 2월 23일 A씨가 진료를 받으면서 ‘마을버스에 약 봉투를 놓고 내렸다’고 말했고, 이에 A씨가 14일분 약을 다시 처방해준 일이 있었다.
약을 재처방받은 날인 2월 23일 20시경 B씨는 거실에서 잠을 자다가 호흡곤란 증상을 보였고, 20시 21분경 심정지가 발생해 119구급대를 불렀다. A씨는 구급대로부터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20시 46분경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21시 16분경 쿠에티아핀, 에스시랄로프람, 플루옥세틴 등 약물에 의한 중독으로 사망했다.
B씨의 유족인 원고들은 A씨가 자살위험평가나 보호병동 입원치료를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등 자살 방지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자살시도 전력이 있는 A씨가 약물을 과다 복용해 자살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A씨에게 약물을 과다 처방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원고들은 A씨가 B씨와 그 배우자에게 약물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위험을 설명하고 그에 대처할 수 있도록 요양방법을 지도설명했어야 하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도 반발했다.
법원, 의사 약물 과다 처방한 사실 없고 자살위험 방지 위해 노력한 점 인정
하지만 재판부는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A씨가 B씨에 대한 진료를 함에 있어 자살위험평가 등 자살 방지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거나 약물을 과다 처방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로 A씨 의원은 B씨가 처음 내원한 2020년 2월 17일, B씨에게 우울평가, 사회공포증척도, 불안민감척도, 특성불안검사, 문장완성검사 등을 실시한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2020년 3월 10일에는 해밀튼 우울검사를. 2020년 12월 17일과 2021년 1월 28일, 2021년 2월 19일 네 차례에 걸쳐 백 우울 병가(BDI), 상태특성불안검사(STAI)를 추가적으로 실시했다.
이에 따라 의료진은 B씨를 공황장애, 중증도 우울에피소드, 비기질성 불면증으로 진단하고 B씨에게 정신건강의학과적 면담, 항우울제 등 약제 치료를 시행했다.
또 매 진료시마다 B씨가 치료중인 질환이 만성질환이라는 점과 지속적인 치료 및 규칙적인 약물 복용 없이는 재발 및 증상의 악화가 가능함을 설명하고 음주하지 않도록 교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판부는 A씨가 B씨의 자살시도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 일반 진료 시간의 40분을 초과하는 정신치료를 시행하는 등 B씨의 자살위험을 평가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장시간의 면담을 했던 것도 인정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약물을 과다 처방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실제로 이 사건 진료기록감정의는 "망인(B씨)에 대한 처방은 중등도 우울증 에피소드 환자에게 통상적으로 처방되는 약물로 처방하지 않았을 때 증상 악화의 위험을 생각한다면 적정한 처방"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2021년 2월 23일 A씨가 마을버스에 약을 두고 내렸다고 해 약을 14일분 추가 처방한 사실은 있지만, 이 역시 투약이 중단될 경우 불면증 및 기분 저하 등이 악화될 수 있기에 이러한 처방 결정은 타당하다고 보인다.
구체적으로 A씨는 추가 처방 당시, 기존 처방에서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신경안정제 계열인 리보트릴, 알프람, 디아제팜, 로라반과 수면제인 스틸녹스를 제외하고 푸로작, 렉사프로, 쿠에타핀, 인데놀만 처방했다.
이는 과다 복용시에도 중추신경억제와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과다 복용이 우려되지만 증상이 악화되지 않도록 약물을 처방해야 할 상황에서 의료진의 조치는 적절한 것으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의료진의 지도설명의무 위반 여부도 가렸다.
재판부는 "지도설명의무는 의사의 수술 등 의료행위의 결과로 후유 질환이 발생하거나 그 후 요양과정에서 후유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때 이를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B씨의 자살이 A씨의 의료행위 결과이거나 그 후 요양과정에서 생긴 후유 질환으로 볼 수 없어 지도설명의무 위반이 문제될 여지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만약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A씨가 매 진료시마다 B씨가 치료 중인 질환이 만성질환이라는 점과 지속적인 치료 및 규칙적인 약물 복용 없이는 재발 및 증상 악화 가능성을 설명했고, 음주하지 않도록 교육했음으로 A씨가 B씨에게 충분한 복약지도를 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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