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에서는 의료인 과실 인정했지만, 형사에서는 '무죄'…대법 "형사에선 과실과 결과 사이 인과관계 명백하게 증명해야"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근 의료 소송이 의료 과실과의 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하는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이용해 형사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대법원이 민사와 형사의 법리가 다름을 명확히 한 판결이 있어 주목된다.
대법원이 같은 날 동일 의료사고에 대한 판결에서 민사 소송에서는 환자의 손을 들어 주면서도 형사 소송에서는 의료진에게 무죄를 내린 것이다.
법조계는 해당 판결이 민사에서는 '업무상 과실'과 '인과관계'에 대한 환자 측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면서 형사에서는 아무리 과실이 있어도 그 과실과 악결과 사이에 '인과관계'에 대한 '확실한 증명'이 부족하면 유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전신마취 후 저혈압 반복…마취과 전문의 대처에도 결국 환자 사망한 사건 발생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대한의료법학회 논문 '의료법학'에 문현호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이 지난해 8월 31일 나란히 선고된 의료관련 민사 손해배상 소송과 형사 과실치사 소송 판결을 소개하며 의료과오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신 판결 경향을 설명했다.
사건은 2015년 12월 29일 A씨가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넘어진 후 팔을 들어올릴 수가 없다며 모 병원에 입원하며 시작됐다.
병원 의료진은 MRI 검사 등을 거쳐 A씨에게 '오른쪽 어깨 전층 회전근개파열과 어깨충돌 증후군 소견'으로 진단하고, 전신마취 및 국소마취 아래 관절경을 이용한 '견봉하 감압술'과 '이두건절개술'을 계획했다.
해당 병원 마취과 전문의 B씨는 2015년 12월 30일 10시 15분경 수술실에서 A씨에게 프로포폴 정맥 주사로 전신마취를 유도하고, 상완신경총 차단술 시행을 위하여 A씨의 목 부위에 리도카인, 로피바카인을 혼합 투여해 국소마취를 했다.
수술 당일 10시 10분경 A씨의 혈압은 약 110/65㎜Hg였으나, 마취 과정에서 A씨의 혈압이 떨어지면서 B씨가 정맥 주사를 투여해 혈압을 회복시키는 일이 세 번 반복됐다.
결국 혈압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B씨는 10시 42분경 마취를 끝내고 간호사에게 A씨의 상태를 지켜보도록 지시하고 수술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B씨가 수술실을 나온 뒤에도 A씨의 혈압이 떨어졌고, 그 즉시 간호사는 B씨에게 4차례 전화해 각종 수치에 대해 보고했다. B씨는 네 번의 전화 중 한 번은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간호사에게 정맥 주사를 투여하는 등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결국 A씨는 11시 15분경 A씨의 산소포화도가 89%로 급격히 하강했고, B씨도 11시 20분경 수술실에 돌아와 A씨의 상태를 확인하고 혈압상승제인 에피네프린을 투여했다.
그런데도 A씨의 상태가 회복되지 않자 B씨는 수술을 중단시키고, A씨를 앉은 자세에서 바로 누운 자세로 변경한 후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이후 병원 의료진은 A씨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했으나, 응급실 도착 당시인 13시 33분경 A씨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끝내 사망했다.
민사, 의료인 과실 일부 인정…"환자 측 과실과 손해 사이 인과관계 증명책임 완화"
해당 사건 이후 A씨의 유가족은 B씨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과 업무상과실치사 형사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먼저 민사소송의 1심과 2심은 모두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원심 재판부는 마취과 전문의인 B씨가 수술 전 마취 과정에서 A씨가 저혈압 증상이 반복됐음에도 마취유지 중 A씨의 상태를 직접 감시, 관찰하지 않고 간호사에게 상태관찰 지시만을 내린 채 수술실을 떠난 것은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간호사가 B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을 당시 즉시 수술실로 복귀해 A씨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 적절히 대응하지 않고, 에페드린 투여만을 지시하고 일부 전화는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B씨가 A씨에 대한 감시 업무를 소홀히 한 점, A씨에게 발생한 응급 상황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는 등의 과실을 저질렀고, 이 과실과 A씨의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해당 사건은 대법원 상고로 이어졌다. 대법원 역시 B씨에게 과실이 있으며, 이 과실이 A씨의 사망이라는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진료상 과실과 환자 측에게 발생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환자 측뿐만 아니라 의료진 측에서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증명 어려움을 고려해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해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즉 대법원은 의료 사고 손해배상책임에서 주의의무 위반 즉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증명 부담을 환자의 입장에 서서 다소 완화한 것이다.
형사 '무죄'…"과실과 결과 사이 인과관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해야"
하지만 같은 날 같은 사건의 형사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민사 판결과 달랐다.
앞서 1심과 2심은 민사 재판부가 B씨의 과실을 인정한 것을 이어받아 업무상과실치사죄 유죄 판결을 내렸으나,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 환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재판부는 "의사에게 의료행위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의료행위 과정에서 공소사실에 기재된 업무상과실의 존재는 물론 그러한 업무상과실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사망 등 결과가 발생한 점에 대해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검사는 공소사실에 기재한 업무상과실과 상해‧사망 등 결과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해야 하고, 의사의 업무상 과실이 증명댔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추정되거나 증명 정도가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형사재판에서는 인과관계 증명에 있어서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을 요하므로 그에 관한 판단이 동일 사안의 민사재판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대법원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B씨의 업무상과실로 A씨가 사망하게 되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원심 파기 환송했다.
문현호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해당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의료과오 민사소송에서 진료 상 과실이 증명된 경우 인과관계 추정에 관한 법리를 정비해 새롭게 제시했다"며 "대상 민사판결은 의료과오 민사소송에서 인과관계 증명책임 완화에 관한 기본 법리로 널리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바라봤다.
문 재판연구원은 특히 "대법원은 동일 재판부에서 같은 날 동일한 의료사고에 관하여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함으로써 의료과오 관련 형사 사건에서는 '업무상 과실' 뿐만 아니라 '인과관계'에 대한 확실한 증명이 부족하면 유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일 의료사고에서 적용되는 민․ 형사 법리가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알려 하급심에 지침을 주는 판결로서 최근 급증한 의료과오 형사사건 판단에 많은 영향이 예상된다"며 "위 두 판결을 통해 환자는 보다 쉽게 손해배상을 받고, 의료진은 형사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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